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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챕터
위니 리 지음, 송섬별 옮김 / 한길사 / 2018년 3월
평점 :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해쉬태그인 #Metoo.
자신이 당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인 미투 캠페인으로 일어난 파문이 심상치 않다. 우리는 미투 캠페인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보게 되었다. 그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을 의심하고 왜곡하며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당했다.'라고 사회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는 행동인 미투 캠페인을 둘러싼 논란이 많지만 그 불길은 사그러들지 않고 전역으로 번져나간다. 왜 그렇게 미투 캠페인이 멈추지 않는지, 왜 필요한지를 우리는 위니 리의 자전적 소설 《다크 챕터》를 통해 알 수 있다.
혼자 여행 다니는 것을 즐기는 비비안 탠은 출장으로 아일랜드 벨파스트에 방문하는 김에 혼자 하이킹을 즐기러 갔다가 동네 유랑민 소년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작가는 비비안 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재판 결과가 어땠는지만 알려주지 않는다. 위니 리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활용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두 사람의 생애를 묘사하면서 사건 이후 각자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를 그렸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리는 성폭력 사건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성폭행 사건은 관계자가 아닌 대중에게는 일시적인 사건 - 가쉽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폭행 피해자나 가해자에게는 그것이 인생의 흔들어 놓을 만한 사건이다. 단순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재판 결과과 어떻게 나왔는지(유죄 혹은 무죄?)처럼 자극적이며 단순한 부분에만 치중하는 것이 미투 캠페인을 비롯해 여타 성폭력 사건 고발을 보는 우리 사회이다. 이렇게 자극적인 부분에만 집중되는 관심으로 대중은 피해자에 피상적인 공감만 하게 되거나 아예 피해자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가해자에 공감하기도 한다. 위니 리는 자신의 피해 사실은 자신의 인생에 걸친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선을 모두 보여주는 진행방식은 무죄추정 원칙에 의거하여 피해자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탈을 쓰고 자행되는 은근한 비난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보여준다. 가해자인 스위니가 가진 비정상적인 성과 젠더에 관한 인식과 비뚤어진 피해의식이 혼합된 자기합리화와 자기 방어기제에는 흔히 ‘합리적 의심’이라고 하는 것들이 드러난다. 또한 비비안 탠은 비록 주변 사람들에 그런 무례를 당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법정에서 가해자인 스위니의 변호사에게 듣는 질문을 그런 ‘합당한 의심’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렇듯이 일부에서 주장하는 ‘합리적인 의심’은 사실 가해자에 이입하여 상황을 보는 것으로, 피해자에 또 다른 가해를 가하는 행위라는 점을 보여준다.
피해자에 대한 편견
위니 리는 1978년 뉴저지에서 태어난 타이완계 미국인이다. 그녀는 하버드 대학에서 민속학과 신화학을 전공하고 런던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문예 창작학을 공부했으며 현재는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미디어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는 한편 성폭력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단체의 공동설립자이기도 하다. 이런 작가의 배경과 정체성이 그대로 반영된 주인공인 비비안 탠은 중국계 미국인으로 역시 하버드를 나와 장학금을 받으며 영국에서 공부하고 영화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동양계 미국인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고학력자에 중상류층이라는 그녀들 정체성은 이 소설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그리고 그런 정체성을 바탕으로 쌓아올린 능동적인 여성상은 이 소설의 이야기 전개에 핵심적인 측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특징들은 위니 리와 비비안 탠을 일반적으로 대중이 성폭력 피해자에 기대하는 피해자상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설 속 비비안 탠은 성폭력이 일어날 때에도 죽지 않기 위해 최대한 사건에 협력하고 가해자에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비밀로 해주겠다고 한다. 성폭행이 끝나고 가해자가 사라지고 나서 친구를 통해 신고를 한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며 사건 다음날 예정된 시사회를 참석한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주변(보수적인 부모님을 제외)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능동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도움을 받는다. 재판 과정에서도 그녀는 도망치지 않고 사람들 앞에 서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변호사에도 맞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이런 모습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성폭력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삶의 의욕을 잃고 자신의 삶을 모조리 잃어버려 공포에 질린 피해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이런 비비안 탠의 모습은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했을 때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는 더 나아가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과 같이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성폭력 사건을 대처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응원한다.
'다크 챕터'를 어떻게 지나갈 것인가
비비안 탠은 자신에게 닥쳐온 '암울한 시기'를 주변인들의 애정어린 관심과 심리적인 연대를 통해 적극적으로 헤쳐나간다. 비비안 탠의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피해 사실을 듣고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자기검열 없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힘이 되어준다. 그녀가 그녀의 암울한 시기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주변 사람들의 지지 덕분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그녀에 지지를 보낸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의 부모님에게는 피해 사실을 숨긴다. 그녀의 피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다른 가족인 언니는 그녀의 피해 사실을 전해 듣고 비비안에 힘이 되어준다. 《다크 챕터》에서 나타난 것처럼 피해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그녀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게 응원하고 애정어린 지지를 보여준다는 것이 피해자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한편, 피해를 당한 뒤 비비안이 피해사실을 알리자 그녀의 회사가 취해준 조치(휴직과 수당 등)에도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뒤 회사에 알리면 비비안 탠이 받은 조치를 받을 수 있을까? 이런 부분은 사실 사회적인 안전망인 제도로 보장되어야 할 부분이다. 우리 사회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의식이 정립되기 위해 반드시 정착시켜야할 제도라고 생각한다.
예기치 못하게 다른 이야기들이 그녀를 찾아온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예전만큼 예기치 못한 일은 아니게 된다.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자주 성폭행으로 망가지는지. 이런 사실을 그녀는 처음으로 알게 된다.
친구의 친구.
이모.
언니.
학교 친구.
- 《다크 챕터》 중
비비안 탠은 자신들의 친구들의 지지를 받으며 숨어있는 피해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친구 혹은 이모 등 주변 사람들 사이에는 자신의 피해사실 조차 알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비비안 탠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고통을 공유하며 심리적인 연대를 하게 된다. 그런 경험은 그녀가 다시 한 번 용기를 낼 수 있게, 또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범죄 예방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당한 피해 사실을 신고해야한다는 생각에 까지 미친다.
#Withyou
비비안 탠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위니 리는 성폭력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어떻게 성폭력 사건을 보고 다루어야 할 지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힐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주장한다. 위니 리와 비비안 탠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인 다크 챕터를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지지로 비교적 '무사히' 통과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 있는 수많은 위니 리와 비비안 탠은 어떨까? #Metoo 를 통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드러낸 피해자들 역시 자신의 다크 챕터를 잘 마무리하고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맞이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아직도 #Metoo를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의심'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다.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점검해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폭력으로 인해 고통 받아온 수많은 여성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성폭력 사건은 절대 당신의 잘못으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당신의 삶이 거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멀리서 당신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자신을 사랑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