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말린 날들 -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
서보경 지음 / 반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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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염이 주는 희망.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서로 반전을 주는 단어들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까. 바이러스를 통해 우리에게 질문과 사유할 기회를 던져주지 않을까 기대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 인류학자인 작가는 자신도 감염에 휘말려 들었다며, 적극적으로 휘말리기를 권한다. 삶에서 감염이 던지는 문제들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탐구하고, 질문하기를 바란다. 감염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다. 단순히 감염 ‘당하는’ 것을 넘어서서 휘말리는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 나는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HIV에 휘말리기를 바란다. 감염이 야기하는 난제를 삶에서 직면하기 바란다._26p


🐧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HIV만의 역사, 감염과 감염병, 그리고 질환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우리는 어떤 낙인을 만들고 있는가. 그런 우리는 어떤 책임과 돌봄을 건네야 하는가. 무엇보다 읽는 내내 감염을 바라보는 나의 통념을 건드려볼 수 있었다. 감염과 정신질환에는 사회적 죽음이 담겨 있다. 당사자 외에도 모두가 발벗고 나서서 애초부터 없는 존재로 만드려 한다. 정상의 궤도에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맞춰서 세워놓으려 한다. 사회에서 부정당하는 것들에는 비슷한 아픔이 있는 것이 아닐까.

🐧 질환과 낙인에 대한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최근 오월의 봄에서 나온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이 책도 무척 추천한다.


🔖 한국에서 에이즈는 생물학적 죽음보다 사회적 죽음을 먼저 불러왔다._86p


🐧 사회적인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게 된다. 읽는 내내 감염에 휘말린 사람들의 고통이 전해져서 마음이 아팠다. 책은 두껍고 방대한 양이 들어있지만 감염과 질병에 대해 새롭게 사유해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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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상담소
이충현 지음 / 담앤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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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마, 보통 업業으로 알고 있던 개념이다. 그래서 카르마 상담이라는 개념이 낯설면서도 호기심이 생겼다. 카르마를 통해 삶의 인과관계를 보다 깊숙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늘 엉켜있는 듯한 삶을 헤메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런 내면의 고통을 바로 마주해보고 싶었다. 어떤 치유의 이야기를 들려줄까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 고대 인도에서 기원한 이 개념은 본래 ‘행위’를 뜻한다. 즉 카르마는 내가 행한 바대로 그에 따른 과보果報를 나 자신이 어떻게든 받는다는 인과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_6p

🐧 왜 카르마인가? 과도한 경쟁과 결과중심적 사회분위기, 이로 인한 정신 건강의 적신호까지. 급변하는 사회에 결과에만 집착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원인’을 놓치게 된다. 이 결과가 왜? 생겨났는지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하지 않는 사고는 결과만을 추구하며, 고여버리게 된다. 결과중심적 사고에서,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고 헤아리는 사고인 인과적 사고가 필요한 때이다. 이 사고에서 필요한 핵심이 카르마의 인과다.

🔖 원인을 등한시할수록 결과중심적 사고가 강해지게 된다. 따라서 결과만큼이나 원인도 중요함을 알고 이 둘의 연결성을 제대로 고려하고 확인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_31p

🐧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업이 카르마고, 카르마의 인과를 아는 것은,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반드시 되돌아오고, 되풀이 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결과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일어난 원인이 있다. 내적 통찰과 카르마를 통해 이번 생을 이해한다면 심적 고통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카르마 상담이다.

🔖 자기 통제력이 갈수록 빈곤해지고 있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심적 고통의 핵심이다._36p

🐧 카르마도, 상담도 어렵고 난해한 주제에다 불교라는 종교적 사상도 담겨있다. 그렇지만 내 삶의 인과관계를 되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카르마를 공부해본다면 좋겠다. 가령 나는 어린시절 학대의 경험으로 다양한 트라우마 증상이 있어서, 상담 사례 2번에게 적용된 상담 원리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사실 ‘뻔한 얘기 아닌가요?’ 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카르마를 통한 고통의 접근은 매력적이다. 내면의 고통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 우리는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지지하며, 피해자로서의 그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고통의 경험을 통해 더 성숙하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일상에 복귀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_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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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 수업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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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주도권을 되찾을 준비가 되었는가’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의 이전 책을 재밌게 읽었고, 하루하루 철학이 채워지는 경험이었다. 스토아 철학의 메시지를 통해 나와 나의 마음을 다정하게 읽어내보고 싶었다.


