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엄마에게
피천득 외 174인 지음 / 샘터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 샘터 <사랑하는 나의 엄마에게>

 

               어머니!
               눈 내리는 밤이면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다섯 식구 다락방에 포개어
               오돌오돌 새우잠 자던 창신동 언덕빼기에서
               이부자리 사이로 삐죽 나온 제 발을
               어머니 발로 밤새 녹여 주시던 그날 밤
               이렇게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렸지요.
                 - <사랑하는 나의 엄마에게>의 본문(p11. 설빛뜨락 서울구로)중에서.

  

   내게도 그런 어머니가 계신다. 가난하고 추웠던 시절, 삼면은 모두 커다란 창이고 미닫이 문인데 하나
같이 이가 맞질 않아서 차겁고 매서운 바람이 불때마다 바람소리보다 더 크게 덜컹거리던 소리. 그 소리
보다 매섭게 뼛속까지 파고들던 그 바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바람소리는 내게 춥고 가난했던
소리여서 슬픈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따뜻한 냄새, 그 푸근한 온기로 더 훈훈했던 겨울 기억으로 남는다.
밤이면 추울까봐 당신 품안에 내 발을 꼬옥 품어주시며 잠을 청하시던 내 어머니. 그 어머니의 오래된
사랑을 되살아나게 하고, 그 아름다운 기억 언저리로 나를 데려다 주었던 책이다. 

 
    사람들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모두 다르다. 어머니의 모습이 어떠했고, 그 사랑이나 그리움에게
사람들은 저마다 짧고 긴 편지를 쓰고 있다. 누군가는 편지라기 보다는 쑥쓰러워 슬그머니 쥐어주고는
달아나고 싶은 쪽지 같기도 하지만, 그 글이 어떤 형태의 글이든 모두 어머니를 향하고 있다. 피천득이
나 이해인을 비롯한 유명인들도 있지만, 몇몇의 글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세상 어디에선가 살아있거나
살아있었던 수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글이다. 그러나, 글을 읽으면서 문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나
다 말하지 못한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그 모든 경계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이
쓴 글이냐 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쓴 글이냐가 훨씬 가슴을 울리고 와닿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왠지, 따뜻한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아주 천천히 조금씩 읽고 싶다. 시는 아니지만, 살아가면서
문득 문득 소중한 것들을 놓치거나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가끔씩 내게 들려주고 싶은 몇 구절의 소중한
글귀나 마음을 울리는 시처럼 곁에 두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의 어느 부분이, 무엇이 그렇게 와 닿았는지
묻는다면 나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설명할 방법도 모르겠다. 그저, 내 기억의 어디에선가 잊혀져 가고 있
거나 잠시 묻어두고 바쁘다는 핑계만으로 정신없이 살다가, 나를 잠시 흔들어 깨워줄 수 있을 것 같은
몇 구절의 말들이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고, 가슴 속이 잔잔한 온기로 채워질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욕심이 난다는 말 이외에는 할 수가 없다.
 

   어머니를 향하는 글에 어떤 이유가 있고,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아름답겠는가? 누군가의 어머니
는 아름답고 누군가의 어머니는 아름답지 않겠는가? 어쩌면 무의미한 의문들이다. 그저 가슴 한구석에
어머니란 이름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차가워질 수 없는 것처럼,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남겨져 있는 듯 느껴지는 일처럼, 그저 어머니를 향한 마음들이 생각들이 여기에 고스란히 모여 있다.
그 마음과 생각과 그리움들을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남겨 두었다. 

