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돈
케빈 필립스 지음, 이건 옮김 / 다산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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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터의 고문 로버트 루빈을 포함한 금융 부문의 지지자들은
금융이 미국을 새로운 후기산업사회로 이끌 것이며, 과거에 제조업이 몰락하는 농업을 대신했듯이
수익성 높은 금융을 포함해서 서비스 산업이 제조업을 대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은 세계의 발전을 이끄는 거대한 원동력이라는 말이었다.
천년왕국신앙에 사로잡힌 미국은 이제 앞장서기 시작했다. 

회의론자들은 이런 생각이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고 경고했다.
금융에 대한 이런 생각은 낡은 것이며, 앞서간 세계 경제패권국들을 몰락시킨 망상이라고 주장했다.
                            - 다산북스의 <나쁜돈>의 본문(p 272) 중에서.

  

   케빈 필립스는 2007년에서 2008년에 걸쳐 다시 불어닥친 경제의 칼바람은 앞으로 더 큰 위기를 예고하는 하나의 신호로 간주하고 있고, 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원인을 밝히고 싶어 한다. 물론 나는 '원인'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케빈 필립스의 거친 입담은 '주범'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는 무엇이든 적당히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의 글을 읽는 내내, 그는 숨고르기조차 어려워 보일만큼 빠른 호흡으로 많은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적당히 순화된 말들은 잊어버린 사람처럼 공격적인 어투와 단어들을 섞어 쓰며, 이 글 이전에 자신이 썼던 책과, 자신의 주장들을 들먹이며 정말 끊임없이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활자 정보의 특징이 양방향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보고 듣는 사람의 동조조차 기다릴 여유가 없어 보이는 그는 글들은 긴박하고 초조하며 공격적으로만 보인다. 아마, 케빈 필립스가 지금 당장 내 앞에 있다고 해도 그는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나도 둘러 말하지 않고, 케빈 필립스의 방식으로 말한다면 나는 그가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주장은 하되 충분한 근거들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가 제시하는 근거들은 대부분 정확한 연구나 조사 이후의 결과들도 아니며, 공식적으로 채택한 문서들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글들을 읽다보면 그의 주장이나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은 자신의 또다른 책과 주장들에서 이미 제시한 내용이거나, 누군가가 했었던 말이거나 어디선가 본 내용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더구나 매일 경제정보를 두고 골몰하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의 출처가 모든 사람이 믿고 인정할 만한 공신력있는 정보가 아닌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신뢰하지 않는다. 또한, 감정적이거나 자신의 생각과 말을 잘 조율할 수 없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결론들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의 모든 주장을 반박하거나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주장 모두를 있는 그대로 신뢰하지 않으며, 나는 케빈 필립스 또한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해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주장 가운데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

  그는 미국의 현재 경제상황을 냉정하게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유가가 급등하고 피크 오일 이론이 확신을 얻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석유외교와 전쟁, 그리고 악화상황까지 모두 그리 새로울 내용도 놀랄 내용도 없다. 지금은 이미 오바마의 손으로 넘겨졌지만, 정치 권력을 누가 어떻게 얼마나 사용하느냐에 따라 경제의 역사도 관점도 전망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미 지난 부시정권에서 부터 미국 경제는 석유, 주택, 금융, 자동차 등의 많은 부분에서 위태로와 보이거나 불안정해 보였다. 이미 악화의 길로 들어선 미국 경제를 오바마 진영이 어떤 방향과 관점으로 어떻게 풀어나가고 재 점검할지는 앞으로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며, 수많은 길 중에 어느 길을 선택하고 그 여파가 어떻게 될지는 지켜보아야 알 일이며, 모든 것은 예측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케빈 필립스는 미국의 금융 부문의 팽창을 위험요소로 진단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전의 역사 속에서 세계 여러 경제패권국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역사속에서 사라져 갔는지를 근거로 들어 미국이 금융 부문의 비정상적인 성장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결국 미국은 불행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이 세계의 영원한 경제패권국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환상이며, 그 환성에서 되도록 빨리 깨어나지 못하면, 그 경제패권국으로서의 권좌를 아시아의 가장 유력한 중국에게로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고통스러워 한다. 그런데도 그런 그의 안타까움이 미국과 미국의 미래에 대한 애정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그의 전체적인 이 주장이 모두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주장의 많은 부분들이 케빈 필립스 그가 아니여도, 경제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오래전에 예측되고 전망되고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그의 주장 중에는 아직은 확언하기 어려운 많은 변수들을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적당히 부분적으로 사용하거나 편집한 흔적들이 보인다. 그래서 마치 그가 경제전문가로서 미국경제를 선두적인 입장에서 미리 진단하고, 경제 흐름을 간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판단일 것이라 생각된다. 경제흐름을 제대로 읽고 싶어서 전문적이고 신뢰있는 정보를 얻고 싶거나, 깊이있는 세계경제 흐름을 읽고 싶다면 나는 이 책을 추천하지 않겠다. 다만, 현재의 경제 위기와 흐름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예측을 내놓고 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으로 이 사람의 글을 선택한다면 교양정도로만 활용할 것을 권한다. 물론, 케빈 필립스의 독특한 주장방식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야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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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 딸과 함께 읽는 미셸 오바마 이야기
데이비드 콜버트 지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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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부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저만의 스타일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 낼 거예요.
저의 꿈과 희망을 바탕으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고, 부담도 되고 불확실한 점도 있을 거예요."
                - 부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의 본문(p187) 중에서.

