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집 -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안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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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행위는 어떤 면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림과 사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하나하나 열거하기에는 손가락이 아프니 생략하기로 한다.) 만든 사람의 취향, 시야, 감정 등을 담는 건 마찬가지니까. 모든 그림에는 의도가 있고, 모든 사진에는 의도가 있다.



단어가 언어적 표현 중에서는 사진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여기까지 글을 쓰면서 생각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써서 찝찝함을 느꼈다.(…) 다른 그림에서 똑같은 소재를 똑같은 자리에 배치하고 만 화가가 된 기분이다. 또, 단어는 내가 만든 말이 아니라 사전에 있는 말이니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춰 주는 카메라와 같은 도구라고 해도 어울리지 않나 싶다.


반면 존재하는 말을 엮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낸 것─즉 시는 vlog보다는 그림에 가까운 것 같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엉터리같은 말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에 일단 이 논의는 여기까지만.



아무튼 쓸데없는 서두가 길었던 이유는 이렇다. 책을 읽으며 같은 단어가 이렇게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니 하고 생각했고, 표지의 문구를 오래오래 읽었기 때문이다.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여러 가지로 읽히는 구절이다.



사진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나에게 사진은 그림처럼 작가를 보여 주는 창작물이다. 그래서 남이 찍은 사진 구경하는 걸 아주 좋아한다. 인스타그램이 아주 흥한 SNS이자 플랫폼이 된 건 다른 사람들도 많이 그렇기 때문이겠지. 같은 이유로 나는 사진을 잘 못 찍는 편인데, 내가 찍은 사진이 마음에 차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도 이유이지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게 아직 어렵기 때문이다. (변명하자면 두 개의 문장이 연달아 ~때문, 하고 끝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머릿속에 오가는 말은 많은데 꺼내 놓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A를 찍은 사진으로 B와 C, 때론 D까지 보여 줄 수 있는 것처럼, 단어도 전혀 다른 의미로 가 닿을 수 있다는 것. 사실 그런 걸 펼쳐놓고 보여 줄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너무 놀라웠다. 작가님이 프롤로그에 쓰셨듯이, 이 책이 놀이기구 대신 단어들이 놓여 있는 놀이터라서일까. 놀이터에서는 혼자 놀 수도 있지만 같이 놀면 즐겁고, 함께 노는 대신 가장자리의 벤치에 앉아 구경할 수도 있지 않나.


<단어의 집>을 읽는 내내 놀이터에서 함께 놀다가, 벤치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이 기구 저 기구 옮겨다니기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 한 꼭지를 읽으며 전혀 다른 엉뚱한 생각이 들면 함께 노는 것 같았고, 다음 꼭지를 읽고서 또다시 무릎을 칠 때는 다른 놀이기구를 타며 신나 하는 기분이었고, 편하게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책을 읽으며 쉬지만, 쉴 틈만 생기면 책을 읽는 사람은 아니어서 쉬면서 읽게 될 때면 굉장히 반갑다.



또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일상 생활에서 궁금한 단어가 생겨서 찾아보게 되는 일이 상당히 드문데, 좀 반성하고 싶다. 잘 모르는 단어인데 그냥 넘어가거나, 낯선 것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부지런히 읽고, 보고, 들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본다.


**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단어의집 #하니포터 #도서리뷰

커피에는 커피에 어울리는 잔이 있고 차에는 차에 어울리는 잔이 있다는 것이, 그 무구한 당연함이 별안간 섬뜩하게 다가온 것이다. 인간의 몸도 하나의 잔과 같을 텐데 내게 담길 것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생각이 닿았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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