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아닐 때 알게 되는 '나'

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아 - 참 나를 찾는 진정한 용기
파올라 마스트로콜라 지음, 윤수정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7월

지극히 동화적인 설정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트럭이 미끄러지면서 온갖 잡동사니들이 쏟아져 나와 나뒹굴 때, 때마침 갓 태어난 생명체인 오리가 그 충격으로 굴러가다 멈춘 곳은 바로 쓰레기통 앞이었다. 다행인 것은 쓰레기통 앞에 있던 쥐 모양의 슬리퍼 안으로 골인하게 되어 겨울의 추위를 그나마 막을 수 있었던 거다. 오리는 한잠 자고 난 후 가장 가깝게 있으면서 자신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슬리퍼를 엄마라고 생각한다. 눈을 떴을 때 옆에 있는 존재를 엄마라고 생각하는 아기의 본능처럼.

움직이지 않는 엄마때문에 침울한 오리 앞에 비버 한 마리가 나타나면서, 오리는 비버들이 사는 세상에 발을 들인다. 슬리퍼를 엄마라 하고 자신을 주변의 동물들과 동일시해 스스로 비버인 줄 알았던 오리는 박쥐마을에선 자신을 박쥐로 아는 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박쥐 마을을 나온 후에는 하늘 아래 편히 묵을 집이 필요하여 우여곡절 끝에 학과 플라밍고 부부의 집에 양녀로 들어간다. 오리를 귀찮아하던 부부는 내쫓으려 하지만, 그녀에게 멋진 오리 남자친구가 생긴 것을 알고는 입양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오리의 외면 꾸미기에 열중한다. 이 부부는 겉모습을 중시하는 상류층의 허위의식을 상징한다.
이후 잠깐 다녔던 학교에서 자신이 '오리'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오리 사회로의 입문을 시작했으나 돌아온 것은 남자친구의 배신이었다. 주변의 다른 오리들은 여전히 친구라고 말할 수 없는 사이였으니, 그토록 찾아헤메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오리라고 답변하도록 마음이 허락치 않는다.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오리가 하늘을 날던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미 자신이 오리인 걸 알아버린 상황에서 더이상 오리가 아닌 다른 동물로 자신을 규정지을 수 없었지만, 오리사회에서 배신당한 아픔때문에 자신을 오리라고 판단하기를 거부한다. 결국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그녀를 자유롭게 하여 몸이 떠올라 날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 하늘을 날며 바다의 아름다움에 빠진 오리는 근처에서 한때 잠깐 안면을 익혔던 늑대를 만나며 방황의 종지부를 찍는다. 

'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아'란 제목은 외부로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는 노력은 실패했지만 더이상 외부의 어떤 곳에 자신을 소속시키려는 마음을 버렸을 때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되며 자유를 얻는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런 주제를 풀어나가며 인간사회를 닮은 동물 사회를 등장시켜 동화풍의 이야기에 심오한 상징을 이곳저곳에 심어놓음으로써 인간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모든 등장인물과 설정이 무언가를 상징하고 있어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임에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주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