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게 사는 것 같지만 사실 나는 아프다
문기현 지음 / 자화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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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늘 행복할 수 없다, 희로애락이 뒤범벅이 된 일상을 사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힘든 마음을 혼자 지고 가는 외로움에 지칠 때 우리는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다. “요즘 어때요?”하고 말이다. 문기현의 에세이는 이런 질문에 자신의 에세이 아무렇지 않게 사는것 같지만 사실 나는 아프다로 대답한다.

 

혼자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는 작가 소개란의 작가의 말이 눈에 꽂힌다. “일상의 외로움을 나눈다.”라는 표현처럼 그의 에세이는 정말 그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 같을 정도로 일상의 외로움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관계에 대한 고민,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 자신의 감정과 마음에 대한 고민 같은 여러 일상 속 고민들이 모여 이 에세이를 이루었다.

 

특별한 장 구성이 없이 작은 글들을 모아 만들어진 에세이라서 작가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잠깐씩 들여다보는 거니까 굳이 처음부터 쭉 읽지 않아도, 어디서부터 읽든 좋다. 마음 내키는 대로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거리낌 없이 잘 읽힌다. 보통 책을 앞에서부터 뒤로 읽어나가는 성격이지만 이 책은 그렇게 읽었다. 오히려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렇게 잠깐씩 읽어나간 이 에세이들은 나에게로 와 닿는다.

 

누군가 내게 물어줬으면 하는 말.

나를 염려해주는 이 하나 없던 어느 밤,

나는 대신 당신의 안부를 묻는다.

괜찮느냐고.

외롭진 않느냐고.

더 좋아질 거라고.

그러니 오늘은 마음 편히 쉬어도 된다고.

- 아무렇지 않게 사는것 같지만 사실 나는 아프다

작가는 자신이 괜찮지 않을 때, 누군가 자신의 안부를 물어줬으면 하는 날 다른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다는 이야기로 이 에세이를 시작한다. 나는 반대로 자신의 일상의 외로움을 털어놓은 이 에세이가 마치 내게 안부를 묻는 듯하다. 나는 이렇게 지내고 있어 너는 어떻냐고, 너는 괜찮냐고 내게 물어오는 것만 같았다. 마치 작가인 문기현과 대화를 나누듯이, 나 혼자 마음속으로 나는 괜찮은지 물어보면서 나의 마음과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 에세이의 제목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는 것 같지만 사실 나는 아프다.’ 사실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공감할 문장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일상에서 각자의 몫만큼의 아픔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 에세이를 읽으며 자신의 아픔을 보살피게 될 것이다. 타인이 안부를 물어볼 때에는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나 스스로에게 이 에세이를 읽으며 안부를 물으며 답하게 된다.

 

위로가 될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우리들의 일상이 묻어나 있는 삶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일상이 삶이 되는 소박하지만 단단한 여정을,

너와 내가 걷는 그 위대한 하루를 말이다.

- 아무렇지 않게 사는것 같지만 사실 나는 아프다

 

위로가 될 말을 하기 보다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는 에세이 속 작가의 말은 우리의 일상을 다독여준다. 그런 고민을 당신만 하는 것이 아니며 모두 그렇게 고민하며 힘들게 인생을 살고 있다고, 당신도 버틸 수 있다고 말이다. 또 당신이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사는 것이 그렇게 당신만의 인생을 완성해가는 것이라고 응원해준다.

 

이 책을 고민이 많은, 나만 이렇게 힘든 것 같은 시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나에게 안부를 물어주는 이 에세이를 읽으며 자신을 한 번 다독여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금만 더 힘내서 내 일상을 살 수 있기를 말이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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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미니북)
알베르 카뮈 지음, 김민준 옮김 / 자화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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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인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어머니를 매장하였으므로 나는 이 사람의 죄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검사가 위와 같은 논리로 사형을 요구한다면 어떨까? 이런 논리로 한 사람에게 사형을 내리다니, 나도 모르게 물음표가 머릿속에 뜨는 전개이다. 물론 이방인속 검사는 단지 어머니를 범죄인의 마음을 가지고 매장했다고만 해서 그에게 사형을 내릴 것을 청하지는 않았다. 뫼르소가 저지른 살인이 계획 범죄라는 자신의 생각을 배심원들과 판사에게 강력하게 호소하기 위한 기적의논리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어떻게 저런 논리가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도대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어떤 소설인가?

