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린 데 자긴 싫고
장혜현 지음 / 자화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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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린데 자긴 싫고라는 제목은 나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마치 민간인 사찰이라도 당한 듯 묘한 기분으로 이 에세이를 집어 들게 되었다. 요새 종종 몸은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잠이 오지만 정신은 무언가 때문에 깨어 있어서 좀처럼 잠들지 못한다. 아마 내 정신이 잠들지 못하게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스트레스일 것이다. 나뿐만이 많은 사람들이 졸리지만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 스트레스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양할 것이다. 발표가 있어서, 시험이 있어서, 중요한 면접이나 미팅이 있어서, 사랑 때문에 이런 다양한 이유가 우리의 잠을 방해한다. 이 많은 이유 중에서 졸린데 자긴 싫고의 작가인 장혜현의 잠을 방해한 것은 이별이다.

 

이 에세이는 장혜현 작가가 겪었던 이별과 혼자 떠났던 여행의 감상을 모두 담고 있다. 책을 넘기다가 문득 왜 이별을 제재로 한 듯한 에세이에서 혼자 떠난 여행을 끌어와 쓴 것일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책을 다 읽고나서야 깨달았다. 이별과 혼자 떠난 여행은 닮았다. 혼자 떠나는 여행과 이별의 공통점은 혼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별을 하며 익숙해진 관계에서 벗어나 혼자가 된다는 것이 주는 묘한 상실감은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과 유사하다. 그렇게 낯설어진 혼자라는 독립적인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으로 이별과 혼자 떠난 여행의 연결은 이 에세이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볼 때, 이 에세이는 단순히 이별을 이야기 한 에세이라기보다는 혼자가 된다는 것을 다룬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 번 계절이 바뀌는 날들에 이르렀어요.

 

처음이라는 듯 내릴 새하얀 눈과 다시 맞서야하는 매서운

바람이 벌써 두려워지지만 이 모든 것들을 또 한 번 이겨낸

다면, 우리는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저는 지금보다 한 발짝만이라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졸린데 자긴 싫고

 

장혜현 작가는 이 에세이에서 혼자가 된다는 것이 주는 상실감만이 아니라 혼자가 되며 배워나간 것들을 충실히 담아낸다. 관계 속에서 살고 있던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관계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관계에서 벗어나며 느끼게 되는 상실감과 나 혼자 세상을 살아나간다는 것이 주는 공포감 때문에 우리는 혼자가 된다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렇지만 혼자가 된다는 것은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함께 할 때에는 알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내가 관계 속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이 관계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나는 누구인지 이런 다양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된다. 또 내게 닥쳐온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며 내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다질 수도 있고, 오히려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럼 떠나볼까?’

오늘 밤은 낯선 곳으로 떠나고픈 밤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늘 여러분의 여행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지금 혼자 타국에서 계실 모든 분의 외로움이

멋있습니다.

우리 평생 여행하며 살아요.

- 졸린데 자긴 싫고

 

관계 속에서 길을 잃고 도피하듯이 떠난 여행에서 그녀는 성장한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방황하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관계에 속해 있지만 여행을 떠나면 익숙한 관계에서 벗어나며 새로운 사람들 속에 던져지게 된다. 사랑과 이별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하는 관계가 일상이 된다. 그러다가 이별을 하게 되면 익숙한 둘이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짝 없는 관계가 된다. 그 불안정한 모습에서 그녀는 벗어나 다시 일상적인 관계로 돌아가고자 발버둥 치게 된다. 그런 발버둥의 과정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방황하는 시간 속에서 그녀는 자기 자신과 그 감정을 온전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게 혼자가 되면서 느낀 감정들과 깨달음으로 그녀는 한층 성장하게 된다. 그렇기에 그녀는 혼자가 되어보는 것을, 여행을 응원한다고 말한다.

 

인생은 혼자보다는 둘이 나아요.

우리 모두 사랑하며 살아요.

- 졸린데 자긴 싫고

 

혼자가 되고 느낀 이야기를 담은 이 에세이에서 작가는 혼자가 인생의 지향점은 아님을 밝힌다. 혼자만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 인생의 다음 페이지인 새로운 관계로 넘어갈 수 있게 준비할 수 있다. 혼자여도 세상을 살 수는 있지만 관계에서 벗어나면서 느끼는 외로움이 있으며, 관계에서만 받을 수 있는 다채로운 감정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멋지다고 얘기하는 한편으로는 사랑하며 살자고,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고 이야기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여행과 이별을 잘 교차해서 연결시킨다는 것도 있지만 솔직한 표현에 있다. 장혜현은 앞날개에 들어간 작가소개에서 사랑을 통해 소모한 감정을 충전하려 여행을 떠난다고 밝힌다. 감정은 소모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자신의 생각이 그녀의 글에서 묻어난다. 온 마음을 다 던져 사랑했던 기억과 그 이후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진솔하게 적었다. 이별 후 찾아오는 더 잘할 걸이라는 후회와 어쩔 수 없었다는 다독임, 다시 사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미련과 같은 감정이 뒤죽박죽이 된 상태가 잘 묘사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된다. 이 에세이 속 작가의 상태처럼 이별이라는 이유로 '졸린데 자긴 싫고' 상태가 된 나는 자연스레 감정의 흐름을 쫓아갈 수 있었다.

 

나와 장혜현 작가와 같은 이유로 '졸린데 자긴 싫고' 상태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잠이 오지 않는 밤 혹은 새벽 이 책을 펼쳐 읽다보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질 것이다. 포근한 민트색 바탕 표지에 들어간 퐁신한 베개처럼 이 에세이가 혼자가 된다는 것에 괴로운 당신을 위로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시간과 감정을 잘 추슬러 다음 관계로 잘 넘어갈 수 있기를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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