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은둔자 - 완벽하게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
마이클 핀클 지음, 손성화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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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한다. 인간은 함께 어울리며 성장하고 기쁨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관계의 홍수 속에 산다.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24시간 내내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마트폰 하나로 우리는 타인과 계속 연결된다. 스마트폰에서는 시시때때로 SNS 속 누군가의 소식을 전하는 알람이 뜬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지속되는 타인과의 연결에 쉽게 관계에 피로를 느낀다.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온전히 나만이 존재하는 시간을 꿈꾸게 된다.


  실제로 오직 자신만이 존재하는 삶을 산 사람이 있다.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미국 메인 주에서 27년 간 절도를 하며 은둔생활을 지속하다가 체포된 사람이다. 그는 숲 속에서 홀로 사는 것에 자유를 느끼고 만족스러웠다고 주장한다. 1,000건이 넘는 무단절도를 저지른 범죄자임이 틀림없지만 그에 대한 관심이 간다. 그는 어떻게 숲 속에서 27년이나 살 수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그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고 혼자 그렇게 긴 시간을 살 수 있었을까? 

  과연 그는 혼자 사는 삶을 살면서 어떤 기분을 느꼈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숲속의 은둔자》에서 크리스토퍼 나이트의 은거 생활과 그의 감상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책 《숲속의 은둔자》는 저널리스트인 작가 마이클 핀클이 크리스토퍼 나이트를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마이클 핀클은 범죄실화 소설인 《트루 스토리》로 에드거상 최우수 범죄실화 부문 후보로도 올랐던 사람이다. 그는 저널리스트 생활에 슬럼프를 맞이해 휴직을 하던 중 크리스토퍼 나이트에 대한 기사를 접하며 그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크리스토퍼 나이트와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며 감옥으로 9차례 면회와 나이트가 살았던 숲으로 현장답사를 다녀오고, 그의 재판에도 참석하는 등의 열정을 보였다. 마이클 핀클은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은 크리스토퍼 나이트 취재 활동을 《숲속의 은둔자》로 엮어냈다. 이 책에서는 나이트와 쌓은 라포를 기반으로 듣게 된 나이트의 은둔 생활과 그가 은둔 생활을 하며 느낀 감정들을 세세하게 다뤘다. 그런 나이트의 은둔 생활의 의의에 대해 저자인 마이클 핀클은 나름대로 분석을 곁들였다. 

  홀로 수많은 나날을 보낸 크리스 나이트는 불가해한 아웃라이어였다. 그의 위업은 다른 모든 이의 육체적 또는 정신적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어서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꿔놓는다. 정말로 나이트는 밖에서 그 모든 겨울을 났다. 추위 속에서 그가 했던 일은 평범한 동시에 심오했다. -《숲속의 은둔자》 중 

  마이클 핀클은 크리스토퍼 나이트가 은둔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가 절도를 저지른 범죄자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가 27년간 (낚시 온 3대와 멀리서 조우한 이외에)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오로지 혼자 힘으로 숲속에 은거하는 삶을 산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종교적 이유로 고행을 위해 은둔을 한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크리스토퍼 나이트만큼 오랜 기간, 정말 혼자만의 힘으로 산 사람은 많지 않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그가 크리스토퍼 나이트에게 주목한 점은 그가 혼자 사는 것에서 오는 고독을 정말로 즐겼다는 것이다. 심리학자와 정신분석학자들은 그를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보기도 하지만 마이클 핀클의 눈에는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만 해본 은거를 실천으로 옮기고 그 삶을 즐긴 사람일 뿐이었다. 

  인간은 남들 앞에선 언제나 세상에 내보이는 사회적 가면을 쓴다. 심지어 혼자 거울을 들여다볼 때도 연기를 한다. 이는 나이트가 야영지에 거울을 두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모든 기교를 놓아버리고 누구도 아닌 동시에 모든 사람이 되었다. -《숲속의 은둔자》 중 