 
   생각나는 대로 솔직하게 말하고, 그것이 그녀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미셸, 그녀 다운 말이다.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의 신화를 만들어낸 그들 미국인조차  그녀가 자신의 방식을 잃지 않기를, 수많은 정치인이나 배후자들이 보여 주었던 모습처럼 변하지 않고 그녀가 퍼스트레이디이건, 한 사람의 아내와 어머니이건, 희망으로 가득한 세상을 위해서 자신을 헌신하려고 하는 자원봉사자이건 사회운동가이건, 그녀가 어떤 자리에 있건 그녀의 본모습이 변하게 하지 않기를 원할 것이다. 그들 미국인들이 사랑한 것은 그녀가 퍼스트레이디였기 때문이 아니라, 미셸 오바마였기 때문이다. 그녀이기에 다르기를 희망할 것이다. 

   <딸과 함께 읽는 미셸 오바마 이야기>라는 부제가 좋았다. 하지만, 딸 보다는 어머니가, 어머니보다는 여성이 읽으면 더 좋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쉽게 말할 수없는 것들이 있고, 이야기하므로써 더 불편해지는 주제들도 있다. 미국이란 사회가 자신들의 내부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잘못된 역사들을 정치 한가운데로 끌고 나왔고, 그들 스스로 이젠 적절한 중재가 필요하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오바마와 미셸은 주목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들 역사나 정치, 사회의 불합리한 것들이 얼마나 크고 많더라도, 이번 선거는 용기있는 선택이였다. 서로 낯뜨거워지고 불편해지더라도 문제를 표면으로 끌어냈고, 가장 적절한 중재자들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는 이런 불평등과 불합리가 없을까. 없기 때문에 태연히 그들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일까. 물론, 그들만의 문제도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역사와 문화가 그런 불평등을 생산해냈고, 우리 중 대부분은 그것들을 묵인하거나 방관함으로써 동조하거나 무관심했다.  

   이 책의 대부분은 미셸이라는 인물보다, 그 인물이 있기까지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다. "저는 노예와 노예의 주인의 혈통을 모두 받고 태어난 흑인 여성과 결혼했습니다."라던 버락 오바마의 연설의 한 부분처럼, 그녀는 당당하기 어렵거나 불편한 배경을 가졌지만, '진실은 과거에 있다.'며 일축한다. 그리고 그 불편한 과거에서 미국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힘을 이끌어 낸다. 오늘의 미셸을 만들고 다듬고 완성시킨 그녀의 가족사, 그리고 그녀의 과거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의 내용이 그녀의 전기 담당관이나 그와 관련한 조사에서 이루어진 자료들을 토대로 짐작하고 예측하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지만, 실제로 그녀와의 인터뷰나 그녀의 생각을 자주 만날 수는 없다. 그점은 아쉽다. 이 책은 그녀를 충분히 알기에 부족하다. 오히려 갈증을 불러온다. 그녀보다는 그녀의 가족사나 배경, 그녀의 성장과정에 초점을 맞추어서 독자로 하여금, '나는 어떻게 자녀를 가르칠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단다. 그게 현실이야.
보상을 받을 만큼 충분히 노력했더라도 항상 좋은 결과가 따르는 건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얻고 싶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해.
가끔은 노력해도 원하는 걸 얻지 못할 때도 있어.
열심히 노력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는데도 얻지 못할 때가 있단다. 
                  - 부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의 본문(p37) 중에서.
 