 
 

'일 하다가 정 힘들고 외로우면 엄마 생각하고, 그래도 못 견디겠으면 꼭 돌아와라!'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 곁을 떠나 돈 벌러 서울 가던 날, 어머니께서 건네주신 쪽지였지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 <사랑하는 나의 엄마에게>의 본문(p 79. 경기 연천, 정기승)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그가 앉은 의자도 아름답다. 그가 쓰던 칫솔도 역사적인 기념물처럼 소중하다.
그가 쓰고 버린 휴지조각도 버릴 수 없이 애틋하다.
지난날의 끔찍스럽던 부부싸움도 서운함도 그와 관련되기만 하면
모든 게 찬란히 빛나면서 커다란 화면 속에 비치는 애잔한 색조로 다가왔다.
모두 잠든 고요한 밤에도 빛이 꽉 찬 정오의 적막 속에서도
그커다란 화면에는 쉴새없이 새로운 영상들이 나타났고, 내 눈에서는 굵고 더운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 시작 <점선뎐>의 본문(p 194. 황홀)중에서.
 

   이 글은 그녀보다 먼저 암 선고를 받은 남편을 위해 그녀가 <황홀>이라는 제목으로 썼던 글의 일부다.
때로는 무섭도록 거침없이, 때로는 미칠듯이 열정적으로 또 때로는 한없이 여리고 맑은 영혼으로 살았던
그녀가 남편의 죽음 앞에서 떠올린 말은 슬픔보다 아름다운 <황홀>이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슬프지 않았
던 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지독하게 슬프고도 허무한 그녀의 아픔이, 슬픔을 슬픔으로 아픔을 아픔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없다. 세상을 향해 자신은 왕따고 성인용이라며 거침없이 큰 소리 치고, 북받치듯 큰 소리로 호
탕하게 웃을 것만 같은 그녀는 이제 그녀가 쓴 자서전에서 혹은 그녀가 남긴 작품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녀가 번뜩이며 살아 있을 때 그녀의 눈빛을, 붓이 유난히 잘 어울릴 듯한 그녀의 손을 눈여겨 보고 만져
보지 못한 아쉬움에 가슴 아프다. 문화원의 문턱이 닳을만큼 드나들면서 그녀가 파고들었을 젊은 날의 수
많은 책들. 밤낮없이 그녀의 눈을 반짝이게 하고, 그녀의 우주와 그녀의 삶을 움직였을 철학자와 예술가와 사상가들의 삶과 언어와 역사들을 나는 만나고 싶다. 그녀의 세상을 향해 열려있었을 커다란 창과, 그녀를 안정시켰을 익숙한 공기와 그녀가 매일 물을 주던 작은 화초들과 그녀가 아이들의 순수함에 해가 될까봐 망설이고 아파하며 그렸을 그림들을 나는 보고 싶다. 그녀의 흔적과 기억들이 남긴 많은 것들에서 나는 감히 황홀을 품는다. 그녀가 남긴 기억이라는 이름만으로, 그녀가 만지고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머닌 내가 말하는 것을 거들어, 결국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자신의 입으로 어머니께 말하도록 유도했다.
앞으로 어떻게 고쳐나가겠다는 점까지 말하도록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었다.
언제나 한결 같은 것은 끝에 이르러서는 내가 엉엉 운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잘못을 뉘우치고 인간으로서의 수치심을 느끼다가,
잘못한 그 점만 고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울고 또 울었다.
어머닌 인류를 대표한 스승이였고, 내 영혼을 낳아준 아버지이고, 나를 사랑으로 일깨워주는 지도자였다.
나는 수없이 되풀이되는 이런 울음을 통해 어머니 앞에서 조금씩 조금씩 커갔다.
                - 시작 <점선뎐>의 본문(p 66. 효도할 시간에 공부하라시더니) 중에서.

 