  숲에서 혼자 있는 시간은 그에게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고독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고독을 즐겼다. 누군가와의 관계 유지나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필요하지 않았던 숲 생활에서 그는 생존을 위한 행동을 제외한 시간에는 명상과 독서를 했다. 특히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현대 사회의 우리의 모습과 대비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타인에 보이는 나의 모습을 신경 쓴다. 타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우리는 스스로를 꾸며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진실한 나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진다. 진짜 나와 사회적 나 사이의 간극이 지속되면서 정신적인 피로감이 쌓이고 이는 관계에 대한 피로로 연결되고는 한다.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난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자신을 남에게 보일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남에게 보일 자신이 모습을 염려할 시간에 자기 자신에 더 집중하고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나이트는 명상을 하며 자신의 모습과 삶을 성찰하기도 하고 독서를 통해 나름의 사유도 탄탄히 이루었다는 것이 이 책 전반에서 나타난다.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 세계를 다진 크리스토퍼 나이트의 삶은 많은 현대인들이 이상으로 여기는 삶이다. 타인을 신경 쓰느라, 돈을 버느라 자신에게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공허함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바라고 또 자신의 공허한 내면을 채우기를 기대한다.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비록 도둑질을 했지만 복잡한 관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며 자신의 내면세계를 충족시키는데 몰두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데 급급한 현대인들에게 매력적인 인물이 아닐 수 없다. 

  혼자임을 멀리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외로움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더욱더 줄어들고, 외로워지는 것을 더욱더 두려워하게 된다. -《숲속의 은둔자》 중 

  무엇보다도 혼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이트의 모습이 깊은 감명을 남긴다. 인생은 혼자 태어나 혼자 죽는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나이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독을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는 고독함을 받아들였다. 때가 되면 숲에서 조용히 죽기를 바란 나이트의 그런 모습은 담대하다. 오랜 시간 혼자 살면서 그는 혼자라는 것이 주는 매력에 매료되었다. 오히려 그는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밀어내기보다는 숙명적인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관계가 촘촘해진 오늘날에는 진정으로 혼자 있는 경험이 드물기 때문에 더욱 혼자를 버티기 힘들어한다. 내가 오늘 아침으로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공유하는 사회에서 어떤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한다는 고립감은 쉽게 고독감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독을 잊기 위해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만으로는 고독감을 해결할 수 없다. 결국 혼자 남는 시간이 다가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외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마치 탄탄하게 구성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구성이 재밌었다. 편지, 9차례의 면회와 재판 참석이 저자가 크리스토퍼 나이트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꽤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서 그의 내밀한 생각까지 관찰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부족한 나이트에 대한 정보를 나이트가 살았던 숲 인근 주민들, 경찰, 그리고 전문가들을 통해 보완하며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 덕분에 크리스토퍼 나이트의 삶이 좀 더 입체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기이한 범죄자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책은 나이트를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이었다는 관점에서 보았다, 마이클 핀클이 크리스토퍼 나이트의 숲 속에서의 은둔 생활로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를 생동감 넘치는 글이 뒷받침해준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관계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순간을 가져다 줄 책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숲 속에서 살지는 못할지라도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등을 떠밀어 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우리는 그 손길에 몸을 맡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며 자신의 내면을 가꿔보면 된다.



혼자임을 멀리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외로움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더욱더 줄어들고, 외로워지는 것을 더욱더 두려워하게 된다. -《숲속의 은둔자》 중

인간은 남들 앞에선 언제나 세상에 내보이는 사회적 가면을 쓴다. 심지어 혼자 거울을 들여다볼 때도 연기를 한다. 이는 나이트가 야영지에 거울을 두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모든 기교를 놓아버리고 누구도 아닌 동시에 모든 사람이 되었다. -《숲속의 은둔자》 중

홀로 수많은 나날을 보낸 크리스 나이트는 불가해한 아웃라이어였다. 그의 위업은 다른 모든 이의 육체적 또는 정신적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어서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꿔놓는다. 정말로 나이트는 밖에서 그 모든 겨울을 났다. 추위 속에서 그가 했던 일은 평범한 동시에 심오했다. -《숲속의 은둔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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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3 - 동서융합의 세계제국을 향한 웅비 그리스인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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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 이름이 낯설지 않다. 대한민국 정규 교과 과정에서 세계사 혹은 사회 시간에 들어봤을 이름이다. 어린 나이에 동방원정을 떠나 동방과 서방을 아우르는 제국을 세운 위대한 사람 알렉산드로스라는 인물로 마케도니아에 대해 아주 얕게 배웠던 기억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혹은 그 유명한 고르디우스의 매듭 일화 정도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풀지 못했던 매듭을 단칼에 잘라 해결한 지혜로운 왕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과연 어떤 이유와 방법으로 알렉산드로스는 동쪽과 서쪽에 걸친 넓디넓은 영역에 제국을 세우게 된 걸까? 우리는 이제 마냥 순진한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이런 일이 한 개인의 능력과 야망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과연 이 모든 일이 알렉산드로스라는 영웅 덕분에 가능할 수 있었던 일일까?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에세이, 그리스인 이야기 3에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있다.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일본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이탈리아로 건너가 스스로 르네상스와 로마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다. 이후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40여 년 동안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연구에 몰입하고, 관념에 도전하는 역사 해석과 발군의 필력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한국 독자들에게는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로 잘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그녀 스스로 마지막 역사 에세이일 것이라고 소개한 그리스인 이야기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3권이다.