🐧 이 책은 스토아 철학의 핵심 메시지를 담은 스토아 철학 4부작 중 두 번째 책이다. ‘절제 수업’의 부제는 ‘내 안의 충동에서 자유로워지는’으로, 내 육체가, 기질이, 영혼에서 충동이 일어날 때 절제해야 하는 이유, 절제할 수 있다는 믿음, 이후 나에게 찾아오는 행복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절제의 삶을 실천했던 인물들의 경험들이 함께 나오는데, 이를 통해 현재 나의 삶에 적용해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 있다.


🔖 우리가 이 책에서 살펴볼 사람들은 몸소 자제와 헌신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_22p


🐧 저자는 끊임없이 육체를 단련하라고 말한다. 육체를 장악하지 못하고 잠식 당한다면 찾아올 일은 앞으로의 삶에 새겨질 것이다.


🔖 모든 결과는 몸에 새겨진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매일같이 조용히 그리고 때로는 그리 조용하지 않게 우리의 존재에, 우리의 외양에, 우리의 기분에 항상 기록된다._156p


🐧 행동을 절제했다 하더라도 ‘기질’, 즉 타고난 본능과도 같은 이것을 다스릴 수 없다면 습관화 되지 못하고 도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끈기를 가지고 기질을 다스릴 줄 알아야만 한다.


🔖 우리는 항상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에게는 하루하루 견디는 인내만이 아니라 오래 견디는 인내가 필요하다._208p


🐧 그리고 마지막으로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이뤄냈다면, 이를 초월하는 무언가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삶을 통째로 흔드는 시련이 찾아온대도 나를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것이 바로 이 ‘무언가’, 영혼이다.


🔖 지독한 병과 유배 생활을 겪은 세네카는 “때로는 산다는 것 자체가 용기를 요구하는 행위다”라고 썼다. 산다는 것은 또한 절제 그 자체기도 하다.


🐧 절제하라, 참아라, 인내하라. 우리는 삶의 미덕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늘 그렇듯 실천하기 어렵다. 이 책에는 선례가 있고, 그 경험을 통해 체득한 이들의 삶을 정리하여, 철학적 사유로 건네는 훌륭한 저자가 있다. 삶의 주도권을 손에 쥐어본 적 없어도 괜찮다. 우리의 삶은 주인을 닮았다. 타고난 절제의 마음으로 우리가 스스로 삶의 방향을 잡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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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길 - 양세형 시집
양세형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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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어찌 웃기만 하고 살 수 있을까. 개그맨도 그렇다, 어찌 남을 웃기기만 하고 살 수 있을까. 거의 10여 년 전에 개그 프로그램에서 무대를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웃기던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나에게 양세형의 시집이란 혼란스러웠다. 그래, 사람이 어떻게 웃기만 하나.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는 게 인생이지. ‘때로는 같이 울고 싶다’는 말처럼, 아마 개그맨인 그도 비슷한 마음으로 시를 써내려 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


🐧 별의 길이라. 별처럼 빛나는 그가 어딘가 가고 싶은 곳일까, 아니면 별의 길이 어디인지 찾고 있는 걸까. 88편의 시에는 지치고, 괴롭고, 울고, 그러면서도 웃고, 웃겼던 무수한 세월이 담겨 있다. 그 세월을 뚜벅뚜벅 걸으며 자신의 길을 고민했을 평범한 청년의 삶이 느껴진다.


🔖 비틀비틀 / 달빛 조명 아래 / 비틀비틀 / 나는 / 코미디언이다_19p [코미디언]


🐧 누구나 비틀거린다. 코미디언의 길을 택한 작가도, 다 큰 어른들도 비틀거린다. 그러니 우리 서로 힘이 되어주자고 말한다.