선생님을 존경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질문하기를 주저하지 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하는 말을 듣고만 있지 말고, 왜냐고 이유를 물어보렴.
                 - 부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의 본문(p35) 중에서.
 

   미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녀의 남매에게 자주 당부했던 말이다. 그녀의 부모는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역사의 희생자였고, 거주의 자유도 없었고 가난했으며 교육을 충분히 받지는 못했다. 평생 장애인으로 불편하게 살아야 했던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책임감을 느끼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두 남매가 언제 자신에게 닥칠지 모를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도록 하라고 말했다. 그녀의 부모는 정치를 믿지 않았고, 국가가 책임지고 교육을 시켜주라는 것도 믿지 않았다. 그 힘들고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미래의 환상만을 심어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달랐던 것 같다. 어린 자식들에게 냉엄한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지만 실망하고 좌절하더라도 포기하는 비겁함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또한 경제적인 가난이 정신의 가난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쳤다. 누구 앞에서라도 당당하라는 것, 그것이 내 아이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일지라도 그 앞에서 당당할 것을 당부했다. 행동만이 아니라 생각과 주장도 당당하라고 가르쳤다. 

   이 시대의 평범한 부모들은 우리의 삶이 자녀들에게 되물림될 것을 두려워한다. 부모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배경이 곧 교육의 질로, 자녀들의 성공 여부로 이어질까 두려워한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경제력이나 사회적 배경을 탕으로 한, 남들보다 좀더 유리한 기회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가 먼저 깨어있고 긍정적이며, 어떠한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않을만큼 용기있다면, 그 자녀들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말을 인용하기로 한다. 이 땅의 곳곳에서도 이 땅의 수많은 아이들이 이 아름다운 말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이 땅의 어느 어머니가 어느 선생님이, 어느 정치가나 퍼스트레이디가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해 이 말을 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 너희들이 꿈꾸고 열심히 노력하는 한, 너희들의 성취에는 한계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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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 : 원시를 향한 순수한 열망 ㅣ 마로니에북스 Art Book 15
가브리엘레 크레팔디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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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로니에북스 <ArtBook 고갱>

 

 

폴 고갱은 언어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학업성적도 좋지 않았다. 1865년 그는 선원이 되어 배를 탔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후견인의 주선으로 베르탱 증권중개소에 취직했다.
처음에는 아로사의 딸 마그리트에게 그림을 배웠다. 

<예나 다리가 보이는 센 강>을 그릴 즈음 고갱에게 그림은 소일거리에 불과했다.
그 누구도 이것이 고갱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 마로니에북스 < ArtBook 고갱 >의 본문(p8~14) 중에서.

  

   운명의 나침반을 움직이는 데는, 한 순간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기 보다, 자신의 내면이 이끌었던 그 길의 끝에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고갱의 삶이 순탄했던 것도 아니였으며, 그의 그림이 운명이 되리라는 것은 그도 알지 못한 일이였다. 아니, 어쩌면 화가로서의 그의 삶은 그가 꿈꾸던 이상적인 삶이 아니라, 고독하고 슬프고 힘겨운 순간들의 연속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세상에 없는 그를 두고 우리는 많은 것들을 짐작하고 예측하고 또 증명하려고 애쓴다. 그가 세상에 남긴 수많은 작품들을 두고 우리는 아직도 의미를 찾아내고 재해석하고, 그의 세계를 탐험하려고 한다.
 