그리스인 이야기시리즈는 앞서 나온로마인 이야기시리즈가 그렇듯 그리스의 태동부터 말로까지에 해당하는 기나긴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서 꽉꽉 눌러 담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스인 이야기 1은 그리스의 시작부터 페르시아 전쟁 전후까지를 담았다면, 그리스인 이야기 2에서는 민주 정치의 황금시대와 우중 정치 시대로 나누어 그리스의 한창때를 이야기한다.

그리스가 어떻게 무너지게 되는지를 그린그리스인 이야기 3은 총 2부로 이루어졌다. 1부에서는 원래 패권의 중심이 되던 아테네가 어떻게 무너지고, 그 권력이 스파르타와 테베로 넘어가게 되는지를 설명하며 마케도니아가 제국으로 도약하기 전 그리스와 주변 지역의 사회·정치·경제·군사·문화를 아우르는 전반적 상황을 설명한다. 2부에서는 마케도니아가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게 기반을 다진 필로포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를 어떻게 동양과 서양을 융합한 제국으로 만들어나가는지를 상세하게 담는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사후 무너진 마케도니아와 함께 발흥한 헬레니즘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이야기한다.


마케도니아를 동양과 서양을 잇는 대국으로 성장시킨 가장 큰 공은 알렉산드로스에 있기에 이 책 분량 반절 이상이 알렉산드로스에 할당되었다. 그리고 저자 역시 알렉산드로스의 뛰어난 역량과 업적을 중심으로 그의 세계 제국 건설기를 집중 조명한다. 그러나 내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재밌게 본 부분은 뛰어난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세계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다양한 배경을 설명한 부분이 내게는 더 흥미로웠고 현대인인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지만 과거에 존재했던 유연성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민주정치는 잘 활용하면 많은 이점이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정치 시스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아테네에서는 유일무이한 절대선이라는 느낌을 주는 '민주주의'로 변용된 상태였다.

-그리스인 이야기 3

이 책에서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민주 정치로 흥한 그리스의 도시 국가 아테네가 무너지는 모습이다. 흔히 민주 정치는 으뜸의 정치체제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민주 정치가 그리스 안에서 어떻게 무너졌는지 역사적 사건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후 나타난 독재 정치체제가 오히려 마케도니아를 제국으로 키워내는 모습이 나온다. 민주 정치가 당연한 것으로 배워온 우리의 입장에서는 사뭇 당황스러운 부분이다. 이 부분은 한 정치 체제가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정치 체제도 사람이 고안했기에 완벽할 수 없다. 각 정치체제에는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체제만이 아니라 현재 정치체제를 보완하는 또다른 정치체제 역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유력자 사이에는 양쪽 모두 능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배턴터치가 어려워진다. 이것이 성공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드물다. 46세의 필리포스는 확실히 바라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배턴은 20세 아들의 손에 넘어갔다.

-그리스인 이야기 3

그리스인 이야기 3에서는 마케도니아가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이유로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리포스 역시 놓치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가 필리포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알렉산드로스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필리포스는 강력한 군사 훈련으로 성장한 스파르타인과 아테네의 유명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으로 초빙하였다. 문무를 모두 겸비한 인재로 알렉산드로스가 거듭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을 해준 것이다.