 

이방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가인 알베르 카뮈의 간단한 소개글 정도는 필요하다. 뫼르소는 카뮈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카뮈는 1913년 알제리 몬도비에서 태어났다. 그렇다면 카뮈는 알제리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당시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카뮈는 알제리의 프랑스인이었다. 중등학교는 프랑스로 입학했지만 알제리 대학에 들어가며 다시 알제리에 가게 되었지만 폐결핵으로 자퇴를 하게된다. 그는 26세가 되던 해부터 이방인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만 29세가 되던 해 이를 발표하며 문학가이자 사상가(실존주의), 희곡 작가로 활동하다가 1957년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이방인을 읽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실존주의는 쉽지 않은 사상이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일반적 본질보다도 개개의 인간의 실존, 특히 타자(他者)와 대치(代置)할 수 없는 자기 독자의 실존을 강조(출처: 두산백과)’한 사상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렇게 이야기해서는 잘 이해가 되지도 않을 뿐더러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방인을 읽으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충실하여 삶을 사는 뫼르소를 보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방인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뫼르소 어머니의 죽음에서부터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른 날까지, 2부는 뫼르소의 재판과정을 그린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타인이 보기에는 너무나 무심했다. 그는 어머니 장례가 끝나고 마리라는 여자와 사귀게 되고 희극영화를 보며 일상을 즐긴다.’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 계기는 자신의 친구인 레이몽/레몽을 공격한 아랍인과 우연히 마주쳐 단둘이 대치하게 되었을 때 보게 된 태양이다. 그는 타인에게 별다른 설명없이 태양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 태양 때문이라는 말의 의미는 아랍인이 들고 있던 단도에 햇빛이 부서지는 그 빛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 아랍인의 공격 의사를 확인하고 자기 방어를 위해 총을 쐈던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에 무심했다는 것과 총을 네 번이나 쐈다는 이유로 계획 살인을 저질렀다는 검사의 주장에 따라 사형을 구형받게 된다.

 

당신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살고 있으니 마치 죽은 사람 같으며, 삶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없는 것과 같다. 당신의 눈에는 내가 보잘것없는 존재로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나 자신과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것은 당신보다 강하다. 또 나는 내 삶과 나를 가까이서 기다리고 있는 죽음에 대한 뚜렷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진리를 나는 붙들고 있으며, 나는 오직 그 진리를 꼭 붙들고 있다.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뫼르소는 확실히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방식으로 어머니를 애도하지도 않으며 주변 사람들을 보통 사람들과 어딘가 다르게, 좀 많이 무심하게 대한다. 맨 처음 이방인을 읽었을 때에는 나도 뫼르소가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재차 읽어보니 뫼르소의 삶의 방식을 존중할 수 있었다. 뫼르소의 삶의 방식은 보통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기엔 냉정하고 무심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뫼르소 자신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의 욕구와 삶에 대한 명백한 기준을 알고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의 삶의 방식의 특징인 무심함의 이유를 우리는 소설 막바지에 이르러 깨닫게 된다.

 

그의 삶의 방식 중 하나는 관심에 대한 다른 이해이다. 보통 관심이라 하면 굉장히 애정 어린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뫼르소가 느낀 관심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도, 그가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에도 대중의 관심은 어설픈 관심이자 호기심에 불과했다. 그는 개인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한 관심에 대해 염증을 느낀다. 타인을 어떤 특정한 기준에 맞춰 재단하려고하는 그런 관심에 뫼르소는 홀로 반발하는 것이다. 뫼르소는 한 사람을 그 사람 그대로 이해하고 느끼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설프게 타인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보다는 다정한 무관심으로 타인을 존중한다.

