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로즈
세르다르 오즈칸 지음, 유정화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터키의 작가가 쓴 소설은 처음 읽어보는 것 같다. 이야기 속에 터키의 지명이 나오고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 있는 것 외에는 특별히 터키적인 감성이 엿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인 '자아'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국적을 초월하는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하다. 무엇보다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가 철학적, 사색적이라 생각하는 기회를 부여한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다이애나에게 남긴 편지에는 '고유한' 존재인 쌍둥이 자매 메리를 찾아 나서라고 되어 있다. 처음 듣는 얘기에 혼란에 빠진 다이애나는 그동안 메리가 어머니에게 보냈던 네 통의 편지를 근거로 메리의 행방을 수소문해 나간다. 아직 어머니의 죽음을 모르는 메리의 충격을 덜어주려면 빠른 만남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편지 속에 있던 장소인 이스탄불로 떠난 다이애나는 그곳에서 메리에게 장미의 목소리 듣기를 가르쳐 준 제이냅 하님을 만난다. 역시 그녀로부터 장미의 말을 듣는 법을 배우려 시도하는데, 제이냅은 다이애나 안의 자아를 죽여야만 장미의 음성이 들리는 삶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며, 엄격한 수업을 진행해 나간다.

수업 중 장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다이애나를 대신해서 제이냅이 들려준 아르테미스 장미와 미리엄 장미의 대화 내용은 작가가 말하고 싶은 요점을 함축적으로 담아놓은 것 같다. 다른 장소에서 자라던 두 장미는 한 화분에서 만나 키워지며 뿌리가 엉켜진 채로 있다. 이제는 한 몸과 마찬가지이지만 생각하는 방식은 여전히 다르다.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이름을 딴 장미는 사람들의 찬미와 숭배를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의 집 한켠에 수줍게 피어있다 화분으로 오게 된 미리엄은 향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해하고 스스로 한 떨기의 장미임에 만족하며, 아르테미스에게 여신의 가면을 벗으라고 이야기한다.

다이애나가 찾아다녔던 쌍둥이 메리는 그녀 자신의 한 부분이었다. 껍데기를 버리고 깨달음을 얻은 자유로운 존재 메리와 만나게 하기 위해 어머니는 수수께끼같은 복선을 깔아두셨던 거다. 어머니가 마련해 놓은 과정을 거치며 다이애나는 타인이 요구했던 자아로 사는 삶을 버리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을 줄 아는 메리로 거듭나게 된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감정의 순환과정 없이 제자리에서는 얻기는 힘들었던 교훈이었기에 아깝지 않은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다이애나가 그림 그리던 청년 마티아스와 카페에서 나누던 긴 대화 또한 진지하고 사색적이다. 마티아스는 미래란 닿지 않은 과거라 여기기 때문에 오직 현재에 충실할 뿐이다. 어떤 일에서 주어진 행복감은 잠시일 뿐 다시 불안은 찾아오며, 알 수 없는 미래는 끝이 없으므로 전시회를 여는 것을 목표라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재 속에서 목표를 실현하고자 하는 그에게 그림 그리기야말로 삶의 목표가 된다. 

대화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의미깊어 깊이 사색하며 읽기에 알맞은 소설이다. 다이애나의 자아 찾기 여행을 함께 하며 책을 읽는 독자 역시 내면의 장미의 존재에 대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장미의 말을 알아듣진 못한다 해도, 현재 서있는 자리를 되돌아보고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사고의 시간을 갖게 된다.
주변에 장미꽃이 없어 향을 맡아볼 수 없음이 아쉽다. 장미가 흔해지는 계절이 되면, 이 책을 떠올리며 한번쯤 슬쩍 귀를 갖다댄 후 멋쩍게 웃는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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