   그녀의 전기에는 성공신화 같은 것은 없다. 그녀가 무엇을 얼마나 이루어냈고, 이 세상에 어떤 공헌을 했다는 것도 없으며, 그녀가 남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말도 없다. 아름답고 헌신적인 어머니의 지혜와 누구보다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있었다. 그녀가 가장 존경하는 할머니와 그녀의 가족들의 삶이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얼음물에 손을 담그고 밥을 짓고,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스스로 돈을 벌고 고생을 해봐야 예술이라는 것을 안다는 선배의 말에 덜컥 청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던 그녀.  그 아들이 수학을 포기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녀도 가슴 철렁한 평범한 엄마였다. 하지만, 말없이 달력을 두 장 찢어내고 책을 펴서 둘이서 수학문제를 풀고 싶은데로 풀자고 말하면서 놀았던 엄마. 그런 그녀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낳은 아이를 제일 무서워하며 살았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나쁜 영향을 줄까봐 평생 긴장하며 살았고, 아들을 비웃거나 빈정거린 말을 한 기억도 없다고 했다. 아들이 기억하는 모든 순간이 유언장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분명 평범하지 않았다. 세상의 한 쪽에서 비딱하게 세상을 보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불평 불만도 많았다. 그런 그녀가 유난히 안타까워하고 사랑하고 아끼던 것은 어린 아이들의 눈빛이며 심성들이다. 그 순수하고 맑은 영혼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봐, 아이들이 보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망설여지고 겁이 나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삶을 두고 모두 같은 시선으로 보고, 같은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표면적으로 때로 거침없고 열정적이면서도, 길들일 수 없을 것 같은 반항아 같아서 영원히 철들 것 같지 않은 삶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무엇이 그토록 그녀로 하여금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가지게 했을까. 무엇이 그토록 타협이나 안주와는 거리가 먼 거칠고 외롭고 뜨겁게 살도록 만들었을까.    

   그녀에게는 열정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도 그런 말은 쓰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전기가 자신을 보는 시선이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자신의 삶 속에서 무엇을 찾아냈을까. 얼마남지 않은 시간들을 앞두고, 그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녀는 어떤 결론도 말하지 않는다. 어떤 정의도 내리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안타까움도 없다. 그녀가 품는 소망에 대해, 그녀의 몸이 낡아지고 삐걱거리는 것도 좋은 징조라고 말하며, 그녀가 사랑하고 아끼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그녀의 글은 마치 내일도 계속될 일기같다. 삶은 하루 하루 느끼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오늘로 살아있는 시간이며, 어제는 가슴속에서 살아있는 오늘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마치 그녀는 내일도 그림 그리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쓸 것 같다.  

 
차츰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 자신도 고통스러운 세월을 살게 되었다.
무명작가인 내가 그린 그림을 사람들은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심지어는 그런 그림을 그리는 나를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런 세월에 나는 백조왕자를 기억해냈다.
헝클어진 모습으로 미친듯이 풀옷을 짜는 공주를 생각해냈다. 

이 그림이 완성되면 세상이 내게 건 마술도 풀릴 것이다. 나는 그런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다. 

변명은 낭비다. 변명은 내가 나아갈 길이 아니다.
오로지 내 속의 나침반만 바라보면서, 내 감성이 이끄는 대로 그림을 그려나가면 길이 열릴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침묵 속의 몰두, 그것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 시작 <점선뎐>의 본문(p 99. 안데르센 동화)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초등 입학전 읽기능력이 평생성적을 결정한다
이정균 지음 / 미르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 미르북스 <초등입학전 읽기능력이 평생성적을 결정한다>
 

 

 

읽기 능력이란 단순히 글자를 읽고 뜻을 아는데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헤아리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읽기'는 언제나 '듣기'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읽기 능력을 높여주기 위한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당연한 말이지만 '책읽기'다.
책읽기가 반드시 아이가 제 힘으로 모든 책을 읽어야 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몇 개의 글자를 읽을 줄 아느냐가 아니라
아이가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능력과 책에 대한 흥미가 얼마나 있느냐다.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도 읽기 능력과 아이들의 '이해력'에 관한 것이었다.
                                    - <초등입학전 읽기능력이 평생성적을 결정한다>의 프롤로그 중에서.

