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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돈
케빈 필립스 지음, 이건 옮김 / 다산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클린터의 고문 로버트 루빈을 포함한 금융 부문의 지지자들은
금융이 미국을 새로운 후기산업사회로 이끌 것이며, 과거에 제조업이 몰락하는 농업을 대신했듯이
수익성 높은 금융을 포함해서 서비스 산업이 제조업을 대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은 세계의 발전을 이끄는 거대한 원동력이라는 말이었다.
천년왕국신앙에 사로잡힌 미국은 이제 앞장서기 시작했다.
회의론자들은 이런 생각이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고 경고했다.
금융에 대한 이런 생각은 낡은 것이며, 앞서간 세계 경제패권국들을 몰락시킨 망상이라고 주장했다.
- 다산북스의 <나쁜돈>의 본문(p 272) 중에서.
케빈 필립스는 2007년에서 2008년에 걸쳐 다시 불어닥친 경제의 칼바람은 앞으로 더 큰 위기를 예고하는 하나의 신호로 간주하고 있고, 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원인을 밝히고 싶어 한다. 물론 나는 '원인'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케빈 필립스의 거친 입담은 '주범'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는 무엇이든 적당히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의 글을 읽는 내내, 그는 숨고르기조차 어려워 보일만큼 빠른 호흡으로 많은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적당히 순화된 말들은 잊어버린 사람처럼 공격적인 어투와 단어들을 섞어 쓰며, 이 글 이전에 자신이 썼던 책과, 자신의 주장들을 들먹이며 정말 끊임없이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활자 정보의 특징이 양방향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보고 듣는 사람의 동조조차 기다릴 여유가 없어 보이는 그는 글들은 긴박하고 초조하며 공격적으로만 보인다. 아마, 케빈 필립스가 지금 당장 내 앞에 있다고 해도 그는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나도 둘러 말하지 않고, 케빈 필립스의 방식으로 말한다면 나는 그가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주장은 하되 충분한 근거들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가 제시하는 근거들은 대부분 정확한 연구나 조사 이후의 결과들도 아니며, 공식적으로 채택한 문서들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글들을 읽다보면 그의 주장이나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은 자신의 또다른 책과 주장들에서 이미 제시한 내용이거나, 누군가가 했었던 말이거나 어디선가 본 내용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더구나 매일 경제정보를 두고 골몰하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의 출처가 모든 사람이 믿고 인정할 만한 공신력있는 정보가 아닌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신뢰하지 않는다. 또한, 감정적이거나 자신의 생각과 말을 잘 조율할 수 없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결론들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의 모든 주장을 반박하거나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주장 모두를 있는 그대로 신뢰하지 않으며, 나는 케빈 필립스 또한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해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주장 가운데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
그는 미국의 현재 경제상황을 냉정하게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유가가 급등하고 피크 오일 이론이 확신을 얻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석유외교와 전쟁, 그리고 악화상황까지 모두 그리 새로울 내용도 놀랄 내용도 없다. 지금은 이미 오바마의 손으로 넘겨졌지만, 정치 권력을 누가 어떻게 얼마나 사용하느냐에 따라 경제의 역사도 관점도 전망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미 지난 부시정권에서 부터 미국 경제는 석유, 주택, 금융, 자동차 등의 많은 부분에서 위태로와 보이거나 불안정해 보였다. 이미 악화의 길로 들어선 미국 경제를 오바마 진영이 어떤 방향과 관점으로 어떻게 풀어나가고 재 점검할지는 앞으로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며, 수많은 길 중에 어느 길을 선택하고 그 여파가 어떻게 될지는 지켜보아야 알 일이며, 모든 것은 예측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케빈 필립스는 미국의 금융 부문의 팽창을 위험요소로 진단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전의 역사 속에서 세계 여러 경제패권국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역사속에서 사라져 갔는지를 근거로 들어 미국이 금융 부문의 비정상적인 성장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결국 미국은 불행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이 세계의 영원한 경제패권국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환상이며, 그 환성에서 되도록 빨리 깨어나지 못하면, 그 경제패권국으로서의 권좌를 아시아의 가장 유력한 중국에게로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고통스러워 한다. 그런데도 그런 그의 안타까움이 미국과 미국의 미래에 대한 애정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그의 전체적인 이 주장이 모두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주장의 많은 부분들이 케빈 필립스 그가 아니여도, 경제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오래전에 예측되고 전망되고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그의 주장 중에는 아직은 확언하기 어려운 많은 변수들을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적당히 부분적으로 사용하거나 편집한 흔적들이 보인다. 그래서 마치 그가 경제전문가로서 미국경제를 선두적인 입장에서 미리 진단하고, 경제 흐름을 간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판단일 것이라 생각된다. 경제흐름을 제대로 읽고 싶어서 전문적이고 신뢰있는 정보를 얻고 싶거나, 깊이있는 세계경제 흐름을 읽고 싶다면 나는 이 책을 추천하지 않겠다. 다만, 현재의 경제 위기와 흐름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예측을 내놓고 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으로 이 사람의 글을 선택한다면 교양정도로만 활용할 것을 권한다. 물론, 케빈 필립스의 독특한 주장방식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야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