필리포스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단결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마케도니아의 군사력을 키우고 나라 전반을 재정비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마케도니아가 다른 도시국가들 사이에서 패권국가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페르시아 전쟁 때 이후로 단결된 적 없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스파르타는 제외)을 동맹국으로 만들어 좁은 그리스 지역 안에서의 싸움을 막고 더 넓은 바깥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이 책을 보면 우리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는 개인의 위명에 많은 다른 인물들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알렉산드로스는 분명 당시에 다른 사람이 이룩하지 못한 일을 해낸 위대한 사람이지만 그를 도운 '컴파니언'과 충복들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스승이 없었더라도 그가 동서양의 융합을 이뤄낸 세계 제국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인물만이 아니라 복잡한 당시 사회 상황 역시 한몫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알렉산드로스를 너무 영웅시하며 세계 제국이 될 수 있었던 다른 요소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인 이야기 3은 많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띄엄띄엄 알고 있기만 했던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 사상을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는 역사 에세이였다.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본래 역사 전공자가 아닌데도 그리스의 방대한 역사를 그리며 동시에 그리스 문화와 사상까지 모두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에 크게 관심 없는 현대인이라도 재밌게 읽을 법하게 적절한 비유와 설명을 곁들였다. 이렇게 내용을 알차게 눌러담았기에 '그리스인 이야기' 시리즈는 베개 같은 500여 페이지 분량의 책 세 권으로 완성되었다. 분량에 놀라 뒷걸음질 칠 수 있지만 꽤 재밌어서 생각보다는 빨리 읽게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이 철저히 유럽중심적인 시각에서 쓰였으며 종종 오리엔탈리즘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게하기 위해 풀어쓰다보니 그리스와 그리스가 아닌 지역을 '문명-야만'의 이분법이나 '그리스-오리엔트'라는 이분법적 사고관을 바탕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부분은 자칫 독자들에게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부분에서 아쉬웠다. 특히 이 책이 역사에세이를 표방하지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전문적인 지식인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작가의 관점에 의탁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독자들이 잘 주지하고 읽을 수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민주정치도 만들었지만 우중정치도 만들어냈다. 시민 전원의 투표도 이뤄냈고 부정 투표도 실현했다. 올림픽도 발명했고 보이콧도 발명했다. 뭔가를 만들어내면서 그 이면까지 만들어낸 셈이다. '유럽'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건너편을 '아시아'라고 이름 붙인 것을 비롯해, 좋든 나쁘든 우리는 많은 것을 고대 그리스인에게 빚지고 있다. 철학과 과학, 예술만이 그리스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리스인의 역사도 감탄과 어이없음의 되풀이였던 것이다.

-그리스인 이야기 3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서구화된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는 고대 그리스에 많은 것을 빚졌다. 그 때의 그 도시국가가 이루던 그리스는 사라졌더라도 그리스의 빛나는 문화와 사상은 유럽인들의 뿌리가 되어 지금까지도 우리 주변에 살아 숨쉬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세계 곳곳에 스며든 그리스의 문화와 사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금 긴 여행일 수도 있지만 재치있고 똑부러지는 해설자인 시오노 나나미와 함께 옛 그리스로 산책을 떠나보면 당신도 모르게 그리스인들이 가진 이야기에 매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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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 - 금강요정 4대강 취재기
김종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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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주도한 국책 사업인 4대강 사업이 실시된 지 어느새 10년여가 되었다. 4대강 사업은 사업에 임하기 전부터 현재까지 굉장히 논란이 많은 사업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 사업이 치수, 관광 등의 바탕이 되어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 사업을 찬성해왔다. 또 다른 이들은 이 사업이 자연 환경을 파괴할 것이라고 4대강 사업을 반대해왔다. 이렇게 4대강 사업에 대한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길을 잃은 국민들을 위한 책이 나왔다. 4대강 사업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지켜본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이 그 책이다.

 

김종술 시민기자는 '금강 요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가 4대강 사업이 진행되는 10년 동안 금강에 거의 살다시피 하며 4대강 사업이 금강에 미친 영향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그는 비록 시민기자이지만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발로 뛰며 자신이 얻은 4대강 사업의 결과를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했다. 이 책은 그런 그의 10년 간의 고생스러운 취재기를 집대성한 책이다.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하는 작가 이외수의 추천의 글로 시작된다. 깐깐한 이외수 작가의 추천사라니 기대되는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된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강의 죽음, 2장 생명 혹은 죽음의 색깔, 3장 강의 삶'으로 나눠 저자의 취재기가 진행된다. 1장에서는 4대강 사업이 시행되며 강의 자연환경과 인근 주민들의 삶이 망가졌는지를 담는다. 2장에서는 4대강 사업으로 자연환경이 파괴되며 우리의 일상에까지 미치는 문제를 담았다. 3장에서는 강의 흐름을 막으며 생긴 문제를 해결하려면 강이 다시 흐르게 해야한다는 주장이 담겼다.

