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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의 뜨개질 클럽
케이트 제이콥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대산출판사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둥그런 털실뭉치를 풀어가면서 바늘을 움직이면 일직선의 실이 일정하게 얽히며 자그마한 면적을 지닌 물체가 되어간다. 이 매력적인 과정이 바로 뜨개질이다.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짜릿함이 있다. 내 손이 마치 조물주가 된 것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 그건 생각보다 엄청난 활력을 준다.
이 책의 제목과 표지를 보면서 틀림없이 뜨개질같이 알콩달콩한 이야기와 실들의 얽힘처럼 뗄 수 없는 인간관계가 읽는 이를 즐겁게 해줄 거라고 생각했었다. 책을 덮으며 충족된 기대감의 만족과 함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조지아의 죽음이란 복병에 당황하긴 했어도.
싱글맘으로 워커 모녀 수예점을 운영하는 조지아 워커는 한코한코 뜨개질을 하듯 차분하게 자기 일을 해나가는 강한 여성이다. 애인 사이였던 흑인 제임스로부터 받은 상처를 극복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녀에게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다코타는 인생의 전부이다. 다코타는 사춘기에 돌입하면서 종종 반항심을 내비치기도 하지만 영리하고 똑부러진 소녀이다. 싱글맘의 힘든 처지에 있던 조지아에게 구세주처럼 나타난 애니타는 멀리 떨어져 사는 엄마를 대신하는 존재이며, 때로는 나이차 많이 나는 편안한 언니처럼 그녀의 인생에 많은 도움을 준다. 또한, 남편을 잃은 애니타에겐 조지아의 수예점이 삶의 활력을 주는 장소가 된다.
어느 날인가부터 워커 모녀 수예점의 금요일 저녁은 다양한 사연을 지닌 여성들의 뜨개질 친목 모임으로 분주하다. 수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가방 디자이너로서의 큰 포부를 갖고 있는 페리와 조지아의 옛 직장 동료였던 K.C, 싱글맘의 길을 선택한 루시, 현대사회에서 뜨개질에 열중하는 여성들을 연구하려는 의도에서 왔다가 점차 뜨개질에 빠져드는 다윈이 합류한 금요 뜨개질 클럽은 다코타의 쿠키와 대화와 뜨개질로 함박 채워지는 즐거운 시간이 된다.
이 무렵, 조지아에게 뜻밖의 인물이 찾아온다. 임신 상태의 그녀를 버렸던 제임스가 뒤늦게 아이 아빠임을 주장하며 다코타를 찾아와 조지아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의 단짝친구였으나, 같은 학교를 가자는 약속을 배신하고 조지아가 포기한 대학교의 빈 자리를 꿰어차고 들어간 캣이 유한마담과 같은 모습으로 그녀 앞에 나타나서는 까다로운 취향을 내보이며 손으로 만든 수제 드레스를 주문한다. 현명한 애니타가 아니었다면 캣의 의도가 조지아 옆에 있고 싶어서란 걸 몰랐을지도 모른다. 이후로 펼쳐지는 잔잔한 사건과 사고, 서로를 감싸안는 따뜻한 모습은 두꺼운 책의 두께가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었다.
이 책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뉴욕 맨해튼의 바쁜 일상 속에 자리잡은 작은 수예점에 털실을 사러 온 손님으로, 점원으로, 주인의 친구로 왔다가 그들은 서서히 마음을 열고 우정을 나눈다. 우정보다도 진한 관계로 뭉쳐진 그들은 암에 걸린 조지아를 위해 모두가 하나씩 뜬 아플리케들을 이어 아프간 담요를 만들어 선물하기도 한다.
늦었지만 제임스가 조지아에게로 돌아와 다코타와 함께 오붓한 가정을 꾸미는 모습이 좋았다. 조지아의 죽음으로 가정의 완성단계에까진 이르지 못했지만, 상처를 준 대상이 항상 상처만을 주는 악인은 아니며 때론 상처 치유의 명약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직장에서 가장 힘든 것이 일이 아닌 인간관계라고 한다. 관계는 사람을 지치게도 하고 사람이 싫어지게도 만든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 삶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하는 것도 없다. 인생이란 관계의 형성 과정 속에 전개된다. 그러고 보면 꽉 막혀 있는 인생은 없나보다. 결국 한쪽이 터지면서 나갈 길을 찾아가기 마련이니까. 그 길은 어디로 통해 있을까? 우리는 모른다. 다만 최선을 다하는 삶의 길에서는 얻고 싶은 걸 얻게 된다는 것 외에는.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잔잔한 휴먼 드라마가 나올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