이러한 뫼르소의 삶의 방식은 태양/햇빛과 저녁/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알제리의 뜨거운 태양과 햇빛을 그는 싫어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견디기 힘들어하고 스트레스 받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뜨거운 여름의 태양은 사람들이 원치 않아도 사정없이 뜨겁게 내리쬔다. 반면에 저녁과 밤, 즉 달이 지배하는 시간은 조용하고 잔잔하게 흘러간다. 이런 태양과 저녁()은 관심과 무관심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태양처럼 원하지 않아도 지나치게 타인의 삶에 열정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태도와 달처럼 잔잔하게 타인의 삶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적당히 무관심한 태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뫼르소는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어머니의 삶의 방식을 믿었기에 그다지 슬퍼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혐오하는 살라마노 영감과 성매매 뚜쟁이인 레이몽/레몽에게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여자친구인 마리를 검사가 말하듯이 정부라던가 여자친구라는 어떤 정체성을 씌우지 않고 마리라는 사람으로만 받아들였다. 어설프게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삶의 방식이 무심하고 냉정한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비추어지며 뫼르소는 이방인이 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관심이 물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나의 기준에서 타인을 재단하려는 태도는 굉장히 일방적인 것이다. 일방적인 관심은 타인에 대한 이해 수준을 수박 겉핥기정도만 되게 만든다. 우리나라는 표면적인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런 타인의 표면적 관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너무 많다. 타인의 관심이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나친 관심은 지양하는 것이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리고 타인의 지나친 관심을 지양하는 것이 결론적으로 자신의 삶을 존중받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도서출판 쿵의 브랜드인 자화상에서 내놓은 세계문학 시리즈로 만나 본 이방인은 꽤 괜찮았다. 이방인1,2부 뒤에는 카뮈가 더 읽어보고 싶어졌을 독자를 위해 카뮈의 단편인 <요나-작업 중인 예술가>가 함께 실려 있다. 이방인의 번역에 대해 새움에서 시작된 논란이 꽤 시끌벅적했던 터라 이방인을 번역가가 다른 문예출판사, 민음사 버전으로 읽어봤었다. 그렇게 이방인내용에 좀 익숙해져서일 수 있겠지만, 문장이 매끄러운 편이었다. 기존의 이방인은 읽기에 거친 느낌이 있었다면, 자화상 시리즈로 나온 이방인은 좀 더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다. 미니북 사이즈로 나왔음에도 미니북의 단점인, 너무 작아서 읽기 불편하다는 점을 보완해서 읽기 편하게 편집되었다(한 페이지에 18)는 느낌도 많이 받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번역에 대한 주석이 없고, 번역가에 대한 소개가 없다는 것이다. 번역을 하다보면 우리 문화권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그에 대한 간단한 주석이 달렸다면 좀 더 이해하기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번역가 소개는 번역가 논란이 있었던 이방인이기에, 어떤 사람이 번역했는지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독자들이 이 번역가는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궁금해 할 수 있는데 번역가에 대한 소개가 없다는 것은 불친절하게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은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것이므로 크게 아쉬운 점은 아니라는 점!

 

부조리한 관심에 지친 사람들, 그리고 타인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방인을 추천해주고 싶다. 관심에 대해, 부조리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알베르 카뮈의 글이 당신을 눈 깜짝할 새에 태양이 작렬하지만 자연이 아름다운 알제리로, 뫼르소의 옆으로 당신을 데려다 놓을 것이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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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린 데 자긴 싫고
장혜현 지음 / 자화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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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린데 자긴 싫고라는 제목은 나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마치 민간인 사찰이라도 당한 듯 묘한 기분으로 이 에세이를 집어 들게 되었다. 요새 종종 몸은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잠이 오지만 정신은 무언가 때문에 깨어 있어서 좀처럼 잠들지 못한다. 아마 내 정신이 잠들지 못하게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스트레스일 것이다. 나뿐만이 많은 사람들이 졸리지만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 스트레스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양할 것이다. 발표가 있어서, 시험이 있어서, 중요한 면접이나 미팅이 있어서, 사랑 때문에 이런 다양한 이유가 우리의 잠을 방해한다. 이 많은 이유 중에서 졸린데 자긴 싫고의 작가인 장혜현의 잠을 방해한 것은 이별이다.

