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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박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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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이든 제목이 반은 가지고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특히 책이라면, 책 안에 실린 모든 글들은 제목과 동떨어질 수 없다. 그래서 책을 고를 때 제목을 가장 먼저 보는 편이다(당연한 소리지만). 책 제목을 읽었을 때 입에 착 달라붙는다면, 그 책은 나에게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이 된다. 그리고 바로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들어가는데... 아마 내 장바구니가 항상 50만원 넘는 가격대를 유지하는 건 그래서인가 보다.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을 읽게 된 것도 제목 때문이다. 무언가 내 심장에 와서 콱 박히는 느낌이었고, 영어로 된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When We Call Every Single Being>. 번역했을 때 한국어 제목과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니지만, 이런 의미로 이런 제목을 붙였구나 하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2.


또 요즈음 주의 깊게 살피는 건 책의 만듦새다. 표지 디자인, 표지 종이의 종류, 내지의 색과 글씨체 같은 것들. 물론 안에 실린 글이 어떤 모양인지(또다시 글씨체와 줄간격 같은 것들)도 열심히 본다.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은 미술 에세이라 그런지 책의 만듦새가 전시회 도록을 떠올리게 한다. 보통 책 내지는 미색인데 이 책은 흰색이고, 아마도 아트지인 것 같다. 부드럽지 않고 매끄러운 재질이다. 글자도 명조체 계열이 아닌, 좀 더 장식성이 강한 폰트를 쓴 것 같고. 책의 구성 자체도 어떤 미술 작품인 것 같은데, 이건 읽으면서 계속 봐야 딱 박혀들기 때문에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물론 다 내 생각일 뿐이고 틀린 점이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책 자체가 의도를 가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져서 몰입이 쉬웠다.


(책 디자인도 물론 예술의 한 종류다... 써놓고 보니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내 감상의 일부니까 부끄러워도 지우지 않기로 한다...)


표지 사진, 아니 표지 작품이라고 해야 하나, 이 작품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마음 같아선 표지의 작품에서 돌을 들고 있는 것처럼 나도 책을 들고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어볼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3.


표지에 딱 박혀 있다.


"박보나 미술 에세이"


제목과 책 소개에서 이 책이 어떤 미술 작품을 다루게 될지는 짐작했지만, 그 미술이 내가 알던 것과 많이 다를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건 회화가 고작이었다. 하긴 그것도 당연한 것이 내 미술 지식은 고등학생이던 시절, 그것도 1학년 때 잠깐 들었던 수업에 멈추어 있다. 내 안에서 미술은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인다고 해 봤자 모빌의 움직임이나 비디오 아트의 움직임 정도일까.


책을 읽으며 내 앎이 얼마나 저차원이었는지 드디어 인식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표현이 있고, 이 수많은 표현들이 잊혀지기 쉬운 존재들을 그리고 있다. 미술 에세이라고 하면 회화 작품이 대다수일 거라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편협한 사고방식인가. 내가 부른 적 없던 수많은 이름들을 지금이나마 불러 보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4.


우리는 번번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대상을 바라보며, 그들을 함부로 대한다. 가장 작은 존재들조차 주체적인 존엄성과 독립성, 그리고 개별적 성격이 있다는 것을─내가 지어주지 않아도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쉽게 잊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5.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고, 작가님이 안내인이 되어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 편의 전시를 관람한 기분이니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꼽자면, 오스카 산틸란의 <서성이는 계>를 꼽을 수 있겠다. 두 번째 꼭지에서 소개하는 작품인데, 이 부분을 읽다가 몇 번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살폈다. 이게 진짜 미술 에세이였나..? 하면서. 그만큼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이후로 편견이 많이 깨져서 뒤에서 소개된 작품들에는 형식이 주는 충격이 덜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엄마 덕에 나도 클래식은 부족함 없이 접했다. (이쯤에서 뻔한 이야기 하나 더 하자면, 나는 클래식도 좀 편식을 하는 편이고... 바로크와 고전 음악을 좋아한다...) 바흐나 베토벤이 아닌, 숲에서 새소리를 연주하는 음악가... 그 퍼포먼스를 촬영한 사진도 아주 의미심장하다. 그와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지를 생각했다.