 
 

   저자 이정균은 20년 정도의 경력을 가진 초등학교 교사다. 6차, 7차 초등 국어교과서 집필위원으로도 참여했었고, 현재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의 모임에 운영진 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그래서 모든 이야기의 초점은 자신이 초등학교 재직 중에 만났던 아이들과의 경험과, 수업 중에 아이들이 힘들어 했던 여러 문제들을 중심으로 그 문제를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가 아니라, 초등학교 입학 전에 미리 예방할 수 있는 대안으로 '독서지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요즘 조기교육의 뜨거운 열기, 대부분의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글을 읽고 쓰고, 수세기와 구구단을 외우고, 영어와 한자까지 알고 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스스로 글자를 읽고 쓰기 시작하고, 학습지를 풀기 시작하면, '이제 학교에 보내도 되겠다.'는 안도감을 가지며, 입학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학교에 보낸 아이가 글도 읽고 쓰고 영어와 수학도 아는데,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적으라는 문제만 내놓으면 먹먹한 표정이 되어 버린다. 빨리 말하고 빨리 판단하고 답을 쓰는 요령까지는 익혔는데, 곰곰히 생각하고 충분히 느껴서 자신만의 의견을 만들어내고 표현하는 일에는 능숙하지 못하다는 일이다. 저자는 이 문제를 <읽기>의 문제라고 결론짓고 있다. 또, 저자의 읽기는 단순하게 글자의 소리를 변별하고 입으로 말하는 것을 말하는 읽기가 아니라, 부모가 읽어주는 소리를 듣거나 자신이 직접 소리내어서 읽거나 소리를 소리로 흘려 버리지 않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모두 포함한 읽기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듣기와 이해를 바탕으로한 읽기라는 것이다.
 
   <읽기>는 말하거나 듣는 일처럼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오히려 말하거나 듣는 것보다 더 체계적인 훈련을 필요로 하며, 이 훈련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책읽기'를 꼽는다. 듣고 헤아리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이보다 더 훌륭한 교과서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의 이해력을 도울 수 있는 제대로 된 책을 고르기 위해서는 부모의 좀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부모에게도 책에 대해 알고 고르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령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단어에 한계가 있고, 연령마다 꼭 필요한 이야기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책을 고를 때에 베스트셀러나 '~카더라' 통신 맹목적으로 쫒아가는 인스턴트식의 부모 안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부모 스스로도 제대로 된 책을 고르는 안목을 키워야 하고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좀더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정보망을 알아내고 이를 통해서 양질의 책을 골라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속에는 책을 고르는 안목이나 정보력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만한 내용도 간략하게 수록하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아쉽다는 생각이 곱씹어진다.  세상의 많은 문제거리에 대해 비판하거나 문제를 표면으로 끌어 올리는 사람은 많은데,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도 떠오른다.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의 입학전 준비에 여러 조기교육만을 넣을 것이 아니라, 충분한 책읽기가 필요하다는 문제제시도 공감하겠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공감하겠다. 부모가 더 갖추고 공부해햐 한다는 것도 알겠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좀더 진지하게 접근하고 충분한 대안을 제시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책 내용을 살펴보면 전체내용의 8/10 이 연령별 책소개가 실려있고, 1/10이 아이에게 좋은 책을 골라주는 비결인데, 이 책소개가 단행본을 전혀 접해보지 못하는 엄마들이라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책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단행본을 두고 고민을 해본 엄마들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연령별로 제시된 책 리스트들이 베스트셀러나 유아권장도서 목록과 거의 흡사할 뿐, 그보다 깊은 있는 내용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책을 소개하는 내용이나 독후활동의 내용도 오히려 다른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것보다 압축적이고 별반 다르지 않아서 신선한 느낌이 없다. 한마디로 차별화된 전문가적인 안목이나, 지금껏 활용하던 방법보다 좀더 깊이있거나 폭넓거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좀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지금껏 우리가 보아왔던 좋은 책 리스트나, 그 책의 내용이나 활용법을 다시 한번 정리해서 이 책에 실어놓은 느낌이다.

