날마다 뉴스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들이 넘쳐납니다. 입에서 입으로 혹은 SNS를 통해서 전해지는 소식들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합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분주한 일상이 근본적인 두려움이란 감정을 묻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똑같은 일상을 되풀이하게 만듭니다. 두려워할 만한 조금의 시간적인 여유도 주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불안, 두려움, 공포 같은 어두운 감정들이 슬며시 나옵니다. 일상을 깨트리는 것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죽음’ 아닐까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하거나 죽음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는 상황에 놓인다면 어떨까요? 그런 상황에서 죽음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만큼 두렵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행복한 인생을 혼자만의 힘과 노력으로 만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면, 자기가 만들어낸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 삶을 망가뜨리려고 위협한다면, 그 상대가 누구든지 혹은 무엇이든지 그로부터 삶을 악착같이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통상적으로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죽기 전에 미리 경험해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리 배우고 연습해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는 동안 알 수 없기에 죽음은 더욱 두렵고 무섭게 다가옵니다.

어떤 이에게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절망적인 일입니다. 또 어떤 이에게는 지나온 시간에 대해 감사함을 배우는 순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깊은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이에게는 오히려 치열했던 생의 끝자락에서 누리는 평안한 안식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죽음이라는 결말은 같지만,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죽음을 정의합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살아갈수록 실수와 잘못들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상관없이 말이지요. 사람에 대한 원망, 미움, 용서하지 못한 태도도 그 높이를 더해갑니다.

그런데 삶의 마지막에는 죽음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산다면, 그 높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잘못에 대한 반성과 사람에 대한 용서가 조금은 더 쉬워질 것입니다. 죽음을 의식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죽음 앞에서 삶에 대한 어리석은 집착은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죽음의 순간이 언제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마다 정해진 때는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미리 알 수 없을 뿐이지요.

그렇습니다. 다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초조하게 기다린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 ‘때’까지 남은 시간을 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호스피스 환자들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은 이 남은 시간의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강의 시작 무렵에 강사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즉 죽음의 정의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어떤 이는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삶의 완성"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죽음을 정의했습니다.

죽음을 자주 접하는 호스피스 병동 종사자들은 환자들을 한 명 한 명 떠나보내면서 죽음에 대한 자기만의 정의를 만들어갑니다. 나에게 죽음은 두려움이었지만,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면서 이제는 두려움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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