   전체적인 내용을 정리하면, 고갱의 예술가적 삶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개인적인 삶을 중심으로 미술사의 큰 틀에서의 시대적 흐름을 풀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고갱과 여러 인연으로 얽혔던 수많은 사람들의 관계나 일화들을 그들의 영향력에 비례해서 다루는데, 이들 중에는 고갱의 가족과 연인들, 후견인과 미술상이나 미술애호가들, 그의 스승과 지지자, 제자들, 동료들이 있으며 그중에 빈센트 반 고흐의 형제도 있다. 전생애에 걸친 고갱의 작품들이 시대별, 예술사적 의미에 따라 정리되어 있으며, 작품을 제작할 당시의 그의 심정이나 상황을 나타내주는 자료들과 작품속의 여러 기법들을 분석하고 이후의 작품 속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문득 <소통>의 문제를 떠올렸다. 세상의 따가운 시선과 냉렬한 외면 속에서도 그는 말하고 싶어했다. 자신의 색과 상징과 의미에 대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했다. 그의 자유로움과 원시적인 아름다움들은 당시의 비평가나 미술애호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거나 난해하다며 거부당하기 쉬웠지만 그래도 그는 꿈꾸었던 것 같다. 퐁타방과 나비파 화가들과의 신비롭고 뜨거웠던 교류처럼, 언젠가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과 동료들과 교류가 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그들처럼 밤을 지새우며 열띤 토론을 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자극하고 성장시켰던 그 경험들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는 외로웠다. 그의 생애와 그의 그림들이 인상주의에서 상징주의와 추상주의를 거쳐가는 동안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의 프랑스가 정치와 경제, 국제상황들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때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도 프랑스를 외면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그의 영혼은 끊임없이 원시림의 주는 예술적 자극들을 스스로 야만적인 삶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그의 그림은 온통 원시림과 원시적인 것들을 고스란히 담아보고 싶어 했고, 지키고 싶어했다. 그 자유롭고 충만한 색 위에 인간의 감성과 영적인 것들을 담아 보고 싶어 했다. 그것이 끊임없이 자신을 외롭게 가두고, 예술로서도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시키는 일임을 그는 몰랐을까. 그 고집스러운 열정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무엇이 그를 그토록 색과 원시림과 인간 내면의 영적인 것들에 몰입하게 했을까. 

    1888년 5월. 빈센트 반 고흐와 고갱은 9개월 동안 함께 살면서 그들의 예술 세계에 몰입한다. 이들은 거의 하루종일 야외에서 드로잉과 그림에 몰두했고, 저녁이 되면 서로 작품을 비교하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예술적인 지지자며 동료였지만, 그들의 성격은 그리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고갱을 떠나보낸 그날 밤, 반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귓불을 잘라 창녀 라셸에게 주었다. 고갱이 떠난 후에 정신적 건강이 악화되어 치료를 받던 반 고흐도 자살하기 전까지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약 8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 반 고흐에게 고갱은 어떤 친구였을까. 가족을 두고 원시림 속으로 끊임없이 숨어들어 작품에만 몰두했던 고갱에게 반 고흐는 어떤 의미였을까.     

   이젠 그를 만나려면 그의 작품 앞에 서야 한다. 이제는 그와 소통을 원한다고 해도, 그는 말이 없다. 그에 대해 많은 부분들을 짐작할 뿐이고, 그래서 더 신비로움과 안타까움들만이 남겨질 뿐이다. 그가 그렸던 몇 장의 초상화들이 머릿속에 여운을 남기고 스쳐간다. 때로는 평화로움이, 때로는 용광로 불꽃의 색조로 예술가로서의 영혼을 담고있던 눈빛과 고독과 좌절로 가득하던 공허한 눈빛도, 끝내는 죽음을 예감하는 듯한 그의 마지막 몇 작품들까지 떠올려 본다. 그의 생각과 고통과 고독이 그의 삶이였듯이, 그의 삶이 그가 세상에 남긴 진짜 작품은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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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구글러가 세상에 던지는 열정력 - 대한민국 청춘에게 바치는 희망보고서, 열정력 ㅣ 힘내라 청춘아! 2
김태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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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북스 <젊은 구글러가 세상에 던지는 열정력> 

 

 

저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이 멈췄다면 제 삶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을테죠.
'불공평하지만 내가 극복할 수 있을 만큼만 불공평하다.'는 것이 제가 불공평을 마주하는 방법입니다. 

가능성은 충분히 그 불공평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경쟁도 도전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불공평은 우리가 극복할 수 있을 만큼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야 제게 닥친 불공평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열정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 <젊은 구글러가 세상에 던지는 열정력>의 본문(p 49) 중에서.
 

