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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평점 :
한 줄 요약: 행복보다는 고통이 더 많은 삶에도 우리가 계속 살아나갈 방법을 탐구하는 소설.
모두가 행복을 바라지만 행복은 우리가 바라는 만큼 평범한 것이 아닌 듯하다. 우리가 흔히 건네는 ‘행복하세요.’라는 인사말에는 행복이 그만큼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행복에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이 되어 다들 행복을 찾아 떠나지만, 행복을 성취한 이들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한 일로만 가득하지 않은, 오히려 고통스러운 일이 더 많은 인생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시그리드 누네즈의 장편 소설 <어떻게 지내요>는 이런 고민이 잘 녹아 있는 소설이다.
책 <어떻게 지내요>는 죽음을 앞둔 친구와의 여행을 떠나는 얘기를 통해 죽음과 삶,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민, 여성의 삶 등을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담아낸 소설이다. 1부에서는 삶에 산재한 다양한 고통을 여러 인물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내용이 주가 된다. 2부에서는 죽음을 앞둔 친구와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나며 유대감을 쌓으며 삶에 대한 고민이 그려진다. 3부에서는 앞선 부에서 그려졌던 모든 고민이 절정에 치닫게 된다.
책의 제목인 ‘어떻게 지내요’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영어식 안부 인사 ‘How are you?’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소설 속에서 저자는 화자를 통해 시몬 베유의 말에서 따온 ‘어떻게 지내요’는 사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그만큼 저자가 그려낸 삶은 행복보다는 수많은 고통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삶을 곤란하게 만드는 고통이 두 가지 결로 나눠서 그린다. 환경 오염, 정치적 불화, 계급 간의 갈등, 파편화, 이기주의 등의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적 문제로 인한 거시적인 고통. 그리고 나이 듦, 질병, 인간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미시적이지만 가장 보편적인 고통이 책 전반에서 나타난다. 서로 다른 결의 고통인 것처럼 보이지만 소설 속에서 두 방식의 고통은 미묘하게 결합되어 삶 전반에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개인들이 느끼는 고통을 심화시킨다.
일반적으로 삶과 죽음은 이항대립적인 개념으로 다뤄지지만, 고통 앞에서는 두 개념이 크게 대립되지 않는 듯하다. 암에 걸린 친구와 여행을 떠난 화자를 통해 우리는 간접적으로 죽음에 가까워지며 겪는 두려움과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분명 살면서 여러가지로 고통받는 친구지만 그녀는 좀처럼 죽음으로 떠나지 못한다. 이러나저러나 고통스러울 뿐인 삶과 죽음 사이에서 친구의 갈등을 보자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이 과연 맞을까 하는 고민이 든다.
책을 읽다 보면 고통과 번뇌로 가득한 삶을 왜 살아야 하냐는 질문이 도출된다. 이에 대한 작가의 대답은 제법 명료한 것 같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 굴러가기에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고. 독자들은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까?’ 하는 질문을 자연스레 던지게 된다.
소설에선 계속 살아나갈 방법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해주고 연민하며 연대를 이루는 것이 조심스럽게 제시된다. 화자는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짐을 함께 나눠지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이 해결되지도 않고, 때로는 그들의 고통에 그녀 자신조차 잠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달리 고통과 잘 지낼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작가는 고통을 없앨 수 없으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연대라고 이야기한다.
고통으로 가득 찬 소설이지만, 시종 무겁게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때로는 가벼운 웃음이 터지는 일화들과 무거운 주제 의식이 잘 버무려져 삶의 아이러니를 오히려 잘 드러낸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비극적인 일로만 인생이 가득 채워지지는 않듯이 말이다.
삶이 너무 각박해서 ‘어떻게 지내요’라는 말이 따뜻하게 느껴질 만한 요즘이다. 어째서 나는 행복하지 못하고 늘 고통으로 가득찬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고민하며 괴로워하고 있다면 <어떻게 지내요>를 읽으며 이 질문에 상투적인 ‘아임 파인, 땡큐. 앤드 유?’가 아니라 진심으로 답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