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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 : 원시를 향한 순수한 열망 ㅣ 마로니에북스 Art Book 15
가브리엘레 크레팔디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3월
평점 :
- 마로니에북스 <ArtBook 고갱>
폴 고갱은 언어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학업성적도 좋지 않았다. 1865년 그는 선원이 되어 배를 탔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후견인의 주선으로 베르탱 증권중개소에 취직했다.
처음에는 아로사의 딸 마그리트에게 그림을 배웠다.
<예나 다리가 보이는 센 강>을 그릴 즈음 고갱에게 그림은 소일거리에 불과했다.
그 누구도 이것이 고갱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 마로니에북스 < ArtBook 고갱 >의 본문(p8~14) 중에서.
운명의 나침반을 움직이는 데는, 한 순간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기 보다, 자신의 내면이 이끌었던 그 길의 끝에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고갱의 삶이 순탄했던 것도 아니였으며, 그의 그림이 운명이 되리라는 것은 그도 알지 못한 일이였다. 아니, 어쩌면 화가로서의 그의 삶은 그가 꿈꾸던 이상적인 삶이 아니라, 고독하고 슬프고 힘겨운 순간들의 연속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세상에 없는 그를 두고 우리는 많은 것들을 짐작하고 예측하고 또 증명하려고 애쓴다. 그가 세상에 남긴 수많은 작품들을 두고 우리는 아직도 의미를 찾아내고 재해석하고, 그의 세계를 탐험하려고 한다.
전체적인 내용을 정리하면, 고갱의 예술가적 삶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개인적인 삶을 중심으로 미술사의 큰 틀에서의 시대적 흐름을 풀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고갱과 여러 인연으로 얽혔던 수많은 사람들의 관계나 일화들을 그들의 영향력에 비례해서 다루는데, 이들 중에는 고갱의 가족과 연인들, 후견인과 미술상이나 미술애호가들, 그의 스승과 지지자, 제자들, 동료들이 있으며 그중에 빈센트 반 고흐의 형제도 있다. 전생애에 걸친 고갱의 작품들이 시대별, 예술사적 의미에 따라 정리되어 있으며, 작품을 제작할 당시의 그의 심정이나 상황을 나타내주는 자료들과 작품속의 여러 기법들을 분석하고 이후의 작품 속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문득 <소통>의 문제를 떠올렸다. 세상의 따가운 시선과 냉렬한 외면 속에서도 그는 말하고 싶어했다. 자신의 색과 상징과 의미에 대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했다. 그의 자유로움과 원시적인 아름다움들은 당시의 비평가나 미술애호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거나 난해하다며 거부당하기 쉬웠지만 그래도 그는 꿈꾸었던 것 같다. 퐁타방과 나비파 화가들과의 신비롭고 뜨거웠던 교류처럼, 언젠가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과 동료들과 교류가 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그들처럼 밤을 지새우며 열띤 토론을 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자극하고 성장시켰던 그 경험들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는 외로웠다. 그의 생애와 그의 그림들이 인상주의에서 상징주의와 추상주의를 거쳐가는 동안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의 프랑스가 정치와 경제, 국제상황들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때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도 프랑스를 외면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그의 영혼은 끊임없이 원시림의 주는 예술적 자극들을 스스로 야만적인 삶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그의 그림은 온통 원시림과 원시적인 것들을 고스란히 담아보고 싶어 했고, 지키고 싶어했다. 그 자유롭고 충만한 색 위에 인간의 감성과 영적인 것들을 담아 보고 싶어 했다. 그것이 끊임없이 자신을 외롭게 가두고, 예술로서도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시키는 일임을 그는 몰랐을까. 그 고집스러운 열정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무엇이 그를 그토록 색과 원시림과 인간 내면의 영적인 것들에 몰입하게 했을까.
1888년 5월. 빈센트 반 고흐와 고갱은 9개월 동안 함께 살면서 그들의 예술 세계에 몰입한다. 이들은 거의 하루종일 야외에서 드로잉과 그림에 몰두했고, 저녁이 되면 서로 작품을 비교하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예술적인 지지자며 동료였지만, 그들의 성격은 그리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고갱을 떠나보낸 그날 밤, 반 고흐는 자신의 왼쪽 귓불을 잘라 창녀 라셸에게 주었다. 고갱이 떠난 후에 정신적 건강이 악화되어 치료를 받던 반 고흐도 자살하기 전까지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약 8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 반 고흐에게 고갱은 어떤 친구였을까. 가족을 두고 원시림 속으로 끊임없이 숨어들어 작품에만 몰두했던 고갱에게 반 고흐는 어떤 의미였을까.
이젠 그를 만나려면 그의 작품 앞에 서야 한다. 이제는 그와 소통을 원한다고 해도, 그는 말이 없다. 그에 대해 많은 부분들을 짐작할 뿐이고, 그래서 더 신비로움과 안타까움들만이 남겨질 뿐이다. 그가 그렸던 몇 장의 초상화들이 머릿속에 여운을 남기고 스쳐간다. 때로는 평화로움이, 때로는 용광로 불꽃의 색조로 예술가로서의 영혼을 담고있던 눈빛과 고독과 좌절로 가득하던 공허한 눈빛도, 끝내는 죽음을 예감하는 듯한 그의 마지막 몇 작품들까지 떠올려 본다. 그의 생각과 고통과 고독이 그의 삶이였듯이, 그의 삶이 그가 세상에 남긴 진짜 작품은 아니였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