숲에 가면 새소리가 들린다. 보통, 새들은 소리는 들을 수 있어도 모습을 보기는 아주 어렵다고 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새들이 사라지고, 우리는 그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겠다,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서성이는 계>에 대한 설명을 읽고, 퍼포먼스를 찍은 사진을 보니 마음이 먹먹했다.



6.


무지를 다정하게 깨우쳐 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무지를 깨달으면서, 그 과정이 다정했다고 느끼면 그 충격이 좀 더 오래 가는 것 같다. 뒤통수가 얼얼하도록 한 대 맞은 게 아니라, 렌즈를 바꿔 끼고 세상의 선명함을 되찾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은 그런 방식으로 독자를 이끌고 있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름없는것도부른다면 #하니포터 #도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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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2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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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권을 읽고 나서 "아, 이건 2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전개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2권을 읽고 나서 또 그런 생각이 든다. 2권에는 에필로그도 있었는데... 그렇지만 3권이 또 있었으면 좋겠다...


인생은 깨달음과 구원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기승전결의 "결"에 도달하는 건 이야기 뿐, 삶은 죽음 이전에는 "결"없이 계속된다.


<스노볼> 2권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한 생각이다. 1권의 갈등이 해결된 이후에도 주인공의 삶은 계속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게 아니다. 더 깊은 비밀과, 비밀을 숨기려는 시도가 얽힌다. 그리고 내가 1권을 읽으면서 가진 의문(세상을 바꾸는 것에 대한)에 대해서도 언급되는데, 정신없이 읽으면서도 밑줄을 그어 놓을 정도로 인상깊어서 살짝 적어 보려고 한다.


영웅은 타인을 위해 세상을 구하겠지만, 평범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세상을 바꾸는 거야.

나를 향한 금기와 한계를 깨기 위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의 안전과 평온을 위해, 원래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기꺼이 감내하고 이어 가는 것. 그게 세상을 바꾸는 일의 본질이야.


드라마가 소재인 이야기에서, "모두가 삶의 주인공이다"라는 결말은 전형적이지만 멋진 끝맺음이다. 이야기의 주요 인물들이 타인의 목적을 위해 살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진다.


부조리가 폭로된 이후에도, <스노볼>의 세계에는 해결되지 않은 질문과 바뀌지 않은 모순이 남았을 것 같다. 우리 세계가 그렇듯이, 작은 변화가 성취되고 세상이 괜찮은 방향으로 나아가도 여전한 아픔들이 계속되는 것처럼. 그래도 <스노볼>은 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개인들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의 안전과 평온을 위해" 행동할 때,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끊임없는 시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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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1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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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운이 좋아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독서 캠프에 가게 되어 책을 몇 권 받아 읽었는데,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에 대한 책이 있었다. 그 안에 한 꼭지로 <트루먼 쇼>가 있었는데, 영화의 줄거리과 설명을 읽은 것만으로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해낼 수 있나 하고 소름끼쳐 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보니 누군가는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멀리 가지 않아도,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어느 정도 트루먼 같은 삶을 산다. 인기있을수록 사생활은 존재하지 않고, 그의 삶은 마치 드라마처럼 전시된다.



<스노볼>은 <트루먼 쇼>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스노볼이라는 도시가 존재하고, 그 도시는 얼어 버린 지구에 마지막 남은 따뜻한 안식처다. 스노볼에 거주하는 이들은 따뜻함을 누리는 대가로 삶을 전시해야 하는데, 그래서 스노볼 거주자들을 "액터"라고 부른다. 액터가 있으면 당연히 "디렉터"와 "프로듀서"등 다양한 이들이 스노볼에 거주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상당히 충격적이다. 한 사람도 아니고 도시의 거주자들을 비추는 드라마가 제각각 존재하고, 바깥 세상에서는 그 드라마의 시청료로 전기를 공급하는데 사람이 직접 쳇바퀴를 돌리며 발전을 한다. 소름이 돋는다... 그런데 소설은 폭주기관차처럼 전개된다. 앉은 자리에서 한 권을 뚝딱 해치울 수 있는 흡입력이다.



내가 아닌 타인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고, 누구든 자신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바랄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누군가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보다 나은 어떤 존재, 똑똑하거나 아름답거나 부유한 누군가였으면 좋았겠다, 정도는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봤을 법하다.


