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난에 찌들려 굶어죽지 않으려면 고향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면서, 복천영감은 자식 둘을 데리고 아내가 죽던 그 해 야반도주를 하였다.  그가 무작정 도착한 곳은 바로

큰아들 영수가 중학교 다니면서 쌀 4가마니 분량의 돈을 들고 가출하였다는 서울에 그도 온 것이다.

 

일제시대 - 청년이었던 그는 박진사의 소작농으로 열심히 일했고 뜻하지 않는 사건에 휘말려 5년간 일한 품삯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손 끝야무지고, 알뜰한 아내를 만나 겨우 자기 땅을 갖게 되고, 3명의 자식을 낳고 그런대로 살아보나 했으나, 아내는 병에 걸렸고 그 뒷바라지를 하느라 그동안 모은 논이며, 집도 팔아버리고 만다. 거기에 큰 빚까지 떠안게 되었고, 결국 그가 택한 건 이웃의 황소를 팔아 훔친 돈으로 야반도주를 하는 것밖에 없었다.

 

복천영감의 서울의 삶은 고되고 힘들고 피곤하다. 그리고 희망이 없어보인다.

공사장 인부 일을 하려다가도, 손수 나무를 사서 지게를 만들어 시장에서 배달장사를 해보려고해도, 자기 구역임을 내세우는 이들에게 그는 갖은 폭언과 폭력을 당하고 만다.

큰 돈들여 시작한 땅콩-리어카 장사도 전문털이들에게 잃어버리고 결국 그는  처음으로 징그럽고 몸서리치는 심한 몸살을 앓게되는데, 어찌됐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서울에서 자식들과 살아야 하니깐.

그리고 그가 다시 선택한 직업은 칼갈이다.

 

서울에 상경해서 기댈 곳, 의지할 사람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만난 고향 사람-떡 파는 아낙과 그의 가족들. 칼갈이를 하면서 알게 된 식모살이를 하는 처자, 그리고 복권을 파는 인숙이의 삶도 복천영감과 다를바 없다. 그들은 복천영감이 서울이라는 곳에서 만나는 아픔이자, 현실이자, 그리고 희망이다.

 

1974년 중편소설로 출간한 이 책은 2011년 장편으로 개작하였다고 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40여년 전 서울의 삶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더 잘 살기 위해 우리는 터전을 버리고 새로운 곳- 도시를 향해간다.

하지만 사람답게 사는 건 정답이 없는 듯.

복천영감이나 식모 처자처럼 고향에 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고향에 내려가기 겁나는 사람들도 존재하겠지.

 

가난한데는 이유가 있지. 부자가 되려면 물 한그릇에도 눈에 불을 켜야 하는 것이단다.

근디 그리 야박시럽고 모질게 해갖고 부자가 되면 어쩌자는 것이여. 사람이면 사람 짓을 하고 살아야 사람이제 라고 읊조리는 복천영감님의 말이 귀에 맴돈다.

근면과 성실을 내세워 열심히 묵묵히 살았던 그들

 하지만 뿌린대로 거둔다는 이치는 요즘 세태와는 맞지 않나보다.

남을 좀 더 짓밟고, 속이고, 뒷통수를 쳐야 내가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는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도 결국 그 자리를 맴도는 그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슨 미련이 남아서, 무슨 기대가 남아서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가 싶기도 하다.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들은 되도록 읽기를 꺼리고 있다.

그 고난과 아픔의 시간이 얼마나 방대하고 큰지 알기 때문이다. 과거를 교훈삼아 후손에게 그러한 아픔을 되돌려 주지 않는게 우리 기성새대의 몫인데 나는 너무 숨어있는게 아닐까?

무겁지만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을 더 많이 접해보리라 다짐을 한다.

 

떡파는 아낙과, 신문을 돌리던 그 소년이 자꾸 눈 앞에 아른거린다.

그리고 복천영감의 영수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어찌됐든 진정으로 사람 사는 맛있고, 기분좋은 냄새를 느끼게 해주는 건 가진자보다는 그들보다는 덜 가진자들일테다.  지킬 것이 많고, 더 얻기 위한 탐욕도 많을테지

다리를 잃은 복천영감, 술을 파는 식모처자, 그리고 인숙이가 비탈진 음지에서도 잘 살아가길 바란다. 희망은 어디에나 존재하니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