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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평점 :
"아름다움의 신화가 진화나 성, 성별, 미학, 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그것은 친밀한 관계와 성과 삶에 관한 것이라고, 여성을 찬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감정적 거리와 정치, 돈, 성적 억압으로 구성되었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절대 여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남성의 제도와 그에 따른 권력에 관한 것이다.
-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35pp. “
20세기 미국의 각종 차별과 사회적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진보적 사회적 비평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나오미 울프는 아름다움이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이유와 그것이 작동하는 원리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르다고 본다. 1990년, 저자가 스물여덟 살이던 해에 그녀는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원제: 아름다움의 신화 The Beauty Myth)』를 통해 유독 여성들에게만 요구되는 ‘아름다움’이 정말 그렇게 여성들에게 중요한 미덕이고 당연히 갖추어야할 덕목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반문을 제기한다.
“사실 사회는 여성의 외모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여성이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가질 수 있고 무엇을 가질 수 없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말하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을 지켜보는 것은 ”좋은 여성“이 되라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165 pp.”
저자인 나오미 울프는 여성들에게 아름다움이 일종의 현대판 종교-신화와도 같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왜 아름다움은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것인가? 저자는 그것이 기득권층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자신의 이득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기득권층은 단순히 남성 일반이 아니다. 우리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름다움이 단순히 외모의 다양성을 묶어두려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행동과 정신을 묶어두려는 것임을 파악해야한다. 저자는 아름다움의 신화가 어떻게 우리 일상에 들어와서 작용하고 있는지를 일, 문화, 종교, 섹스, 굶주림, 폭력(성형 수술)이라는 여섯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의 신화’라는 그녀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증거들이다. 약간은 투박하고 딱딱하게 읽힐 수 있는 문체와 우리가 마치 불고의 진리와 같다고 알고 있던 ‘아름다움’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오미 울프의 책을 억지 주장이라고,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모두 저자가 내세운 법원의 판례, 실제 광고 카피 및 각종 통계와 인터뷰 등의 증거가 그녀의 가설을 탄탄히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울프는 그 증거들을 논리적이고 유기적으로 잘 연결하여 사람들에게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설득력 있게 잘 풀어서 이야기 한다.
저자의 가설에서 주목할 만한 점 중 하나는 바로 아름다움이 강요되는 이유를 단순히 성(sex)에서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흔히 여성의 섹슈얼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아름다움이 강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오미 울프는 현대의 여성에게 요구되는 아름다움에는 겉으로 보이는 섹슈얼함만이 아닌 이면의 다른 요소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현대 여성에게 요구되는 아름다움이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나올 수 없는 ‘철의 여인’이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향을 꿈꾸게 해서 여성의 내면의 자존감을 낮추었다고 본다. 또한 지나치게 마른 몸매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불평등함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게, 자신을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치장하는데 바빠 제대로 일에 몰두할 수 없고, 피학적인 섹스의 이미지로 섹스를 진정으로 즐길 수 없게 만들어 여성들이 자신들을 드러내고 인생을 즐길 권리를 앗아갔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다각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아름다움이 여성에게서 앗아간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앗아간 것인지를 탄탄하게 그려낸 책은 많지 않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를 나는 페미니즘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남자 대 여자의 대결 구도로 갈등하는 양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더 심한 갈등 구조로 가는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페미니즘의 방향에 대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과연 누가 여성의 인권을 앗아갔고, 누가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가? 나오미 울프의 책은 여성들을 억압하는 ‘아름다움의 신화’라는 장치가 단순히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남성 중에서도 사회 권력 구조에서도 가장 위의 권력을 차지하고 시장을 움직이는 자들이야 말로 여성의 권리를 갉아먹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는 적이라고 지적한다.
“섹스를 한낱 “아름다움”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미지, 미인을 비인간적인 것으로 만드는 이미지, 그녀를 에로틱하게 포장해 고문하는 이미지가 정치적·사회경제적으로 환영받는 것은 그것이 여성의 성적 자부심을 무너뜨리고 여성과 남성이 서로 떨어져 적대시해야 굴러가는 사회질서에 그들이 함께 손잡고 맞설 가능성을 낮추기 때문이다. ···(중략)··· 이성애는 경제에 피해를 줄 위험이 있다. 사랑하는 남녀 간의 평화와 신뢰는 세계 평화가 군산복합체에 나쁜 만큼이나 소비 경제와 권력구조에 나쁠 것이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233pp.
하지만 한국에서 여성 차별을 논할 때에는 종종 그것이 제도의 문제가 아닌 남자들의 문제인 것 마냥 여겨지고 있다. 울프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신화’로 드러난 여성 차별은 여성이 여성으로의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연대하여 기득권층에 반발할 수 없도록 우리를 떼어놓는 것이다.
우리 모두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남녀 모두 평등하기 위한 운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는 여성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는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여자와 남자의 연대를 이끌어 낼 수 있게 노력해야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사랑하고 존중하며 세상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을 다르게 볼 줄 아는 눈도 키워야한다고 말해준다.
‘흠 없는 미인’에 중독된 현대인을 위한 필독서라는 말처럼, 단 한번이라도 나의 외모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는 사람, 그 반대로 남에게 외모를 지적해본 적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긴 여성의 ‘아름다움’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