만약 실제로 내가 아닌, 나보다 훨씬 대단한 누군가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웹소설에서 흔히 하는 빙의 말고, 나와 아주 똑같이 생겼는데 나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와 내 삶을 바꿀 기회가 생긴다면. 게다가 누군가는 따뜻한 곳에서 부유하고 행복하며, 사랑받는 존재라면.


<스노볼>은 다양한 욕망으로 빚어진 사건이 연속되고 있다. 하루만 네가 되어 살고 싶어, 부터 시작해서 너를 구하고 싶어, 속죄하고 싶어, 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까지.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자아 실현 욕구─즉 욕망에서 시작되면 어떻게 개인의 삶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세상을 바꾸면서 개인에게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기득권인 개인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상처 말고!) 자아 실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이어야 할까?



책을 읽고 크게 감동받았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걸까 감탄하면서 끝내주는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동이다... 가제본을 제공받아 읽었지만 책도 따로 구매해서 소장할 만큼 끝내준다고 하면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나만 읽는 게 아니라 친구에게 한 세트 사서 선물했다고 하면 좀 나은가..! 모쪼록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함께 감동 받았으면 좋겠다.



#스노볼 #박소영 #창비 #소설y #소설y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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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집 -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안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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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행위는 어떤 면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림과 사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하나하나 열거하기에는 손가락이 아프니 생략하기로 한다.) 만든 사람의 취향, 시야, 감정 등을 담는 건 마찬가지니까. 모든 그림에는 의도가 있고, 모든 사진에는 의도가 있다.



단어가 언어적 표현 중에서는 사진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여기까지 글을 쓰면서 생각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써서 찝찝함을 느꼈다.(…) 다른 그림에서 똑같은 소재를 똑같은 자리에 배치하고 만 화가가 된 기분이다. 또, 단어는 내가 만든 말이 아니라 사전에 있는 말이니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춰 주는 카메라와 같은 도구라고 해도 어울리지 않나 싶다.


반면 존재하는 말을 엮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낸 것─즉 시는 vlog보다는 그림에 가까운 것 같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엉터리같은 말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에 일단 이 논의는 여기까지만.



아무튼 쓸데없는 서두가 길었던 이유는 이렇다. 책을 읽으며 같은 단어가 이렇게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니 하고 생각했고, 표지의 문구를 오래오래 읽었기 때문이다.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여러 가지로 읽히는 구절이다.



사진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나에게 사진은 그림처럼 작가를 보여 주는 창작물이다. 그래서 남이 찍은 사진 구경하는 걸 아주 좋아한다. 인스타그램이 아주 흥한 SNS이자 플랫폼이 된 건 다른 사람들도 많이 그렇기 때문이겠지. 같은 이유로 나는 사진을 잘 못 찍는 편인데, 내가 찍은 사진이 마음에 차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도 이유이지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게 아직 어렵기 때문이다. (변명하자면 두 개의 문장이 연달아 ~때문, 하고 끝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머릿속에 오가는 말은 많은데 꺼내 놓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A를 찍은 사진으로 B와 C, 때론 D까지 보여 줄 수 있는 것처럼, 단어도 전혀 다른 의미로 가 닿을 수 있다는 것. 사실 그런 걸 펼쳐놓고 보여 줄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너무 놀라웠다. 작가님이 프롤로그에 쓰셨듯이, 이 책이 놀이기구 대신 단어들이 놓여 있는 놀이터라서일까. 놀이터에서는 혼자 놀 수도 있지만 같이 놀면 즐겁고, 함께 노는 대신 가장자리의 벤치에 앉아 구경할 수도 있지 않나.


<단어의 집>을 읽는 내내 놀이터에서 함께 놀다가, 벤치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이 기구 저 기구 옮겨다니기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 한 꼭지를 읽으며 전혀 다른 엉뚱한 생각이 들면 함께 노는 것 같았고, 다음 꼭지를 읽고서 또다시 무릎을 칠 때는 다른 놀이기구를 타며 신나 하는 기분이었고, 편하게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책을 읽으며 쉬지만, 쉴 틈만 생기면 책을 읽는 사람은 아니어서 쉬면서 읽게 될 때면 굉장히 반갑다.



