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자화상
제프리 아처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한마디로 재미있다. 거인도 못당하는 졸음이 아니었더라면 밤새면서 읽고 싶을 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반 고흐 자화상을 둘러싼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책의 설명이 의미하듯이, 이 책에서는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을 손에 넣으려는 은행가와 그를 저지하는 미술품 감정사 안나와의 팽팽한 머리 싸움과 쫓고 쫓기는 활약상이 벌어진다. 

묘하게도 그들이 일하던 건물은 9.11 테러로 폭파된 세계무역센터 빌딩이었다. 아슬아슬한 시간 차이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 순간의 목숨은 구했으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매캐한 연기 속에서 83층을 걸어내려가며 안나가 겪었던 상황 묘사가 과거의 참상을 되새기게 했다. 내려가던 사람들과 반대로 땀을 비처럼 흘리며 올라가던 소방관들, 그리고 불에 타는 고통보다 창 밖으로 떨어지는 편을 택했던 고층 사람들의 얘기가 책 속에서도 그대로 나온다. 거의 잊혀져가던 당시의 장면들이 오버랩되면서 단순한 흥미 위주의 소설을 읽는 기분에서 벗어나 잠시 숙연해지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 하에서 돈세탁을 담당했던 펜스턴은 미국으로 건너와 은행가로 성공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그의 뒷면에는 자신이 원하는 미술품을 얻기 위해 살인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냉혈한의 모습이 감춰져 있다.  전직 체조선수 출신의 갸날픈 몸매에 새된 목소리를 지닌 크란츠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부엌칼로 목을 베는 것이 주특기인 잔인한 킬러로서 펜스턴의 왼팔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한다.

복잡한 전개 과정 속에서도 모든 사건의 귀결은 가지런히 일치한다. 배달된 잘린 귀에 매달려 있던 다이아몬드 귀걸이는 후에 펜스턴의 죄상을 드러낼 주요 증거가 된다. 또한, 안나가 루마니아에서 예전 남자친구이자 현재의 교수인 안톤을 만난 것도 사건의 중요한 전개 과정, 즉 위조된 그림의 생성이란 점에서 없어서는 안될 장면이었다. 더 파고 들면 오점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제프리 아처란 작가는 매우 짜임새있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프란츠가 병원에서 탈출할 때의 세밀한 묘사나, 배신한 리프만의 행위를 목격한 펜스턴이 그를 궁지로 몰아가기 위해 하나씩 취하는 동작들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멀리 떨어진  화면을 바라보는 느낌보다 터치스크린으로 참여하며 보는 듯한 가까운 기분을 느끼게 했다.

또 하나의 멋진 선물은 안나 페트레스쿠라는 여성상이다. 펜스턴의 비서였던 티나가 펜스턴의 파멸을 바라며 위험을 무릅썼던 것은 복수심에서 출발한 것이었지만, 안나의 경우엔 좀 다르다. 펜스턴으로부터 해고를 당한 상황이라 이젠 더이상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먼 길도 마다하지 않으며 위험한 조직과 맞선 것이다.  이 부분 때문에 처음엔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았으나 멋진 여성상임엔 틀림없다. FBI의 잭 델라니가 반할 만한...

사족으로, 문학수첩에서 나온 책의 표지는 일본판 표지와 동일한데,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전달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영어판의 검은 표지가 더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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