 

이 에세이는 장혜현 작가가 겪었던 이별과 혼자 떠났던 여행의 감상을 모두 담고 있다. 책을 넘기다가 문득 왜 이별을 제재로 한 듯한 에세이에서 혼자 떠난 여행을 끌어와 쓴 것일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책을 다 읽고나서야 깨달았다. 이별과 혼자 떠난 여행은 닮았다. 혼자 떠나는 여행과 이별의 공통점은 혼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별을 하며 익숙해진 관계에서 벗어나 혼자가 된다는 것이 주는 묘한 상실감은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과 유사하다. 그렇게 낯설어진 혼자라는 독립적인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으로 이별과 혼자 떠난 여행의 연결은 이 에세이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볼 때, 이 에세이는 단순히 이별을 이야기 한 에세이라기보다는 혼자가 된다는 것을 다룬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 번 계절이 바뀌는 날들에 이르렀어요.

 

처음이라는 듯 내릴 새하얀 눈과 다시 맞서야하는 매서운

바람이 벌써 두려워지지만 이 모든 것들을 또 한 번 이겨낸

다면, 우리는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저는 지금보다 한 발짝만이라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졸린데 자긴 싫고

 

장혜현 작가는 이 에세이에서 혼자가 된다는 것이 주는 상실감만이 아니라 혼자가 되며 배워나간 것들을 충실히 담아낸다. 관계 속에서 살고 있던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관계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관계에서 벗어나며 느끼게 되는 상실감과 나 혼자 세상을 살아나간다는 것이 주는 공포감 때문에 우리는 혼자가 된다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렇지만 혼자가 된다는 것은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함께 할 때에는 알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내가 관계 속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이 관계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나는 누구인지 이런 다양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된다. 또 내게 닥쳐온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며 내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다질 수도 있고, 오히려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럼 떠나볼까?’

오늘 밤은 낯선 곳으로 떠나고픈 밤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늘 여러분의 여행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지금 혼자 타국에서 계실 모든 분의 외로움이

멋있습니다.

우리 평생 여행하며 살아요.

- 졸린데 자긴 싫고

 

관계 속에서 길을 잃고 도피하듯이 떠난 여행에서 그녀는 성장한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방황하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관계에 속해 있지만 여행을 떠나면 익숙한 관계에서 벗어나며 새로운 사람들 속에 던져지게 된다. 사랑과 이별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하는 관계가 일상이 된다. 그러다가 이별을 하게 되면 익숙한 둘이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짝 없는 관계가 된다. 그 불안정한 모습에서 그녀는 벗어나 다시 일상적인 관계로 돌아가고자 발버둥 치게 된다. 그런 발버둥의 과정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방황하는 시간 속에서 그녀는 자기 자신과 그 감정을 온전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게 혼자가 되면서 느낀 감정들과 깨달음으로 그녀는 한층 성장하게 된다. 그렇기에 그녀는 혼자가 되어보는 것을, 여행을 응원한다고 말한다.

 

인생은 혼자보다는 둘이 나아요.

우리 모두 사랑하며 살아요.

- 졸린데 자긴 싫고

 

혼자가 되고 느낀 이야기를 담은 이 에세이에서 작가는 혼자가 인생의 지향점은 아님을 밝힌다. 혼자만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 인생의 다음 페이지인 새로운 관계로 넘어갈 수 있게 준비할 수 있다. 혼자여도 세상을 살 수는 있지만 관계에서 벗어나면서 느끼는 외로움이 있으며, 관계에서만 받을 수 있는 다채로운 감정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멋지다고 얘기하는 한편으로는 사랑하며 살자고,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고 이야기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여행과 이별을 잘 교차해서 연결시킨다는 것도 있지만 솔직한 표현에 있다. 장혜현은 앞날개에 들어간 작가소개에서 사랑을 통해 소모한 감정을 충전하려 여행을 떠난다고 밝힌다. 감정은 소모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자신의 생각이 그녀의 글에서 묻어난다. 온 마음을 다 던져 사랑했던 기억과 그 이후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진솔하게 적었다. 이별 후 찾아오는 더 잘할 걸이라는 후회와 어쩔 수 없었다는 다독임, 다시 사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미련과 같은 감정이 뒤죽박죽이 된 상태가 잘 묘사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된다. 이 에세이 속 작가의 상태처럼 이별이라는 이유로 '졸린데 자긴 싫고' 상태가 된 나는 자연스레 감정의 흐름을 쫓아갈 수 있었다.

