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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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는 양방향의 도구이다.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듣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어느 한 쪽으로만 흘러가는 언어는 본래의 그 의미를 퇴색시킬 수밖에 없다.

 

언어를 개인적 의미로서의 언어’, ‘사회적 의미로서의 언어’ ,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인적 의미로서의 언어는 언어 간의 소통이 단조롭다. 많아야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의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물론 서로 간의 의견충돌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듣고 말하는 구조 속에서 대화가 이루어진다.

그에 반해 사회적 의미로의 언어는 다르다. 무리와 무리의 대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무리의 힘에 따라 언어의 방향성이 결정된다.

 

소설의 무대인 조선 순조 신유박해 당시에 언어는 이런 언어였다. 정순왕후를 중심으로 한 지배층의 언어는 언제나 귀를 틀어막은 채 위에서 아래로만 향하는 언어였다. 언어의 기본적인 속성을 무시한 채 가진 재력과 권력만이 언어의 방향성을 결정했다. 나를 낳아준 부모와 나에게서 나온 자식과 함께 살고자 하는 기본적 욕구는 언어의 횡포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다. 백성들의 언어는 권력자들의 막힌 귀에 전달되지 못하고 언제나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그들의 언어, 그들의 논리만이 백성들에게 전달되며 귀를 열고 듣기만을 강요한다.

 

과거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현재 우리의 이야기이다. 선거 때만 귀를 여는 그들의 언어는 언제나처럼 우리들의 귀를 따갑게 하고 귀먹게 한다. 먹먹해진 귀는 우리를 둔하게 만들고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익숙하게 만든다.

다시 언어의 기능을 되찾자.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세상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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