🔖 흔들리는 지하철에 / 두 발로 중심을 잡는다 / 흔들리는 나의 길에 / 두 발로 중심을 잡는다 / 다음 역으로 이동하는 지하철에선 모든 사람들은 흔들린다_86p [집으로 가는 길]


🐧 솔직히 시집은 너무나 평범하다. 대한민국 30대 청년이 일상을 보내며, 툭툭 던져낸 생각들을 모아 놓은 글이다. 하지만 딱 기대한 만큼의 마음을 채워준다. 나는 그저 웃고 우는 사람, 더해서 웃기는 사람이 건네는 말이 궁금했다. 어떤 특별한 시집을 원하지 않았다. 마냥 웃기던 사람이, 때로는 잔잔한 위로를 건네는 그도 어쩔 수 없이 때로는 평범한 사람이구나. 우리와 같구나. 그래서 우리도 반짝이는 별이기도 한 순간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살풋 웃기를 바란다.


🔖 별을 바라보는 별은 / 모른다 / 자신이 별인 줄 / 그대여 / 당신도 / 빛나는 / 별이다_164p [그대여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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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유감
이기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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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이기주 기자다. 지난 1년간 가장 뜨겁고 날카롭게 정부를 지켜본 사람 중 한 명 아닌가. 이거면 충분히 궁금하다. 이 기자의 날카롭게 벼려낸 문장과 단상을 함께 읽어나가보고 싶었다.

🐧 기사와 기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단순히 권력 구조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행사를 빙자한 기업과의 공생관계, 지역 갈라치기, 언론사 내부의 폭언과 배척까지. 기자 본인의 신념 외에는, 아니 때로는 신념마저도 모든 것이 위태롭게 기자와 언론을 흔들어대는 세상이 더욱 큰 문제다.

🔖 공짜 골프를 즐기는 것을 넘어 기사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까지 접어들었다. 자본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시급하다._30p

🔖 이 일은 엄연한 회사 폭력이었다. 배척과 증오로 얼룩진 폭언과 폭행의 순간, 적어도 그때 MBC에 그리고 나에게 인권은 없었다._41p

🐧 이기주 기자는 냉철하게 꼬집는다. 그럼에도 우리 기자들에게는 더욱더 자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기자의 직무라고 외친다.

🔖 국민이 5년 동안 일방주의 통치를 견디는 고통에 내몰리도록 기자들은 직무를 다하지 못했다. 1933년 독일처럼 우리는 오만과 착각의 늪에 빠져 반자유주의 정권의 탄생을 방치했다. 검증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기자들부터 반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_59p

🐧 기자의 직무를 꼬집고, 공영방송 사장이 역할을 못한 것 아니냐고 되묻기까지 했던 기자에게 온갖 협박이 쏟아졌고, 결국 일이 터졌다. MBC 기자들에게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가 통보된 것이다. 이미 여러 번 겪은 비상식적인 상황에 이제 분노도 올라오지 않는다고 말할정도로, 최고 권력자가 언론에 휘두르는 권력은 대단했다.

🔖 그런데 이미 비상식적인 상황을 여러 번 겪어서 그런지 나는 일방적인 탑승 불허 통보에도 언론 자유나 언론 탄압 같은 거창한 분노는 올라오지 않았다._107p

🐧 이 시대에 살면서 언론에 대한 감흥이 점점 말라가고 있다. 2023년, 전세계적으로 어마무시한 위력을 떨쳤던 전염병의 종식까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이 시기에 언론의 자유가 논란되고 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헷갈릴 정도로 믿을 수 없는 기사들이 넘쳐나는 때인지라 점점 말라가는 듯하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300여 명의 학생들이 죽어갈 때에 “전원구조”라는 최악의 오보를 낸 그때 이후, 언론이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론을 대하는 권력자들의 태도와 언론인들의 행실은 정말 ‘유감’이다.

🔖 권력이 요구하는 협조 체제와 예의범절, 국익과 액구심은 통치자의 논리일 뿐이다. 언론은 통치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_1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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