 

나와 장혜현 작가와 같은 이유로 '졸린데 자긴 싫고' 상태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잠이 오지 않는 밤 혹은 새벽 이 책을 펼쳐 읽다보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질 것이다. 포근한 민트색 바탕 표지에 들어간 퐁신한 베개처럼 이 에세이가 혼자가 된다는 것에 괴로운 당신을 위로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시간과 감정을 잘 추슬러 다음 관계로 잘 넘어갈 수 있기를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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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계절
백가희 지음, 한은서 그림 / 쿵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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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과 사랑을 하는 것은 그와 계절을 함께하는 것이다. 그 사람과 함께한 모든 순간은 차곡차곡 쌓여 계절이 되고 그 계절이 모여 사계절이 된다. 그렇게 기억된 사계절은 헤어진 후에도 찾아온다. 그러면 철마다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씁쓸해지고야 만다. 백가희의 에세이 너의 계절은 이별 후에 사랑했던 순간의 감정과 기억을 떠올리는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 한다.

 

꼭 사랑이 아니라도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헤어진 애인, 잊지 못할 첫사랑, 절교한 친구

그들에게 보내는 헤진 반성문입니다.

나의 실수로, 당신의 실수로, 실수하지 않았더라도

서로의 곁을 떠나 각자의 삶을 찾으러 간

나의 모든 당신들에게 바칩니다.

-너의 계절, 에필로그 중

 

사랑하는 감정은 함께할 때에는 나눌 수 있는 감정이다. 그렇지만 헤어지고 난 후 찾아오는 감정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감정이다. 이별 후에 느끼는 감정과 기억은 오롯이 나 혼자 지고 가야한다. 입으로 전해지는 말이 두려워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 백가희의 문장은 섬세하게 자신이 품었던 이별의 감정을 그려냈다. 작가는 자신과 헤어진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과 인연을 맺었다는 증표인 기억과 기억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이 에세이에서 곱씹는다. 헤어진 사람들에게 전할 수는 없었던 이야기를 마치 반성문을 쓰듯 글로 전한다.

 

너의 계절은 짤막한 프롤로그로 시작해서 <1부 마음을 안아주는 일>, <2부 계절의 끝, 너의 마음을 헤아린다>, <3부 사람들은 우리를 필연이라 불렀다>와 짧은 에필로그, 그리고 소설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헤어지고 난 후 자신의 생활과 마음을 담았다면 2부에서는 헤어진 사람을 털어내기 위해 오히려 그 사람과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3부에서는 점차 이별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렇듯 작가는 이별 후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며 이별 후 찾아오는 다채로운 감정을 선보인다. 이별한 후 느끼는 감정은 안타까움, 후회, 슬픔, 고통도 있지만 어느 때에는 씩씩하고 꿋꿋하기도 하며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랑은 어떤 것도 구원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평안을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줬을 뿐이다.

-너의 계절, <2부 계절의 끝, 너의 마음을 헤아린다>

 

흔히 사랑을 시작하며 우리는 사랑이 우리를 구원해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가 몇 번의 이별을 거치며 깨달은 것은 사랑은 구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은 다만 사랑일 뿐이지 메시아가 아니다. 그렇지만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구원까지는 아니어도 항상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게 해주는 정도의 역할을 해준다. 우리는 사랑으로 그를 구원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 사람이 내가 있어 조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게 노력한다. 그렇기에 정말 사랑했다면, 사랑이 지나간 직후에는 정말 힘들지만 어느 노래 가사인 '너도 빨리 행복하면 좋겠어'처럼 헤어진 사람의 행복을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방식이 워낙 반대였음에도 서로가 애써 노력했던 것들이 무력해지는 순간이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더 이상 어떤 노력도 소용없어진 거다. 두 사람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은 으레 당연시되던 노력도 무가치한 소비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너의 계절, <3부 사람들은 우리를 필연이라 불렀다>

 

대부분의 경우에 이별은 사랑하는 방식이 달라서 찾아온다. 처음 사랑을 시작했을 때에는 모든게 좋아보이고 다 맞춰주고 싶어서 잘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관성 때문에 원래 자신만이 가진 사랑의 방식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때 우리는 흔히 '사랑이 식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변한 모습에 서로 상처입기도 하고 싸운다. 사랑은 그런 방식의 차이를 서로 인정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동반된다. 그렇지만 더 이상 타협하고 싶지도 않고 타협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이별이 찾아온다. 작가는 이 부분을 잘 지적해준다. 그런 이별 후, 우리는 '내가 잘못한 것인가' 고민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한계에 부딪혔을 뿐이다.