   평생 책을 즐기고, 독서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려고 아이에게 관심과 정성을 쏟는 세상의 많은 엄마들의 수준은 의외로생각보다 낮지 않다. 책 하나 하나를 고르는 엄마의 마음과 고민은 하루아침에 시작되지 않았고, 누구보다 열심히 고민하고 여러 매체를 통해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그들의 수준을 너무 쉽게 일률적으로 하향평준화해서 대안을 제시한 것은 아닌지 조금 씁쓸하기까지 하다. 아이들의 책을 고르는 엄마들의 마음은 단순히 마트에서 시장에서 물건 고르는 것과는 다르다. 엄마들의 마음과 애정과 열정은 겉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열정적이다.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충고와 대안을 제시할 때는, 그들의 수준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이것은 부모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교육문제는 부모도 학교나 사회도 국가도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자는 결론이 아니라, 혹시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듯이 부모도 가르치겠다는 관점을 가졌던 것은 아닌지. 너무 모른다는 가정하에서 시작한 대안이라 씁쓸하다. 

   아이에게 꼭 맞는 책을 고르는 비결에 7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 대안 중에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있고, 도움이 되는 내용도 있다. 그런데, 이 비결이라는 것을 읽으면서도 좀더 독서나 책에 대해 전문가였으면 더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도 아니라면 책을 만드는 데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고루 책에 대해 설명했더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작가나 일러스트레이터 아니면, 철학이나 문학에 깊은 고민과 연구를 해온 사람이거나 적어도 아동문학가나 유아교육전문가가 그들의 전문적인 안목과 시선을 바탕에 두고 책을 선정하고, 유아의 연령과 성장, 상호작용이나 사고나 도덕의 발달을 모두 인지한 입장에서 독서를 논했다면 오히려 좀더 설득력이 있었을까?  독서를 취미나 대안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나, 영리를 바탕으로 독서교육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아닌, 독서를 평생교육의 중심에 놓고 책을 읽는 일이 평생학습의 큰 근원이며, 줄기라는 생각에서 접근하고 고심하고 연구한 사람의 대안이길 희망했던 것은 지나친 욕심이였을까. 세상의 많은 책들에 대해 조금은 겸손하지만 깊이있고, 열정적으로 접근하는 시선과 좀더 과학적인 고민으로 대안을 제안했더라면 훨씬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에 정말 마음 씁쓸하고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사랑의 속도를 10km 늦출 때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
조셉 베일리 지음, 강현주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미칠 듯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는데 이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다. 
만일 정신없이 바쁜 삶 속에서 인간적인 친밀감을 나눌 시간을 찾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궁금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또는 연인과의 관계가 예전처럼 찬란히 빛나지 않거나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면,
만약 해야 할 일들로 가득한 목록들이 당신의 인생이나 대인관계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 시아 <사랑의 속도를 10km 늦출 때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본문(p 18)중에서.


 

 

   저자, 조셉 베일리는 사랑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그 사랑을 충분히 느끼기 위해서 먼저 자신 내부
의 충만함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자신의 내부는 이미 충분히 채워져 있으므로, 자신의 내부에 이미 사
랑으로 충만함으로 누군가 나를 채워주기를 누군가를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하지도 욕심부
리지도 말라는 것이다. 자신의 내부를 느끼고, 사랑으로 충만한 자신을 발견할 때 그 여유로운 삶과 생
각과 느낌의 여백 위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배려하고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사랑은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마음이라고.

