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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기러기
폴 갤리코 지음, 김은영 옮김, 허달용 그림 / 풀빛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읽고 나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정을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그저 흰 기러기와 사람 사이의 우정 정도로만 생각하고 읽었는데, 잔잔한 물결에 충격이 가해진 듯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목에 힘을 주어야만 했다.
곱사등이에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러진 왼팔, 그리고 무서운 외모. 사람들은 필립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했을 뿐, 그의 마음속에 넓은 자연을 품을 만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마음은 모든 것을 해결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기란 힘이 들어 때로는 불가능해 보일 만큼 어렵다. 필립도 살아오면서 경험에서 깨달은 것이 있었는지 외진 곳에 있는 등대를 안식처로 삼아 그림을 그리고 새를 벗하며 살 뿐, 사람들의 접근을 피한다.
어느 날, 사냥꾼의 총에 맞은 기러기를 품에 안고 필립을 찾아온 소녀 프리다는 잔뜩 겁을 먹고 있었지만, 필립의 능숙한 치료솜씨에 안심하고 회복되어가는 기러기를 보러 등대에 발걸음을 하게 된다. 기러기가 여름을 보내러 먼 곳으로 떠나면 프리다의 발걸음도 끊어지고 다시 찾아오면 프리다의 방문도 잦아졌다. 흰기러기는 필립과 프리다의 사이의 매개체인 셈이었다.
필립의 사랑은 새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2차대전 중이었던 당시, 영국군이 덩케르크의 해변에서 독일군에 포위되어 생쥐처럼 갇혀 있을 때, 그들을 구하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떠난다. 필립을 따르던 흰 기러기도 배를 따라 호위하듯 따라간다.
필립의 착한 마음으로 미루어볼 때 영국 병사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야 충분히 이해되는 것이었지만, 기러기와 함께 고이 돌아와 이젠 아가씨가 된 프리다를 만나길 바랐던 나의 희망은 깨져 버렸다. 포탄이 작렬하는 적전지에서 살아돌아오리라 믿었던 것은 지나친 희망이었을까? 그가 죽은 뒤에도 뱃전을 맴돌며 함께 하던 기러기는 기뢰의 폭발로 배가 가라앉자 즐거운 추억이 가득한 등대로 되돌아와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날개짓을 한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프리다의 슬픈 마음은 기러기와 함께 등대를 휘감으며 날아오름을 느끼고 마음으로 들리는 필립의 목소리에 그녀 또한 사랑한다고 화답한다.
전쟁통에 등대마저 폭격을 맞아 부서진 후, 필립이란 한 사내가 새와 자연을 사랑했던 공간은 기억 속에 잊혀져만 간다.
세상으로부터 멸시를 받았지만 그의 주변에는 그의 사랑을 먹던 새들과 자연이 있었고, 우연히 그의 공간에 들어왔던 프리다도 점점 차고드는 사랑의 감정을 막을 수 없었다. 많은 인원의 목숨을 구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의 죽음은 죽음 이상의 신성함으로 주변인과 독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뒤에 나온 '작은 기적'이라는 이야기 역시 고아소년 페피노와 당나귀 비올레타와의 따뜻한 우정을 다루었다. 모나리자의 미소를 지닌 작은 당나귀 비올레타의 병을 낫게 하려는 소년의 강한 열망은 로마에 가서 교황님을 만나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을 만한 용기를 주었다. 성 프란시스의 무덤 앞에 비올레타를 데려가 기도를 올리면 비올레타의 예쁜 웃는 얼굴을 보고 병을 고쳐주시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아이의 천진한 믿음이 모든 불가능해보이던 일을 현실화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비올레타의 병이 나았는지의 결과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페피노의 사랑과 기적같은 교황의 편지까지 받아든 이상, 비올레타의 미소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페피노의 옆에서 한 소년이 청년으로 자라는 순간까지 함께 하지 않았을까?
'흰 기러기'로 슬퍼진 마음을 '작은 기적'으로 달래며, 너무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두 편의 소설을 쓴 작가 폴 갤리코를 계속해서 주목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