 

이별을 이야기 하는 이 에세이의 마무리는 고양이의 시점에서 쓴 소설이다. 소설<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은 작가가 키우는 고양이의 시점에서 작가와 고양이의 관계를 그렸다. 작가가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1부 초반에서도 언급된다. 왜 하필 고양이 이야기가 소설의 마무리이냐면 사랑에 대한 단상을 그렸기 때문이다. 고양이도 작가 자신도 이별을 경험했다. 고양이는 가족에게 버림 받은 기억이 있다. 작가 자신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기억들이 있다. 고양이와 작가는 비록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각자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그리고 아픈 마음을 보듬어 준다. 또다른 애정 관계인 것이다.

 

이별을 한 직후에 읽게 된 책이라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힘들었다. 그래서 막 이별한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지 않다. 어느 볕 좋은 봄날 사람이 많이 오가는 길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읽다가 눈물이 차올랐던 경험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이별하고 찾아오는 감정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그렸기 때문에 오히려 이별이 어느 정도 지나간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자신이 겪은 한바탕의 이별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너네도 몽땅 다 헤어져라'하는 못된 심보는 아니고, 이별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예쁜 사랑하시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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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챕터
위니 리 지음, 송섬별 옮김 / 한길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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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해쉬태그인 #Metoo.

자신이 당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인 미투 캠페인으로 일어난 파문이 심상치 않다. 우리는 미투 캠페인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보게 되었다. 그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을 의심하고 왜곡하며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당했다.'라고 사회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는 행동인 미투 캠페인을 둘러싼 논란이 많지만 그 불길은 사그러들지 않고 전역으로 번져나간다. 왜 그렇게 미투 캠페인이 멈추지 않는지, 왜 필요한지를 우리는 위니 리의 자전적 소설 다크 챕터를 통해 알 수 있다.

 

혼자 여행 다니는 것을 즐기는 비비안 탠은 출장으로 아일랜드 벨파스트에 방문하는 김에 혼자 하이킹을 즐기러 갔다가 동네 유랑민 소년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작가는 비비안 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재판 결과가 어땠는지만 알려주지 않는다. 위니 리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활용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두 사람의 생애를 묘사하면서 사건 이후 각자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를 그렸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리는 성폭력 사건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성폭행 사건은 관계자가 아닌 대중에게는 일시적인 사건 - 가쉽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폭행 피해자나 가해자에게는 그것이 인생의 흔들어 놓을 만한 사건이다. 단순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재판 결과과 어떻게 나왔는지(유죄 혹은 무죄?)처럼 자극적이며 단순한 부분에만 치중하는 것이 미투 캠페인을 비롯해 여타 성폭력 사건 고발을 보는 우리 사회이다. 이렇게 자극적인 부분에만 집중되는 관심으로 대중은 피해자에 피상적인 공감만 하게 되거나 아예 피해자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가해자에 공감하기도 한다. 위니 리는 자신의 피해 사실은 자신의 인생에 걸친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선을 모두 보여주는 진행방식은 무죄추정 원칙에 의거하여 피해자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탈을 쓰고 자행되는 은근한 비난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보여준다. 가해자인 스위니가 가진 비정상적인 성과 젠더에 관한 인식과 비뚤어진 피해의식이 혼합된 자기합리화와 자기 방어기제에는 흔히 합리적 의심이라고 하는 것들이 드러난다. 또한 비비안 탠은 비록 주변 사람들에 그런 무례를 당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법정에서 가해자인 스위니의 변호사에게 듣는 질문을 그런 합당한 의심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렇듯이 일부에서 주장하는 합리적인 의심은 사실 가해자에 이입하여 상황을 보는 것으로, 피해자에 또 다른 가해를 가하는 행위라는 점을 보여준다.