 

    글은 그 사람의 마음이고 얼굴이라는 말을 믿는다. 때로는 화려한 경력으로만 치장된 교만한 글을 만나고, 또 때로는 핵심 하나를 말하려고 수많은 수식어들 속에 둘러싸인 공허한 글을 만나거나 너무 쉽게 쓰여져 포장만 그럴듯한 글을 만나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책들과 그 책속에서 만나는 말과 생각들이 내게 늘 신선하거나 반갑지는 않다. 비슷한 생각, 비슷한 말들에 나는 가끔 권태로워진다. 

   그의 생각과 말은 신선했다. 같은 뜻이여도 같은 말이여도, 그의 말은 세상의 권태로운 언어들과는 달랐다. 그를 성장시켜온 아픔과 절망과 땀이 있었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그는 머리보다 발로 생각하고 사람들속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배우고 느끼려고 노력했고,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생각과 가슴이 열려있는 사람이였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겸손한 뜨거움을 만난다. 행동하는 열정을 만난다.
  

제가 어떤 선택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이 최적의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제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계속 미련을 가지고 계산기를 두드리기보다는 그 시간에 그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 되도록 행동합니다. 

최선의 선택은 '자신이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 능력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 <젊은 구글러가 세상에 던지는 열정력>의 본문(p 122) 중에서.

   

   누구나 자신의 삶에 책임져야 한다. 그 책임을 회피하고 싶을 때, 우리는 여러가지 변명들을 떠올린다. 내가 그것을 할 수 없었던 이유들을 떠올리며, 끝끝내 할 수 없었던 상황들을 합리화시키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 그러나, 세상을 모두 속인다 하더라도, 도망치듯 빠져 나왔던 그 두려웠던 순간들을, 진실로 용기있는 선택은 아니였음을 자신에게만큼은 고백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서 실패한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희미해지지만,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더 후회하게 된다.'는 어느 심리학 교수의 말처럼 충분히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혹은 두려워서 회피해 버린 경험들은 우리 기억속에 흉터로 남을지도 모른다. 비겁함과 불성실의 흉터.    

   그는 실패할 줄 아는 사람이였다. 적어도 실패가 두려워 선택조차 못하는 비겁한 사람은 아니였다. 그는 평범했다. 자신을 삼켜버릴 것만 같은 긴장감과 실패를 두려워하는 평범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 아찔한 순간을 자신이 뒤돌아서 빠져 나와야 하는 선택의 순간이 아니라, 기회라고 말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다면, 그것은 주로 기회가 왔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의 삶에서 실패하지 않았던 순간을 가장 부끄럽고 안타까운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나는 실패의 반대말이 성공이라고 믿지만, 그는 실패의 반대말이 도전하지 않은 삶이라고 말한다. 실패는 나쁜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며 편견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 한계를 정하는 사람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한다. 무엇인가에 도전하다 보면 실패도 하게 되고, 실패하는 그 지점이 한계라는 생각도 들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능성에는 한계가 없다고 말한다. 보통의 경우, 실패를 경험한 경우 목표를 이전보다 낮춘다. 성공확률을 높이겠다는 의도지만, 오히려 목표를 이전보다 높게 설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실패는 경험이고, 우리는 이미 그것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능성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없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다. 이미 한계를 가졌다고 믿고 있는데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렇게 작을 수 있을까요?
제가 품고 있는 세상의 크기가 겨우 점 하나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넓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제 자신도 점 하나 크기로 작아졌습니다.
부끄러웠지만 기뻤습니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노력하면 그 세상은 계속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 <젊은 구글러가 세상에 던지는 열정력>의 본문(p 127) 중에서.

 

   그는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다. 그림을 보고, 광고를 보거나 사람을 만날 때도, 그의 생각과 느낌들이 그들을 향해 열려있기를 원하고 또 노력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열정이라는 말만으로는 모자랄만큼 열심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그들을 모두 기억하건 기억하지 않건 그들은 자신의 모든 순간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며, 그들의 삶과 삶에 대한 자세로 희망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그 아름다운 사람들 가운데, 김태원이라는 젊은 남자가 있다. 그들 속에서 김태원은 함께 공감하고, 서로에게 감사하고 격려하며 존중한다. 그의 말처럼 평범한 두뇌와 배경을 가진 그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열정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살아온 삶이 얼마나 성공했는지, 무엇을 이루어냈는지도 아니고, 그의 경력 때문도 아니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듣고 싶은 것은 그런 배경이 아니라, 그가 진심으로 무엇을 말하느냐 이다. 누군가 지금 나처럼 그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면 그의 삶이 성공할 수 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그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며, 그가 진심으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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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울 엄마 ㅣ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는 동화
임사라 지음, 박현주 그림 / 나무생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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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나무 <동갑내기 울엄마>

 

 

"할머니도 엄마가 보고 싶어요?"
할머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하셨어요.
왠지 은비의 코끝이 새큼새큼해졌어요. 

