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른하고 의욕없던 오전, 쨍하니 밝은 겨울 햇살에게 뚱한 시선 외에는 건넬 수 없을 만큼 의기소침해 있을 때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집어들었다. 가끔씩 일어나는 불쾌함과 당황스러운 감정은, 평범함 이외에는 바라는 게 없는 내게 그것도 못해주는 '삶'이란 것에 대해 화를 내는 스트레스로 바뀌곤 한다. 그러나, 나를 구출해주기를 바라며 읽어 내려간 이 소설은 평범함이란 낱말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내 삶의 평범함과 마리암과 라일라의 삶의 평범함 사이에 있는 수많은 계단의 격차를 느끼며, 나의 삶이 그들에겐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자유로움일 수도 있다는 것에 가슴 깊이 미안함이 들었다.

커튼을 열어젖혀 햇살을 받아들인 후, 동물보다 약간 나은 삶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여성으로서 힘겹게 살아간 그들의 삶을 마주보았다. 이슬람 사회의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반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과 같았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인내하며 묵묵히 받아들이는 마리암의 삶과 쉴새없이 이어지는 전쟁으로 가까운 이들을 잃는 아픔이 일상이 되고 만 그들의 처지가 못내 가슴아팠다.

마리암
하라미(후레자식)로 태어난 그녀는 엄마와 함께 숲속의 외딴 집으로 내쳐져 살게 된다. 일주일에 한번씩 오는 아버지와 만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녀는 아버지에게로 쏠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몰래 그의 집을 찾아간다. 외면하는 아버지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고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자살한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하고 죄의식에 시달리는 마리암.
그녀를 아끼는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는 나이차이가 한참 나는 구두장이에게로 시집을 보내고, 그녀는 계속되는 유산과 남편의 폭력과 무시 앞에 인내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라일라
교육을 받은 영리한 소녀였지만, 전쟁의 포화로 인해 친한 친구들의 죽음을 겪고, 그도 모자라 순식간에 부모를 잃는 아픔을 겪게 된다. 첫사랑 상대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뱃속의 아이와 살아갈 길을 마련하기 위해 라시드의 두 번째 아내가 되는 길을 택한다. 아이의 아빠를 속이는 영악한 결정이기도 했으나, 모성애와 전쟁 앞에 지극히 현실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

그녀들의 우정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의 관계로 만난 마리암과 라일라는 초반의 적대적 관계에서 벗어나 마음과 영혼을 나누는 진실한 우정을 소유하게 된다. 마리암은 그녀가 누리고 싶어하던 가족애의 따뜻함을 라일라와 그녀의 딸 아지자로부터 느끼며 행복을 맛본다. 라일라는 말없이 인내하며 참는 꿋꿋한 마리암에게 존경을 느끼며 의지하게 된다.

마리암이 보여준 목숨을 내건 사랑
라일라는 거룩한 의식을 치루듯 마리암이 태어난 곳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마리암의 어린 시절과 만나는 경험을 한다. 두 영혼의 교감이 이루어낸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영원히 라일라의 마음 속에 살아있을 마리암임을 암시하는.
두 여인의 삶은 고되었지만, 그 정신은 아름다웠다. 라일라와 그녀의 남편 티라크는 마리암의 몫까지 의미있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안전한 타향을 버리고 다시 고향을 찾아 고아들을 위한 뜻깊은 일에 참여한다.

아프가니스탄이라고 하면 오랜 내전으로 난민들의 탈출이 뉴스거리가 되던 먼 나라라는 것 이외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아프간 출신의 소설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이 걸출한 작품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그곳 여성들의 구성진 삶에 고개가 숙여지도록 만든다.
너무도 생생한 그들의 이야기가 꼭 사실처럼 다가와, 한 사람의 머리에서 탄생되는 소설의 한계점을 이미 넘어버린 느낌이다. 그만큼 시야를 넓혀주는 문학의 힘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감히 올해 최고의 수작이라고 뽑고 싶을 만큼.

지금도 머리칼을 흔들며 장난스럽게 웃는 10대 시절의 타리크의 얼굴이 보인다. 긴 금발머리의 총명한 라일라와 수심이 가득한 긴 얼굴에 지혜가 반짝이는 마리암도 보인다.
뇌리 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들의 얼굴이 꿈틀대며 오늘의 아프간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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