 

4대강 사업은 강만 망친 게 아니다. 강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내 일이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망친 생태계 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 권력자들이 저지른 범죄의 대가를 4대강 주변 농민들이 대신 치르고 있다. 강의 역습 앞에서 힘없는 서민들만 속절없이 당하고 있다.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강을 땜질하는 사이, 강은 온몸을 뒤틀며 황당한 국책사업의 진실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 김종술의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

 

1장에서 그는 4대강 사업이 서민의 삶을 망쳐놓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4대강 인근에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던 사람들에게 4대강 사업은 굉장히 큰 변화를 가져왔다. 자연 환경을 바꾸며 해당 지역에서 서식하던 동식물의 식생이 바뀐다. 이 때문에 인근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어업이 어려워진다. 또한 강을 '보수'하며 주민들에게 주어진 보상금이 투기꾼, 사기꾼들을 불러모아 마을을 망친 경우도 나타난다. 또한 역사가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인 백제 공산성이 무리한 사업 진행 때문에 무너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현상은 4대강 사업이 자연환경을 개발하여 사람들에게 이익을 불러올 것이라는 개발 논리에서 빗겨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금강은 450만 충청인의 생명수다. 산업·농업 용수 역할을 하는,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다. 4대강 사업으로 금강을 가로막은 보가 생기면서 물그릇은 커지고 물의 양은 더 풍족해졌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뭄에 시달리고 물 사용에 제한을 받고 있따. 상수원인 대청댐에는 해마다 독성물질이 증가하고 있다. 아무리 많은 물을 가지고 있어도 사용할 수 없다면 보관하고 정화하는 비용만 낭비하는 것이다.

 

- 김종술의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

 

2장에서 김종술 기자는 큰빗이끼벌레, 붉은 깔따구, 실지렁이, 그리고 녹조 현상으로 4대강 사업이 생태계를 교란하며 강을 더럽혔다는 것을 입증한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확인한 바를 바탕으로 강의 오염이 단순히 인근 지역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4대강(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은 없다. 4대강은 우리의 주요 식수원이다. 4대강 사업으로 오염된 강물은 우리의 기술력으로는 천문학적 액수를 들이더라도 완전히 걸러낼 수 없는 독소를 품은 채 우리의 식수로 활용된다. 이로써 우리는 4대강 사업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왔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모든 '국민'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갖는다. 국가와 국민은 수동적으로 환경보전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국가는 미래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자연에도 스스로 방어할 권리를 줘야 한다.

 

- 김종술의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

 

자연스럽게 흘러가던 강을 인간의 이기심으로 제대로 흐를 수 없게 만든 4대강 사업은 결국 인간에게 문제로 다가왔다. 그는 3장에서 4대강 사업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비합리적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더러워진 물을 정화하고실용적이지 못한 강 활용 정책을 계속 우격다짐으로 운영하기 위해 드는 비용이 추가적으로 들어가며 4대강 사업에 버리는 돈이 너무 많다고 본다. 그는 차라리 강이 자연스레 흐르게 만드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강이 흐르면 자정작용으로 이제까지 망가진 강이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태 환경이 망가진 강을 바로 잡는 것이 곧 인간의 건강하게 살 권리를 지키는 방식이기 때문에라도 4대강 사업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정부에서는 보를 개방하는 방안을 내놓았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실행하는 공무원은 바뀌지 않았기에 우리가 계속 주의를 기울이기를 촉구한다.

 

보통 환경 파괴 문제를 추상적으로, 나와 상관 없는 이상론자들의 이야기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깟 자연 환경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이 책은 4대강 문제를 그렇게 '개발(발전)VS 환경 보전'의 대립 구도로 설명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아무리 '발전'된 도시에서 생활한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생태계의 한 부분을 이루는 동물이다. 잘못된 방식으로 성급하게 진행되는 개발로 환경이 무너지면 결국 나의 일상 역시 무너지게 된다.

 

이 책은 양적방법론, 즉 과학적인 통계, 수치와 같은 증거들을 잔뜩 들고와서 4대강 사업의 문제를 요목조목 지적하는 책은 아니다. 저자는 시민기자의 신분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경제적 이유, 신뢰의 문제로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질적방법론을 활용한다. 자신의 몸에 실험하여 4대강 사업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문제를 불러올 지를 보여준 것이다.

마치 외계 생물 같은 큰빗이끼벌레를 직접 뜯어 먹어보고 몸에 문질러 본 이야기, 그가 본 죽은 물고기들, 그가 직접 마셔본 '녹조라떼', 직접 잡은 붉은깔따구와 실지렁이들, 강이 오염되며 나는 비린내. 이 모든 경험담은 정갈한 과학적 수치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독자의 마음에 다가온다. 강이 얼마나 오염되었고 우리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물을 마시고 또 그 물로 생활하게 될 지를 상상하게 되면서 아찔해진다.

 

분명히 4대강 사업이 마냥 나쁜 결과만 가져온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이익을 누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4대강 사업이 비효율적이고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4대강 사업을 어떤 논리로 찬성 혹은 반대하든 우리는 우리의 식수원이자 생활 환경과 직결된 4대강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을 위해서라도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심을 기울이자.