은비야, 은비는 일곱 살이지?
네 엄마도 은비 엄마가 된 지 일곱 살이란다.
'엄마 나이'로 겨우 일곱 살이니 모르는 것도 많고, 힘든 일도 많을 거야.
                        - <동갑내기 울엄마>의 본문(p 13)중에서.

  

   동갑내기란 말이 사뭇 궁금하면서도 의아했었다. 딸과 엄마를 왜, 어떻게 동갑내기라고 표현했을까.
그런데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면서,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핑돌아 자꾸만 목소리가 흔들렸다. 참으
려고 애를 써도 나도 모르게 호흡을 고르기 힘들어지고 목소리가 흔들리고 가슴 한구석이 아파왔다. 동
화 속에서의 할머니의 말씀에 나는 나조차도 잊고 살았던 내 나이들을 떠올렸다. 내가 엄마의 딸로는 몇
살이고, 내 남편의 아내가 된지는 몇 살이고, 내 아이들의 엄마가 된지는 몇 살일까를 꼽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늘 당연히 잘 해야만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었나 보다. 결혼을 했으니 그럴듯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잘 해내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믿었고, 내가 아이를 낳았으니 엄마로서 그만큼 잘 해
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살았나보다. 누가 내게 강요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 스스로의 믿음이
나 요구가 때로 나를 얼마나 외롭게 하고 힘들게 하든 상관없이 나는 열심히 내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
고 믿으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은비에게 말씀하시는 할머니는 마치, 내게 내가 무얼하든, 어떻게
하든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다. 때때로 내가 얼마나 어설프고, 잘 몰라서 실수하고 잘못하는 일
이 생겨도 그건 당연하다고 등을 두드려 주시는 것만 같다. 때때로 내가 얼마나 울었든, 어떤 생각을
했든 얼마나 힘들어 했든 모두 위로하고 이해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상에 그 누구도 내게 해주
지 않았던 위로와 위안들을 할머니를 통해서 얻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가슴을 누르고
있던 것들을 살며시 내려 놓아도 좋을 것만 같았다. 아이를 위한 동화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동화를
읽어주던 내게 위안을 주었다.
 

      


    이 동화는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어야 할 이야기다. 딸이 엄마와, 딸이 할머니와 읽으면 더 좋을 동화. 
아니, 아빠라도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엄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상관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동화만큼은 적절한 연령이라는 말도 잠시 잊어버리고 싶다. 어
른들이 즐겨 읽는 시처럼, 간직하고 싶은 감동적인 몇 구절의 글처럼 동화는 누구의 가슴에든 이해와 배
려와 감동의 씨앗으로 자리잡아 두고 두고 그 힘으로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동화이기 때문이다. 글자 수에도 구애받을 필요가 없으며, 누구나 한번쯤 겪을 수 있는 소재라
소재의 어렵고 쉬울지도 구분지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읽는 아이가 30개월쯤의 어린아이여도 좋고,  주
인공 은비처럼 일곱살이여도 좋을 것 같다. 때로는 그보다 더 높은 연령이여도 좋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소중한 가족이 함께 읽고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고 배려하고, 아끼고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내 엄마의 딸이였고, 내게도 내 몸보다 더 소중한 딸이 있다. 그 딸에게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때로 내 사랑이 부족하거나 서툴더라도 그 정성이나 마음에는 변함이 없음을 이 동화보다 더 잘 말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이 세상의 많은 어머니가 모두 사랑하고 아파하고 대견해하지만 한편으로 안
쓰러운 마음으로 딸을 키우는 그 마음을 이 동화보다 더 잘 말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언젠가
는 곱게 예쁘게 자라서 나처럼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될 내 딸에게 들려주고, 언젠가는 내 딸의 딸에게
내 딸의 손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 나는 이 동화가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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