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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유토피아는 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또는 이상향(理想鄕)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유토피아를 꿈꾼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은 디스토피아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유토피아를 향해 다가갈 수 있을까? 유럽의 젊은 사상가로 새롭게 떠오른 네덜란드의 저널리스트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유토피아로 가는 어찌 보면 굉장히 급진적인 방법을 우리에게 제안한다. 그는 기본 소득의 무조건적인 보장과 주당 15시간 근무, 국민총생산량이 아닌 삶의 질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수치의 지정, 과세(노동의 가치의 이동)와 로봇 재분배를 주장한다.
앞서 이 장의 제목이 가리키듯 누구나 수혜를 받아야 한다. 일종의 호의가 아니라 권리여야 한다. 따라서 무상 현금지원을 “공산주의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길”이라고 부르자. 이것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수당을 매달 지급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해 유일한 조건이라면 “맥박이 뛰는 것”이다.
-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中
그의 유토피아 플랜의 첫 번째는 바로 무조건적인 기본소득 보장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사람에게 기본 소득을 현금으로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굉장히 파격적이다. 아무 대가 없이 돈을 준다면 사람들이 나태해지고 돈을 마구잡이로 쓸 것이라고 믿는 우리에게는 헛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조사에 따르면 기본소득에 대해 각지에서 이루어진 여러 연구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기본 소득이 주어진 사람들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자신이 필요한 곳에 돈을 쓰며 여유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기본소득의 무조건적인 보장은 모든 사람이 정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정말 기본적인 조건은 갖출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조건이 없어야 하는가? 저자는 빈곤이 사람의 결정을 방해한다고 보았다. 빈곤과 그것이 초래한 환경 때문에 빈곤한 사람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맞추기는커녕 애초에 지원책을 찾아볼 여유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정말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회 복지 정책으로 그들을 물가로 끌고 갈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물가로 갈 수 있게 돈을 주면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기본 소득의 무조건적인 보장은 그의 다음 주장과 연결된다.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가족, 공동체 생활, 레크리에이션처럼 자신에게 역시 중요한 다른 활동을 할 여유가 생긴다. 주당 근로시간이 짧은 국가에 자원봉사자와 사회 자본이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中
두 번째 주장은 바로 주당 근무시간을 줄이자는 것이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주당 근무시간을 15시간으로 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근로 시간과 생산성이 반비례한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주지하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근무시간이 긴 것이 사회적으로 이득일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자동차 회사 포드의 초대 회장이 포드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을 줄였더니 생산성도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포드의 매출도 좋아졌다고 한다. 이처럼 근무시간을 줄이게 되면 우리는 최대의 생산성으로 일할 수 있으며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의 나를 개발할 시간을 가지게 된다. 나를 개발하는 시간은 정말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주변의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사회에 봉사하는 일을 포함한다.
이것은 기본소득과 연결되는 주장이다. 개인의 근무시간을 줄이면 기업에서는 기존의 인원보다 많은 인원을 고용해야 하므로 국가에서 개인의 근무 시간을 줄일 수 있게 기업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근무시간이 줄 경우 기존에 비해 돈을 덜 벌게 됨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 소득이 제공되기 때문에 우리가 굳이 무리해가며 오랜 시간 근무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나쁘지 않다.
사실 기본소득을 조건 없이 제공하고 주당 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로 세상을 보아야한다는 그의 제안은 그가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완전히 타당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고, 너무 극단적이라 일반적으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워 보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인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이 전혀 틀린 제목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이 책을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이 책을, 적어도 이 책의 10장을 다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한 사람의 반대 목소리가 상황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에 속한 단 한 사람이 진실을 고수하면서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다른 실험 대상자들은 그 주장을 믿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것은 광야에서 혼자 외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발견이다. 구러니 쉬지말고 하늘에 궁전을 짓자. 때가 올 것이다.
-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中
패러다임의 변화에는 항상 (다수의) 반대 세력이 있다. 왜냐하면 기존에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관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 너무 익숙한 세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는 일은 항상 만만하지 않다. 특히 우리에게 팽배한 ‘경제학’적 사고를 방식으로 하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학문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반박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저자가 10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역시 소수의 목소리로 세상을 뒤집는 세계관이었다. 소수이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에 마치 만고불변한 진리처럼 여겨지는 패러다임인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알려준다.
뤼트허르 브레흐만 역시 자신의 주장이 상당히 급진적이며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책을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라고 내세운 것은 그만큼 자신이 연구한 유토피아에 대한 자신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여러 장에 걸쳐 그는 그의 생각을 입증할 수 있는 많은 연구 사례들을 분석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사례들을 살펴보았을 때, 우리는 그가 말하는 유토피아 플랜에 희망을 품게 된다.
또한 그가 무엇보다도 자신을 가지고 세상에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대중의 유토피아를 믿기 때문이라고 본다.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산다는 것은 보통의 도덕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유하고 있는 유토피아의 기본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똑같은 수준으로 잘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누구도 배를 곪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삶을 꿈꾼다. 이런 생각을 우리가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국제구호단체 활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행하는 봉사활동, 기부 활동 등이 뒷받침해준다. 우리는 모두 같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살자는 저자의 기본 발상과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을 제시한 이 책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앞으로 유토피아의 모습은 이럴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실천해야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신문 기자라는 출신답게 그는 정확하고 논리적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이 책에 잘 담아냈다. 아마 이런 특징 때문에 책의 제안에 동의할 수 없는 우파나 온건한 좌파이더라도 한번쯤 진지하게 끝까지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