물을 마시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4대강 사업에 대해 당신이 어떤 생각을 가졌든 자연환경과 개발이 어떻게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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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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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노년기를 저녁 무렵에 빗대어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하였다고 표현한다. 서정적인 은유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일상생활 시간이자 인생의 한창 때를 의미하는 낮이 곧 끝난다는 것은 모든 공식적인 생활이 끝나는 저녁, 즉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모든 저녁이 저물 때라는 제목은 사뭇 섬뜩하지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도대체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았단 말인가?

 

모든 저녁이 저물 때는 독일에서 인정받는 현대문학 작가인 예니 에펜베르크의 작품이다. 에펜베르크는 이 책으로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잉게보르크 바하만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녀가 왜 인정받는지를 이 장편소설을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녀 자신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독특한 문체와 작가 특유의 역사의식 그리고 탄탄한 내용 구성력이 어우러지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장과 장 사이에 끼어 있는 막간극으로 구성되었다. 각 장의 공통적인 주인공은 큰 딸이다. 그녀는 장()마다 다른 이유로 죽음에 이른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는 경우, 갓 성인이 되었을 쯤 사랑하는 남자에 실연을 당하고 처음 보는 남자에게 죽여 달라고 한 경우, 히틀러 시대에 스파이로 지목당해 처형당하는 경우, 어머니가 되었으나 발을 헛디뎌 계단 난간에서 떨어져 죽는 경우, 노년에 치매를 앓다가 요양원에서 죽는 경우가 나온다. 이렇게 매번 죽음으로 끝나는 각 장은 바로 막간극으로 연결된다. 막간극에서는 앞선 장에서 나타난 죽음을 만약 이렇지 않았다면~’과 같은 가정으로 그녀가 그렇게 죽지 않았을 경우에 나타나는 주인공의 삶을 서술한다.

 

특히 그녀의 소설 속에서는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크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나치정원, 소비에트 시대, 독일 통일 후라는 시대 흐름이 나타난다. 작가의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자연스레 삽입된 이런 정치, 사회, 역사적 변화상은 당시 사람들이 변화를 맞이할 때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했는지를 굉장히 잘 드러낸다.

 

한 사람이 죽은 하루가 저문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저녁이 저무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 모든 저녁이 저물 때

 

매번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나고, 제목마저도 죽음을 암시하는 모든 저녁이 저물 때인 이 책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이 아닌 삶이다. 매 장마다 주인공이 죽고 주인공 주변 인물도 죽음도 그려지며 죽음이 강조되는 것 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그 때문에 죽음의 반대편에 있는 삶이 강조된다.

 

에펜베르크는 여러 시점에서 주인공인 큰 딸의 삶과 죽음을 서술한다. 그녀의 출생과 성장, 성인이 되어 만난 사랑, 자신의 업적을 세우고 자식을 기르고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서는 모습이 장마다 토막 토막 들어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족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삶까지도 러프하게 담았다. 유대 집안에서 태어나 상점 일을 돕는 주인공의 어머니와 상점을 운영하는 그의 어머니 이야기, 전염병에 걸려 죽은 주인공의 친구와 전쟁에 나갔다 생환했으나 애인을 잃은 친구의 애인, 함께 문학모임을 했던 동지들. 이들을 비롯한 주인공과 함께 시대를 살아나간 사람들의 삶은 주인공의 삶의 이야기와 맞물리며 묘사된다. 이들은 모두 죽음을 목도했고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다. 죽음이 그들의 곁을 지나쳐가는 것을 보면서 삶을 살았다.

 

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삶이 남은 사람들은 계속 자신의 삶을 산다. 자신의 애정을 나눠가진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마음이 미어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결국 내가 살아있기에, 존재하고 있기에 괴로워도 계속 살아야 하는 모습이 소설 속에서 자주 나타난다. 저자는 그렇게 삶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죽음을 보여주며 오히려 삶의 이야기를 그렸다고 보았다.

 

아마도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지금 막 지나온 그 순간이 아니라, 모든 순간일 것이다. 세계 전체는, 그녀의 삶이 이제 종말을 맞게 되었으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녀가 살아 있을 수도 있고, 또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세계 전체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 모든 저녁이 저물 때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는 존재하기에 삶을 산다. 저자는 막간극을 활용해 삶의 한 순간마다 내가 내린 결정에 따라 삶이 전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어머니와 아버지, 주인공, 주인공의 지인들이 조금만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녀의 죽음이 미루어졌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막간극마다 이야기 한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나의 삶을, 더 나아가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삶을 강조하면서 지금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한다. 우리는 언제 어떤 선택을 해서 끝에 이를지 모른다. 현재 내가 내리는 결정 하나 하나가 미래를 만들고, 그것이 과거가 되면 이미 돌이킬 수 없기에 지금이 중요한 것이다.