 

피해자에 대한 편견

위니 리는 1978년 뉴저지에서 태어난 타이완계 미국인이다. 그녀는 하버드 대학에서 민속학과 신화학을 전공하고 런던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문예 창작학을 공부했으며 현재는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미디어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는 한편 성폭력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단체의 공동설립자이기도 하다. 이런 작가의 배경과 정체성이 그대로 반영된 주인공인 비비안 탠은 중국계 미국인으로 역시 하버드를 나와 장학금을 받으며 영국에서 공부하고 영화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동양계 미국인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고학력자에 중상류층이라는 그녀들 정체성은 이 소설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그리고 그런 정체성을 바탕으로 쌓아올린 능동적인 여성상은 이 소설의 이야기 전개에 핵심적인 측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특징들은 위니 리와 비비안 탠을 일반적으로 대중이 성폭력 피해자에 기대하는 피해자상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설 속 비비안 탠은 성폭력이 일어날 때에도 죽지 않기 위해 최대한 사건에 협력하고 가해자에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비밀로 해주겠다고 한다. 성폭행이 끝나고 가해자가 사라지고 나서 친구를 통해 신고를 한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며 사건 다음날 예정된 시사회를 참석한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주변(보수적인 부모님을 제외)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능동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도움을 받는다. 재판 과정에서도 그녀는 도망치지 않고 사람들 앞에 서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변호사에도 맞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이런 모습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성폭력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삶의 의욕을 잃고 자신의 삶을 모조리 잃어버려 공포에 질린 피해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이런 비비안 탠의 모습은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했을 때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는 더 나아가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과 같이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성폭력 사건을 대처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응원한다.

 

'다크 챕터'를 어떻게 지나갈 것인가

비비안 탠은 자신에게 닥쳐온 '암울한 시기'를 주변인들의 애정어린 관심과 심리적인 연대를 통해 적극적으로 헤쳐나간다. 비비안 탠의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피해 사실을 듣고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자기검열 없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힘이 되어준다. 그녀가 그녀의 암울한 시기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주변 사람들의 지지 덕분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그녀에 지지를 보낸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의 부모님에게는 피해 사실을 숨긴다. 그녀의 피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다른 가족인 언니는 그녀의 피해 사실을 전해 듣고 비비안에 힘이 되어준다. 다크 챕터에서 나타난 것처럼 피해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그녀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게 응원하고 애정어린 지지를 보여준다는 것이 피해자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한편, 피해를 당한 뒤 비비안이 피해사실을 알리자 그녀의 회사가 취해준 조치(휴직과 수당 등)에도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뒤 회사에 알리면 비비안 탠이 받은 조치를 받을 수 있을까? 이런 부분은 사실 사회적인 안전망인 제도로 보장되어야 할 부분이다. 우리 사회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의식이 정립되기 위해 반드시 정착시켜야할 제도라고 생각한다.

 

예기치 못하게 다른 이야기들이 그녀를 찾아온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예전만큼 예기치 못한 일은 아니게 된다.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자주 성폭행으로 망가지는지. 이런 사실을 그녀는 처음으로 알게 된다.

친구의 친구.

이모.

언니.

학교 친구.

 

- 다크 챕터

 

비비안 탠은 자신들의 친구들의 지지를 받으며 숨어있는 피해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친구 혹은 이모 등 주변 사람들 사이에는 자신의 피해사실 조차 알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비비안 탠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고통을 공유하며 심리적인 연대를 하게 된다. 그런 경험은 그녀가 다시 한 번 용기를 낼 수 있게, 또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범죄 예방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당한 피해 사실을 신고해야한다는 생각에 까지 미친다.

 

#Withyou

비비안 탠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위니 리는 성폭력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어떻게 성폭력 사건을 보고 다루어야 할 지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힐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주장한다. 위니 리와 비비안 탠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인 다크 챕터를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지지로 비교적 '무사히' 통과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 있는 수많은 위니 리와 비비안 탠은 어떨까? #Metoo 를 통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드러낸 피해자들 역시 자신의 다크 챕터를 잘 마무리하고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맞이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아직도 #Metoo를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의심'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다.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점검해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폭력으로 인해 고통 받아온 수많은 여성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성폭력 사건은 절대 당신의 잘못으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당신의 삶이 거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멀리서 당신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자신을 사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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