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위키드'에 대해 갖고 있던 잘못된 정보는 오즈의 마법사 그 후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과 착한 마녀가 주인공인 줄 알았던 착각이었다. 최소한 '위키드' 1, 2권은 '오즈의 마법사' 시대보다 한참 전부터 시작하여 서쪽 마녀의 죽음으로 끝나는 결말을 함께 한다. 또한, 주인공은 도로시가 물을 부어 죽게 한 나쁜 서쪽마녀이다.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비틀어 놓으며,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녹색 피부의 엘파바를 정신없이 따라가며 '오즈의 마법사'를 까맣게 잊었을 때쯤인 2권의 중반에 와서야 이야기는 '오즈의 마법사'와 동일선상에서 진행된다. 그때서야 이 엘파바가 서쪽마녀임을 서서히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렇다. 왜 서쪽 마녀는 무조건 나쁘다고만 생각하고 죽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했을까? 매부리코에 검은 옷을 질질 끌며 다니는 사악한 할망구의 이미지는 어떻게 내 머리속에 심어져 있던 걸까, 혹은 내가 스스로 만들었던가? 이 책을 읽고 나선 섣부른 이미지 생성에 후회가 들었다.
녹색 피부에 뾰족한 이빨을 갖고 태어난 엘파바.
어머니는 어렸을 때 돌아가시고, 목사였던 아버지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팔이 없는 기형으로 태어난 여동생을 돌봐줘야 하는 부담까지 기꺼이 수행했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동생이 태어나면서 엘파바의 난폭함이 가라앉았다며 동생을 축복받은 아이라고 칭한다. 후에 동생에게만 직접 만든 장식을 단 구두를 선물하는 아버지에게 그녀가 느꼈던 소외감과 서운함은 기이한 피부색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일반적인 동물과 말하고 사고할 줄 아는 동물로 나뉘어져 있는 그들의 세상에서 엘파바는 동물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대우에 맞서 반체제의 길을 걷는다. 스스로 학교를 떠나 운둔하는 생활을 하다가 동창이었던 피예로와 만남을 갖고 잠시 안정을 찾았었지만, 그는 그녀가 하는 일이었던 비밀단체에 연루되어 죽음을 맞게 된다.
세상을 따스하게 바라볼 수 없었던 엘파바는 날이 선 태도를 보여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런 탓에 어두운 구석을 갖고 있으며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느끼지도 못한다. 그녀가 애착을 갖는 건 그녀처럼 소외된 동물들이다.
한편, 금발을 빛내며 우아하게 나타나 도로시에게 도움을 주던 착한 마녀 글린다의 이미지는 이 책에서 180도 선회된다. 자신의 외모와 집안배경에 자부심이 있던 그녀에게 룸메이트였던 엘파바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한참 떨어진 집안의 괴상망측한 소녀일 뿐이다. 결혼해서는 경제적 부를 모으는 데에 열성을 쏟는 이기적인 면도 보인다. 학창시절 잠깐동안 유지되었던 엘파바와의 우정은 그녀가 엘파바의 동생인 동쪽나라 마녀의 신발을 허락도 없이 도로시에게 주어버린 일을 계기로 금이 간다. 서쪽나라 마녀 엘파바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됐던 놀라움만큼 글린다에 대한 색다른 시각도 이 책의 묘미이다.
외로움으로 쓰러질 것 같던 자신을 곧추세우며 반항과 적의를 드러내던 엘파바의 모습에서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해 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지도 못하고 피예로의 처로부터 속시원히 용서를 받지도 못한 채 유난히 싫어하던 물바가지 세례로 죽음을 맞는 허탈함에, 이제 난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제대로 즐길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녹색 피부와 뾰족한 턱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순간, 아웃사이더로 살다 간 그녀 인생의 가련함이 연상되어서이다.
'오즈의 마법사'가 A의 관점에서 쓴 책이라면, '위키드'는 B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진실은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게 한다. 살다 보면 흔히 듣는 이랬다더라 하는 통신에 사건의 속내가 묻혀버린 일들이 세상엔 이말고도 많을 것이다.
문득, '헨절과 그레텔'에서 그레텔의 기지로 끓는 물에 빠져 죽은 나쁜 마녀도 우리에게 할 말이 많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마녀에게 마이크를 넘긴다면 이처럼 반대 시각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진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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