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 페니
제니퍼 L.홀름 지음, 이광일 옮김 / 지양어린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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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장소설이 좋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의 두려움은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면이불의 부드러움과 쏟아지는 잠, 그리고 여물지 않은 의식 덕분으로 비교적 뾰족한 생채기 없이 세월에 몸을 맡김으로써 해결이 되곤 한다. 그러나, 10대 시절에 겪는 자아의 발현과 세상에 대한 거부감과 반항심은 부쩍 자란 자존감만큼 생생하게 보이고 들려, 시간의 해결에 몸을 맡기고 있기엔 느껴지는 감도가 강하다. 몇 번의 눈물과 상처와 함께 무척이나 높은 계단을 한번에 오르는 성장감을 맛보며, 결국은 그시절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장소설은 성인이 되어 느끼는 감동과는 색깔이 다른 풋풋함의 정서가 있다. 

2차대전이 끝나고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시점이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다. 쉴새없이 일어나는 작은 사건이 마을 모두의 관심사가 되는 소박한 마을에서, 주인공 페니는 어머니와 외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동문서답을 하시지만 언제나 다정하시고, 외할머니의 요리 솜씨는 병원 음식보다도 끔찍하지만 직장에 다니는 엄마를 대신하여 사랑으로 돌봐주신다. 이탈리아 사람이었던 아빠는 페니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친가쪽에는 많은 친척들이 있어 이탈리아인 특유의 가족애와 활발함으로 아빠의 빈자리를 메꾸어 주신다. 돌아가신 아빠를 염두에 둔 탓에 모두들 페니를 진심어린 사랑으로 감싸준다. 페니는 사촌 프랭키와 항상 붙어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소아마비에 걸릴 것을 염려하는 엄마 때문에 페니는 수영장에도 극장에도 갈 수가 없다. 

책 속에서는 일가친척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바쁘게 펼쳐진다. 친할머니와 숙모와의 고부갈등 속에서 자칭 외교관 노릇을 하는 삼촌도 있고, 멀쩡한 집을 놔둔채 차 안에서 잠을 자며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또다른 삼촌도 있으며, 옷공장을 하는 삼촌은 언제나 페니의 옷을 챙겨주신다. 정육점을 운영하면서 인심좋게 퍼주기를 좋아하는 삼촌네 가게에서는 프랭키와 함께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어느 날, 페니에게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엄마가 우유배달원 아저씨가 데이트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키우던 강아지는 노환으로 병을 얻어 죽는다. 새아빠를 맞아들이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던 페니는 아저씨의 저녁 초대 자리에서 심술어린 행동을 한다.
사건은 연이어 계속된다. 할아버지의 집에 숨겨져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을 찾기 위해 지하실을 뒤지던 프랭키를 바라보며 빨래를 돌리고 있던 페니의 오른팔이 세탁기에 빨려들어가는 사고가 난다. 어깨의 신경 조직에 손상이 가서 자칫하면 한쪽 팔을 못쓰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한 병실에 있던 아이는 이틀 후 죽음을 맞는다. 우연히 아빠 죽음의 원인과 삼촌의 비밀까지 알게 된 페니는 세상을 좀더 넓게 감싸안게 된다.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가 미국의 적국이었기 때문에 시민권이 없던 60만 아탈리아인은 증명서를 소지하고 라디오, 카메라, 플래시와 같은 품목은 반납을 해야 했었다. 이당시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고, 포로수용소에 수감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알게 된 미국 근래의 어두운 역사의 일면이다. 전쟁의 어두운 면은 전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후방에서도 죄없는 죽음을 초래하여 한 가족과 일가친척을 슬프게 한다.
페니는 이 모든 것을 친척들의 사랑으로 헤쳐나간다. 오랜만에 친가와 외가가 모여 떠들썩한 저녁 자리에서 자신은 정말 운이 좋은 소녀라고 생각하며 미소짓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감성은 까마득한 과거로 되돌아가 페니와 같은 눈높이로 그 아이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때로는 페니의 엄마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아들이 죽은 뒤로 검은 옷만 입고 지하의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친할머니의 마음을 공유하기도 했다. 대화체가 많은 소설이어서 그런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자유로운 상상력이 펼쳐졌고, 소설 속에 폭 빠질 수 있었다.
따뜻한 햇살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며, 뉴베리영예도서 수상작이란 간판이 걸맞는 책이다.

이제 중학생이 되는 아이의 작은 방에는 책장이 두 개 있다. 큰 책장과 작은 책장에 책을 꽉 채우고 넘쳐 아이의 책은 거실의 책장 한켠을 점령해 온다. 좋은 자리의 책장 한칸을 자신의 책으로 채우며, 아이는 이 책도 역시 자기 칸에 꼽을 것이라 해서 나와 약간의 신경전을 벌였다. 웃으며 뺏기지 않으려고 투닥거리는 동안, 나는 괜한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당연히 아이 몫인 성장소설인데도, 주는 마음이 허전하다. 나의 10대 시절도 남몰래 이 책에 묻어두고 싶었던 마음 때문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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