     우리가 갖는 수많은 의문과 갈등의 본질들 중에는 그 대답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내면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들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고 분주하게 그 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동안,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결론없는 분노이거나 실망, 절망일지도 모른다. 누구
도 스스로를 완벽하다고 믿지는 않겠지만, 자신에게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들을 누군가가 해결해
줄거라고 혹은 누군가가 채워줄 수 있을거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오히려 자신은 수동적인 자세를 살아
가고 있지는 않을까. 자신에게서 부족한 그 부분들이 행복, 사랑, 꿈, 희망, 열정 등,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들은 우리 외부에서 비롯되거나 찾아올 수 없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외형을 제대로
갖추고 고를 수 있는 물질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외부에서 누군가가 채워
주기를 기대하고 기다린다면, 우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메세지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
"네가 ~해주면 나는 행복해질거야." "네가 ~해주지 않으면 나는 불행해질거야."라는 이 메세지를 의식
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알게 된다면 상대는 부담스러운 나머지 방어자세를 취하게 만들어 더욱 관계
를 경직되게 할 것다. 이 메세지속의 어리석은 결론은 하나다. 결국 자신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 혹은 진
실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자신이 행복하지 못
한 이유, 진실한 사랑의 모든 책임을 내게 돌리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나는 그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
할 수 있을까. 바로 그런 무거운 책임을 내가 누군가에게 무작정 떠넘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라지만, 어쩌면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내면에서
이미 수긍하며 인정하고 있는 사실들을 다시 한번 그의 목소리와 글로 정리한 것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
할지도 모르겠다. 조셉 베일리는 매일 매일을 너무 바쁘게 너무 많은 일들 속에 파묻혀 살고 있는 우리들
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내부를 충분히 느끼라고 권한다. 그가 제시한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 이
외에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제안하는 방법들은 대부분 특별한 것이 없다. 현재
의 상태에 충실하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주의깊에 귀 기울여서 몰입하고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러 나올
때 대답하는 것, 같은 현실안에 있지만 우리는 제각기 다른 현실 속에 존재하며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한 마음으로 용서하라는 것들이다. 이 모든 것
들이 가장 좋은 방법들이란 것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와 나의 차이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런 태도와 노력이 삶을 얼마나 바꾸고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이고 사랑을 충만하게 하는
지 깨닫고 깨닫지 못했던 차이만 있다. 
 
   사랑에도 방법이 있을까. 마음을 주고 받는데도 방법이 있을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살아가고 만나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사람이 숨쉬고 밥을 먹는 일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며, 누군가 가르
쳐주지 않아도 본능처럼 가능한 것이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지독한 열병같은 사랑에 빠진
경험이 있을 것이며, 그 순간 모든 시간과 장면이 멈춘 것과 같이 몰입했던 순간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내 곁에 있는 가족들, 연인들, 친구들에게 그러한가. 나는 충분히 몰입하고, 나를 이루
고 있는 나의 환경에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사랑은 시작보다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더 어려운 일이며, 포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믿음은 자신은 사랑을 지킬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가능하다면, 정말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 열병같고 모든 호흡과 시간, 장면이 멈춘 것 같은 몰입으로
내 가족과 연인과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 않은가. 그것은 그렇게 어렵지도 복잡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깨닫기만 한다면. 날마다 조금씩 그 소중한 것들
을 우리 내면에서 찾고 가꿀 수 있는 작은 노력만 할 수 있다면. 나도, 사랑의 마법을 시작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7세전 민감력이 평생지능 결정한다
사가라 아츠코 지음, 이수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 21세기북스 <7세전 민감력이 평생지능 결정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에 흔들립니다.
'이게 중요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금방 그것을 해야 할 것 같고,
'저게 중요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당장 그것을 가르쳐야 할 것 같아 늘 이야기에 쫒기는 기분이 듭니다.
주위 이야기에 이렇게 흔들리지 않도록,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아이를 키우는 내내 늘 일관되게 '이것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확신할 키워드를 말씀해주세요. 

답은 너무도 간단했다. 누구나 망설임없이 "그건 자립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일본에서는 자립, 프랑스에서는 자율! 이것이 아이를 키우는 동안 일관되게 지켜야 할 중요한 키워드였다.
                       - 21세기북스 <7세전 민감력이 평생지능 결정한다>의 본문(p121~122) 중에서.

 

 

가끔 너무 많은 육아서를 읽지 말라는 충고를 접한다. 그건 책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육아서를 읽거나 경험자의 충고를 듣는 것은, 자신의 실수를 줄이고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려는 것이지만,
육아서는 저마다 조금씩 다른 것을 강조하고, 경험자들도 자신들의 경험에만 한정되지만 확신에 차 있어
이 많은 글과 말들을 모두 들으려 하다보면 오히려 혼란에 휩싸이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세상의 모든 아이는 특별하고 모두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아이는 규격에 맞춰 태어나는 것이 아니므로, 일률적인 잣대로 아이를 평가 이해하려면 한계에 다다른다.
또 하나, 교육정책과 교육론은 정지된 것이 아니라 세월에 따라 변하고 흐른다는 것이다.
수십년, 수백년 전 세상에 발표된 이론들이 어느 시대에는 조명받다 또 어느 시대에는 비판받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믿고 있는 최고의 교육이론이 항상 최고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제대로 된 나침반을 찾아 아이를 가르쳐야 할까.    