 

오랜만에 진지하게 고민하며 문학을 읽어보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번 읽으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책을 읽은 것은 낯선 경험이었지만 소중했다.

한 장 한 장마다 좋은 글들이 많아서 빨간 색연필을 들고 읽다가 색칠놀이를 할 뻔 했다.

많은 독자들이 실험적인 문체가 도드라져 보여서 처음에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다.

그렇지만 비록 내가 원문 대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라도, 번역가가 충분히 저자의 원래 의도에 가깝게 번역하면서도 한국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한 것이 많이 엿보였다. 번역가께 박수를...!

전체적으로 편집도 굉장히 깔끔해보인다. 가제본이기에 단정지어 말할 수 없지만, 이것도 편집자께 박수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과 삶이라는 제재를 이렇게 낯설게 마치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구성하고도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지게 하는 저자에게도 박수를!

문학에 권태기가 온 사람들에게, 또 서사의 힘을 맛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해주고 싶다.

예니 에펜베르크의 서정적인 묘사와 독특한 문체, 그리고 탄탄한 구성이 어느새 당신을 이 책에 매료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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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땐 뇌 과학 - 최신 뇌과학과 신경생물학은 우울증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앨릭스 코브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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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한번쯤은 우울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울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 침체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왠지 모든 것이 잘 안 풀리고, 의욕도 생기지 않고 하루하루가 고역인 때 말이다. 그런 시기가 찾아오면 그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벗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 시기가 찾아왔다면, 그래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사람이라면, 환영한다. 앨릭스 코브의 우울할 땐 뇌과학이 당신을 우울의 나락에서 건지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저자 앨릭스 코브는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자 우울증 전문가로, 15년 넘게 뇌 과학으로 우울증을 연구해왔다. ‘저자가 비록 전문가라고 하지만 원래 학자니까 책이 어렵지 않을까?’, ‘뇌과학은 듣기만 해도 어려운데 괜찮을까?’ 하는 고민을 할 수도 있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그는 자신이 연구해온 전문 지식을 좀 더 일반인들의 수준에 맞게 최대한 쉬운 설명으로 풀어내준다. 특히 앨릭스 코브의 미국식 유머과학자 유머가 꽤 재밌다. 문과생이면서 과학과는 거리가 먼 나조차도 킥킥 거리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정도이니 겁먹지 마시길!

 

이 책은 우울함을 뇌과학으로 설명해주는 1부와 뇌과학적인 지식을 토대로 어떻게 우울함에서 벗어날지 조언해주는 2부로 구성되었다. 1부 내용은 다양한 뇌의 부의를 가리키는 용어를 비롯한 과학적인 용어가 나오니 조금 거부감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작가는 재치 있는 유머를 활용하고, 또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생활 속 은유/사례를 활용해서 설명하니까 미리 겁먹지 말고 차근차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나의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게 되면 나의 우울한 상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인정할 수 있어서 우울함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

 

우울증에 걸렸다 하더라고 뇌에 흠이 생긴게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신경 회로와 동일한 뇌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뉴런이 연결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고 그 회로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동적인 활동과 의사소통도 그 사람 자신만큼이나 제각각 다르다.

- 앨릭스 코브의 우울할 땐 뇌과학

 

앨릭스 코브가 우울한 상태를 설명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바로 하강나선과 상승나선이다. 뇌의 다양한 부분들이 상호 작용하면서 작동하고 있는데, 이 때 아주 작은 변화로도 우리는 기분이 침체되는 하강나선을 타게 되거나 떠오르는 상승나선을 타게 된다. , 아주 작은 요인 때문에 우리는 계속 우울해지거나 계속 기분이 좋아지는 흐름을 타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뇌 회로 간의 의사소통의 문제 때문에 우리의 뇌가 하강곡선을 타게 된다고 설명한다. 걱정과 불안, 부정적 편향성, 그리고 습관이 이런 뇌 속 잘못된 의사소통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걱정과 불안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걱정은 생각을 기반으로 하지만 불안은 육체적인 요소나 관련 행동으로 느끼는 것이다. 자연스레 이 둘은 서로 상호 작용하며 하강나선을 만들어낸다. 걱정과 불안 자체는 인류가 진화하면서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잘못이 없다. 다만 그런 감정을 걷잡을 수 없다고 느낄 때, 자신의 감정 인정하고 그런 감정이 든 원인이 뭔지 생각해보고 현재에 초점을 맞춘다면 하강나선을 멈추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뇌는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에 더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를 부정적 편향성이라고 말한다. 우리 뇌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도록 하는 데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사고 회로가 부정적이 될수록 자연스레 우리는 하강나선을 타게 된다. 따라서 앨릭스 코브는 하강나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긍정적 사고회로를 만들기를 권고한다.

