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그가 앉은 의자도 아름답다. 그가 쓰던 칫솔도 역사적인 기념물처럼 소중하다.
그가 쓰고 버린 휴지조각도 버릴 수 없이 애틋하다.
지난날의 끔찍스럽던 부부싸움도 서운함도 그와 관련되기만 하면
모든 게 찬란히 빛나면서 커다란 화면 속에 비치는 애잔한 색조로 다가왔다.
모두 잠든 고요한 밤에도 빛이 꽉 찬 정오의 적막 속에서도
그커다란 화면에는 쉴새없이 새로운 영상들이 나타났고, 내 눈에서는 굵고 더운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 시작 <점선뎐>의 본문(p 194. 황홀)중에서.
 

   이 글은 그녀보다 먼저 암 선고를 받은 남편을 위해 그녀가 <황홀>이라는 제목으로 썼던 글의 일부다.
때로는 무섭도록 거침없이, 때로는 미칠듯이 열정적으로 또 때로는 한없이 여리고 맑은 영혼으로 살았던
그녀가 남편의 죽음 앞에서 떠올린 말은 슬픔보다 아름다운 <황홀>이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슬프지 않았
던 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지독하게 슬프고도 허무한 그녀의 아픔이, 슬픔을 슬픔으로 아픔을 아픔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없다. 세상을 향해 자신은 왕따고 성인용이라며 거침없이 큰 소리 치고, 북받치듯 큰 소리로 호
탕하게 웃을 것만 같은 그녀는 이제 그녀가 쓴 자서전에서 혹은 그녀가 남긴 작품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녀가 번뜩이며 살아 있을 때 그녀의 눈빛을, 붓이 유난히 잘 어울릴 듯한 그녀의 손을 눈여겨 보고 만져
보지 못한 아쉬움에 가슴 아프다. 문화원의 문턱이 닳을만큼 드나들면서 그녀가 파고들었을 젊은 날의 수
많은 책들. 밤낮없이 그녀의 눈을 반짝이게 하고, 그녀의 우주와 그녀의 삶을 움직였을 철학자와 예술가와 사상가들의 삶과 언어와 역사들을 나는 만나고 싶다. 그녀의 세상을 향해 열려있었을 커다란 창과, 그녀를 안정시켰을 익숙한 공기와 그녀가 매일 물을 주던 작은 화초들과 그녀가 아이들의 순수함에 해가 될까봐 망설이고 아파하며 그렸을 그림들을 나는 보고 싶다. 그녀의 흔적과 기억들이 남긴 많은 것들에서 나는 감히 황홀을 품는다. 그녀가 남긴 기억이라는 이름만으로, 그녀가 만지고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머닌 내가 말하는 것을 거들어, 결국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자신의 입으로 어머니께 말하도록 유도했다.
앞으로 어떻게 고쳐나가겠다는 점까지 말하도록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었다.
언제나 한결 같은 것은 끝에 이르러서는 내가 엉엉 운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잘못을 뉘우치고 인간으로서의 수치심을 느끼다가,
잘못한 그 점만 고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울고 또 울었다.
어머닌 인류를 대표한 스승이였고, 내 영혼을 낳아준 아버지이고, 나를 사랑으로 일깨워주는 지도자였다.
나는 수없이 되풀이되는 이런 울음을 통해 어머니 앞에서 조금씩 조금씩 커갔다.
                - 시작 <점선뎐>의 본문(p 66. 효도할 시간에 공부하라시더니) 중에서.

 

   그녀의 전기에는 성공신화 같은 것은 없다. 그녀가 무엇을 얼마나 이루어냈고, 이 세상에 어떤 공헌을 했다는 것도 없으며, 그녀가 남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말도 없다. 아름답고 헌신적인 어머니의 지혜와 누구보다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있었다. 그녀가 가장 존경하는 할머니와 그녀의 가족들의 삶이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얼음물에 손을 담그고 밥을 짓고,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스스로 돈을 벌고 고생을 해봐야 예술이라는 것을 안다는 선배의 말에 덜컥 청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던 그녀.  그 아들이 수학을 포기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녀도 가슴 철렁한 평범한 엄마였다. 하지만, 말없이 달력을 두 장 찢어내고 책을 펴서 둘이서 수학문제를 풀고 싶은데로 풀자고 말하면서 놀았던 엄마. 그런 그녀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낳은 아이를 제일 무서워하며 살았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나쁜 영향을 줄까봐 평생 긴장하며 살았고, 아들을 비웃거나 빈정거린 말을 한 기억도 없다고 했다. 아들이 기억하는 모든 순간이 유언장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분명 평범하지 않았다. 세상의 한 쪽에서 비딱하게 세상을 보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불평 불만도 많았다. 그런 그녀가 유난히 안타까워하고 사랑하고 아끼던 것은 어린 아이들의 눈빛이며 심성들이다. 그 순수하고 맑은 영혼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봐, 아이들이 보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망설여지고 겁이 나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삶을 두고 모두 같은 시선으로 보고, 같은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표면적으로 때로 거침없고 열정적이면서도, 길들일 수 없을 것 같은 반항아 같아서 영원히 철들 것 같지 않은 삶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무엇이 그토록 그녀로 하여금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가지게 했을까. 무엇이 그토록 타협이나 안주와는 거리가 먼 거칠고 외롭고 뜨겁게 살도록 만들었을까.    

   그녀에게는 열정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도 그런 말은 쓰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전기가 자신을 보는 시선이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자신의 삶 속에서 무엇을 찾아냈을까. 얼마남지 않은 시간들을 앞두고, 그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녀는 어떤 결론도 말하지 않는다. 어떤 정의도 내리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안타까움도 없다. 그녀가 품는 소망에 대해, 그녀의 몸이 낡아지고 삐걱거리는 것도 좋은 징조라고 말하며, 그녀가 사랑하고 아끼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그녀의 글은 마치 내일도 계속될 일기같다. 삶은 하루 하루 느끼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오늘로 살아있는 시간이며, 어제는 가슴속에서 살아있는 오늘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마치 그녀는 내일도 그림 그리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쓸 것 같다.  

 
차츰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 자신도 고통스러운 세월을 살게 되었다.
무명작가인 내가 그린 그림을 사람들은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심지어는 그런 그림을 그리는 나를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런 세월에 나는 백조왕자를 기억해냈다.
헝클어진 모습으로 미친듯이 풀옷을 짜는 공주를 생각해냈다. 

이 그림이 완성되면 세상이 내게 건 마술도 풀릴 것이다. 나는 그런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다. 

변명은 낭비다. 변명은 내가 나아갈 길이 아니다.
오로지 내 속의 나침반만 바라보면서, 내 감성이 이끄는 대로 그림을 그려나가면 길이 열릴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침묵 속의 몰두, 그것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 시작 <점선뎐>의 본문(p 99. 안데르센 동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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