저자 사가라 아츠코는 일본 몬테소리협회 이사이면서, 도쿄 국제몬테소리 교사 트레이닝센터 강사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일본의 몬테소리에 대해 소개하고, 몬테소리식 육아(교육)와 교구들을 소개하고 있다.
몬테소리 시작은 일본이 아니라, 이탈리아 교육학자 마리아 몬테소리에 의해 전세계에 보급된 이론이다.
또한 마리아 몬테소리가 1870년생인걸 감안하면 적어도 100년전에 그녀가 세상에 내놓은 교육이론이다.
로마대학 최초 여자 의대생이였던 그녀는, 불구 및 백치아의 의학치료 뿐 아니라, 교육치료를 절감했고
이후, 빈민가 출신 3~6세 아동 60명을 맡게 되면서 독창적인 '몬테소리법'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녀의 백치아에서 정상아에까지 교육법을 적용시킨 '감각훈련 놀이감'은 프뢰벨의 은물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몬테소리식 교육법을 한다는 교육기관을 주위에서 흔히 본다. 또 엄마들에게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는다.
좋은 교육이라 믿고 있는 몬테소리 교육의 핵심은 알고 있을까? 알고 비교적 높은 점수를 주고 있을까?
몬테소리식 접근법에 대해 알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 원칙을 지키면서 아이들과 대화하고 있을까?
어떤 교육이론과 교구들도 세상에 내놓을 때의 핵심과 중요한 원리를 보존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론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고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면, 육아나 가르치는 과정에서
그 본질이 쉽게 훼손되거나 때로는 심한 경우, 핵심은 사라지고 거기에 교구와 율동만 남는 경우도 있다.
몬테소리식 교육을 유아교육기관에서만 하라는 법은 없다. 시행되는 곳이 많을수록 더 좋다.
몬테소리식 관찰과 대응, 놀이와 학습법은 가정에서도, 유치원이나 보육시설, 학교에서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몬테소리식 교육법은 교실에서 선생님과 유아 사이에서 지식만을 전달하는 교수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몬테소리는 조기교육이 아닌, 적기교육이라고 말한다. 시기에 맞는 교육이 최고의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부모나 교수자의 판단으로 인위적으로 교육을 주입할 것이 아니라, 먼저 아이를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생에 단 한번, 누구나 자신의 주변의 모든 것에 열정적이고 집중적인 민감성을 발휘하는 시기가 오고
그 시기에 아이의 욕구를 이해하고, 그 욕구를 충분히 발휘하고 채워지도록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와 교육자가 함께 즐겁게 육아와 교육을 즐기면서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게다는 기대와 소망만 잔뜩 가질 것이 아니라,
아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즐거워하고,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하는지 같이 느끼고 알게 되면
아이가 스스로 충족되는 충만감과 자신감으로 자립과 자율을 갖추어 가는 과정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어떠한 교육방법을 두고 '이것만이 가장 효과적이다.'라는 생각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그런 교육법만을 주장하는 교육이론서는 어디에도 없고, 그런 교육자를 길러내는 학교도 교수자도 없다.
안전한 방법은 지나치게 한 방향에만 치우쳐서 중심을 잃지 않는 일이다.
중심을 잃지 않고, 많은 육아서와 많은 충고들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고 정확한 나침반을 가지기 위해서는
각 교육이론의 장단점을 정확히 알고, 그들의 장점들을 잘 조합하고 활용해서 적용해야 한다.
이론 전부를 알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각 이론의 핵심을 파악하는 일은 전부를 아는 것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 많은 이론이나 충고를 보고 듣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내 아이를 아는 일이다.
내 아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특성에 대해 잘 아는 일이며, 단 하나라도 제대로 이행하는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