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역관인 김홍륙이 고종과 세자가 마시던 커피에 독약을 타 넣었던 실화를 모티브로 하여 한 편의 매력 있는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야기꾼 김탁환의 손에 의해서다. 김홍륙은 희대의 사기꾼인 이반으로 재탄생했지만, 여주인공 따냐는 오직 김탁환의 머리 속에서 나온 가공의 인물인 것으로 판단된다. 두 사기꾼이 러시아와 한국을 넘나들며 펼치는 사기 행각은 살인이라는 위험한 범죄와도 연결되어 있는 상당히 위험한 수준이았고, 그들의 사랑은 그런 만큼 위태롭기만 했다. '노서아 가비'는 러시안 커피라는 말이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이미 인기를 얻고 있는 바이지만, 조선 고종에게 커피를 올린 최초의 바리스타라는 설정은 특히 더 흥미롭다. 조선시대와 커피라는 안어울리는 듯한 의외의 설정 속에서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더 궁금증을 자아낸 것 같다. 게다가 따옴표 없이 간결하게 펼쳐진 문체도 그렇고, 각 장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컬러플한 일러스트도 오감을 일깨우는 커피만큼 감각적이다. 따냐, 경쾌하고 가벼운 줄로만 알았으나 의외로 마음의 중심 하나만큼은 굳건했던 여자다. 고종을 살리기 위해 이반을 발로 쳐내던 장면이 그리도 통쾌할 수가 없었다. 이국 땅에서 아이와 둘이 살아가는 생활은 고되기만 할 텐데. 그래도 따냐이기에 그런 생활도 바람처럼 가볍게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커피향 같은 깊은 그윽함도 그녀의 삶에 깃들어 있을 것 같고. 조선시대 아관파천 시기가 책의 배경이지만, 주인공들의 성격을 비롯한 책의 내용만큼은 현대적 느낌이 가득하다. 역사에 기반을 두었으되 정통 역사소설의 맛은 나지 않는다. 따라서, 역사소설의 진중함과 무거운 스케일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살짝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쌉싸름한 커피향이 감도는 퓨전 역사소설로, 오후의 한때를 즐겁게 보내게 해주는 책이라고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