뇌의 회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반복적으로 해온 행동, 즉 습관에 매몰되게 작동한다. 이 때 이 습관이 나쁜 습관일 경우 하강나선에 일조하게 되며 계속 우울한 상태로 가게 만든다. 뇌 회로의 작동기제에 따르면 나쁜 습관이 좀 더 들이기 쉽다는 것을 알지만 저자는 좋은 습관을 들이기를 권한다. 그는 좋은 습관으로 우리의 뇌 회로가 하강나선을 타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걸 해결하는 단 하나의 해결책은 없다. 해결책을 이루는 부분들이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을 다 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직접 실천하는 것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 된다. 소파에 앉아 있는 대신 걷는 1, 1분이 상승나선에 시동을 거는 힘이 된다.

- 앨릭스 코브의 우울할 땐 뇌과학

 

이처럼 1부에서는 뇌과학적 지식으로 우울을 설명하면서 우울에서 벗어날 방법의 힌트를 조금씩 주었다면 2부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운동하기, 결정 내리기, 잘 자기, 좋은 습관 만들기, 긍정적인 바이오피드백 만들기, 감사회로 만들기, 사람들 속에 있기, 전문가와 함께하기가 그 방법들이다. 다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우울에서 벗어나는 방법들일 것이다. 저자가 제시한 해결책들이 그냥 자기계발서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 할 법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이 방법들이 그냥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정말 과학적인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우울함은 뇌회로의 의사소통 문제이다. 따라서 위의 방법들은 뇌 회로 내에서 상호작용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제목을 보고 단순히 뇌과학적으로 우울한 상태와 그 과정을 설명해주는 인문교양서라고만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이 책은 인문교양서와 자기계발서 혹은 실용서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인문교양서만큼의 지식을 담았으면서도 일상생활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을 내기 위해 계약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날아갈 듯 기뻤다. , 그러니까 한 3초 동안? 그러고는 바로 내가 해야 할 모든 작업과 쏟아야 할 모든 시간이 걱정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떠오르는 생각을 이것뿐이었다. 맙소사, 내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한거지?

- 앨릭스 코브의 우울할 땐 뇌과학

 

무엇보다도 좋았던 점은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굉장히 어려울 내용을 쉽고 재밌게 풀어나갔다는 점이다. 이 점이 바로 다른 '우울'에 대해 다룬 책과 다른 큰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단순히 앨릭스 코브가 글을 쓰는데 재능이 있다거나, 원래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이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우울함을 겪는 사람들의 심리를 정말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종종 자신의 경험에서 글을 시작한다. 그의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더라도 그가 과학적 지식을 설명하면서 드는 사례들은 일상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사례들이다. 사소한 짜증이나 습관에서 시작된 우울의 하강곡선을 누가 보아도 공감할 수 있는 친근한 사례로 설명해서 그의 설명과 조언이 더욱 더 마음에 다가온다. 마치 동네 친한 이웃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점 때문에 독자는 그가 정말로 우울함을 겪어봤던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의 우울함을 이해하고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적절한 조언을 해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작정 따뜻한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울한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다가온다는 것. 그 점이 세상에 나 혼자 툭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우울한 사람들이 정말 듣고 싶을 말을 해주며 위로와 응원을 해주는 것으로 느껴졌다.

 

읽어주셔서 감사하다. 내가 한 이야기들이 회복으로 향한 새로운 길을 닦았기를, 아니면 적어도 조금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당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이미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만으로도 중요한 회로들이 활성화됐다. 믿든 안 믿든 당신의 상승나선은 지금 막 시작되었다.

- 앨릭스 코브의 우울할 땐 뇌과학

 

세상 사람들의 슬픔을 나홀로 지고 있는 것처럼 가라앉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해주고 싶다. 이 책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인정하게 만들어 당신의 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강력한 하강나선에서 헤엄쳐 나올 수 있게, 그래서 상승나선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아줄을 던져준다.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이야기 한 것처럼, 이 책은 우울한 사람들이 우울에서 벗어나는 한 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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