또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일상 생활에서 궁금한 단어가 생겨서 찾아보게 되는 일이 상당히 드문데, 좀 반성하고 싶다. 잘 모르는 단어인데 그냥 넘어가거나, 낯선 것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부지런히 읽고, 보고, 들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본다.


**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단어의집 #하니포터 #도서리뷰

커피에는 커피에 어울리는 잔이 있고 차에는 차에 어울리는 잔이 있다는 것이, 그 무구한 당연함이 별안간 섬뜩하게 다가온 것이다. 인간의 몸도 하나의 잔과 같을 텐데 내게 담길 것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생각이 닿았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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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어둠 -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
율리아 에브너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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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에게 극단주의자란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악역에 가까웠다. 이 나이 먹고 너무 가벼운 생각인가 싶어 지금 약간 반성이 되긴 하는데, 아무튼 관심도 별로 없고 아는 것도 없었다는 말이다. (관심이 없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긴 하다…) 뉴스에 종종 IS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예전에 SNS를 더 깊게 할 적엔 풍문으로 반-페미니스트 집단에 대해 듣기도 했지만, 그들에 대해 더 아는 것은 없었다.



/


<한낮의 어둠>은 나처럼 관심사가 한정적인 이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뉴스에 무지하고, 관심 있는 분야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으며(이런 사람들이 위험하다), 좋아하는 것에 엄청나게 몰두하는 사람. 잘못하다간 어? 어?? 하는 사이에 극단주의 집단에 발을 들여놓게 될지도 모른다. 사이비 집단도 극단주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집단에 어어어 하는 사이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도망치거나 그 일원이 되는 사례가 많기도 하고.


저자는 여섯 장에 걸쳐 극단주의 조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은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스릴러를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기까지 한데, 그가 직접 조직에 잠입한 경험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정말 겁도 없다. 그래야 큰일을 하나 보다) 흔하게 들어보았으나,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조직들이 어떻게 신입을 모집하고, 그들을 교육해서, 활동에 동원시키는지 읽다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사이비 집단이 대학교 신입생들에게 하는 짓과 흡사한 부분도 많다.


내가 가장 무섭다고 느낀 부분 중 하나는 반페미니스트 집단 잠입기인데, 여기에서의 경험은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만약 그동안 내가 전부 잘못해온 거라면? 만약 남자들이 여자에게서 원하는 것들에 관한 이 여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지금 빨간 약을 먹고 있는 건가? 만약에 대해서는 그만 생각하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이 커뮤니티에 말려들지 이제 알겠다. 빨간 약을 손에 쥔 이 여성들은 먼저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든 다음 세계관을 철저하게 비틀어버린다. 저 여자들이 네게 그렇게 하게 두지 마. 하지만. 만약. 여기서 나와야 한다. 지금 당장.


(중략)


나는 트래드와이브즈에서의 경험을 통해 정반대의 이념 성향도 극단주의자들의 조종 전략을 확실히 막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다. (중략) 계급이나 젠더, 인종, 정치적·종교적 견해는 그 사람이 극단주의자에게 길들여질지 아닐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약해진 시기에는 모두가 극단주의자에게 이용당할 수 있으며 취약함은 상당히 일시적인 개념일 수 있다. (3장 트래드와이브즈, 99p)


책에서도 서술하듯이, 요즈음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와 연결되고, 모든 정보가 아주 빠르고 넓게 퍼질 수 있다. 최근 이슈인 가짜뉴스가 그렇고, 극단주의자들 또한 그렇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반적인 커뮤니티에 섞여서, 극단주의 커뮤니티의 견해(보통 말도 안 되고 비이성적이나, 기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를 조금씩 흘린다. 다수가 그렇다고 믿고 그렇다고 말하는 정보는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된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극단주의 견해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작가의 활동 범위가 유럽인 탓에 책에서는 유럽에 존재하는 극단주의를 설명하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도 극단주의는 얼마든지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었던 당시 선거 때 극단주의자들이 인터넷에서 어떤 일들을 했는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읽는다면 다들 놀랄 것이다. 그건 놀라울 정도로 지금 우리나라 상황과 닮아 있으니까. 곧 선거가 폭풍우같이 몰아칠 미래를 앞두고 꼭 읽어야 할 책이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낮의어둠 #하니포터 #도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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