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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로 읽는 세상
김일선 지음 / 김영사 / 2017년 10월
평점 :
우리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단위를 받아들여서 살고 있다. 기온은 몇도인지, 오늘 가는 곳은 몇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지, 지금은 몇 시 몇 분인지, 오늘 먹는 밥은 몇 칼로리일지, 내 신발의 사이즈는 몇 센티미터인지, 내 핸드폰의 남은 메모리는 몇 GB인지와 같은 질문들을 우리는 수시로 던지며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단위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왜 우리는 기온을 섭씨로 나타내지?', '언제부터 센티미터를 썼을까?' 와 같은 질문을 간혹 떠올릴 수는 있지만 진지하게 고민해보진 않았다.
단위는 문명을 지탱하는 중요한 다리이면서
멋진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창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싶다. 최고의 과학과 기술이 결합해서 아주 정교하고 세심하게 만들어져 있는, 세상을 보는 멋진 창을.
- <<단위로 읽는 세상>>중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단위는 사람이 과학적으로 만들어낸 장치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생각과 문화를 담고 있다. 따라서 단위에 대해 알아보면 우리의 세계관과 가치를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일선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제어계측공학을 전공하고 IT분야의 세계적인 기업에서 개발 및 기획을 맡다가 현재는 IT 분야의 컨설팅과 전문 번역 및 저작 활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단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공학도로서의 삶을 살아온 그는 단위가 어떻게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줄 수 있는지, 단위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게 친절하면서도 유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단위가 보여주는 세상
오히려 분침이 만들어짐으로써 사람들은
시간을 분 단위로 나누어서 쓰는 생활을 강요받기 시작한다.
기술이 인간의 생활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TV나 인터넷, 스마트폰이 출현하고부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시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 <<단위로 읽는 세상>>중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한결같은 세상을 살아오지 않았다. 단위도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변하는 만큼 단위도 변화해왔다. 뿐만아니라 단위는 지역별로 다르게 활용되기도 한다. 단위가 이렇게 다른 것은, 그리고 변화하는 것은 그것이 사회 구성원 간의 합의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단위에 우리의 가치가 담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단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화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진나라, 근대의 프랑스와 미국은 국가 건립 초기에 새로운 도량형을 도입하며 도량형의 통일을 꾀했다. 이는 이전까지의 국가와는 전혀 다른 국가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새로운 국가의 국민이라는 통일된 정체성을 부여하고자 한 노력이다.
우리 모두의 약속, 단위
단위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중요 수단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단위의 종류가 많아지고 체계적으로 정리되게 마련이다.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다양한 물리적 개념을 표현하고 측정하는 방법이 더욱 정교하게 발전하는 것이다.
- <<단위로 읽는 세상>>중
우리는 단위 없이 소통할 수 있을까? 아마 단위가 없다면 우리는 소통하기 어려울 것이다. 단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어떤 양이나 정도를 객관적으로 표시할 수 있게 만들어준 약속이다. 단위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좀 더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기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오늘 날이 얼마나 춥냐고 물었을 때, 누군가는 오늘은 얼어죽을 것 같은 날씨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오늘 날이 선선하다고 말할 수 도 있다. 즉, 자신의 감각을 바탕으로 날씨를 표현하기 때문에 질문을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리송해질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기온을 섭씨 혹은 화씨를 활용해서 표현한다면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 날씨인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표현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단위는 점점 더 늘어날 뿐만 아니라 정교하게 만들어진다.
단위를 적지 않아 중간고사에서 0점을 맞았었다는 서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어떤 독자가 와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만 하다. 과학, 특히 수학에서 기초한 많은 과학 지식과 거리가 먼 나조차도 단위에 숨겨진 역사를 비롯한 다채로운 이야기에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갔다. 요새 말하는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이라는 것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정말 아쉽게도 단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두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됨으로 여기에 다 풀어놓을 수는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활용하는 센티미터나 칼로리에서부터 인체에 흡수된 방사선 양을 재는 시버트까지, 다양한 단위에 대한 이모저모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특히 책의 부록으로 들어있는 7인치/18센티미터 자가 책갈피로 아주 유용하다. 게다가 국제단위계의 7가지 기본 단위까지 담겨 있어 상식도 쌓이니 금상첨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