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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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새로움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일과 속에서 마주하는 것은 지루함과 식상함이다. 하지만 문학이라는 장르는 반복되는 사물과 현상을 다른 시각으로 접하도록 해 준다. 기존에는 느껴보지 못한 것,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고민을 하게 해준다.

 

이번 책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라는 책 또한 마찬가지이다. 수용소의 삶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무거운 바위를 정상까지 밀어 올리면 바위는 다시 굴러 내려가게 되고 다시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처럼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한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잠에서 깨어 점호를 하고 밥을 먹고 몸수색과 다시 인원점검을 해 노동현장으로 간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갇힌 그리고 의미 없는 삶.

 

하지만 이 책 어디에서도 수용소의 이런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는 구절은 없다. 오늘 자고 나면 내일도 역시나 추위 속에서의 고단한 노동과 굶주림만이 기다리고 있다. 형량이 기본 10여년을 넘어서고 있는 죄수들에게 석방이라는 희망의 두 글자를 기다리고 생활하기에는 너무나 벅차다.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간다.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희망에서가 아니라 지금 발붙이고 서 있는 이 자리에, 이 현실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바람 한 점 막아주는 방어물 하나 없는 것에서의 작업을 해야 한다는 실망감과 걱정이 건물 안에서의 작업으로 바뀌면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난다 . 추위 떨면 욕지거리를 하며 작업을 하지만 식사 시간에 먹는 따뜻한 국물 한 모금, 그 후의 담배 한 모금이 그 모든 것을 만과한다.

 

그렇다. 삶이라는 것은 먼 미래의 희망을 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 이 시간에 일어나는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들이 인간 삶의 원동력이다. 만약 먼 미래의 희망만을 품고 살아간다면 주인공 슈호프와 함께 수용소에서 살아간 많은 죄수들은 스스로 삶을 마감했을 것이다.

 

우선, 한쪽 국그릇에 담긴 국물을 쭉 들이켠다. 따뜻한 국물이 목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가자, 오장육부가 요동을 치며 반긴다. ,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슈호프는 모든 불평불만을 잊어버린다. 기나긴 형기에 대해서나, 기나긴 하루의 작업에 대해서나, 이번 주 일요일을 다시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나, 아무 불평이 없는 것이다. 그래, 한 번 견뎌보자.... p.175”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먼 미래만을 꿈꾸며 달려가기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거기에 발맞추어 현실을 미래에 저당 잡혀 살아가는 현대인들. 과연 미래를 꿈꾸는 만큼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혹시 행복이라는 단어를 너무 먼 곳에서 찾고 있지는 않는가? 

 

아모르 파티. 지금의 내 모습. 지금의 내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거기서 행복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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