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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수로 이루어져 있는 세상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확하다. 시공간에 상관없이, 보는 이에 상관없이 같은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같은 결과와 답을 기대한다. 반면에 글이라는 것은 모호하며 애매하다. 시공간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사람이 다시 그것을 볼 때조차도 새로운 느낌과 새로운 사고를 가지게 된다.
‘다섯째 아이’라는 문학은 최근에 읽은 정유정 소설 ‘종의 기원과 닮아있다. 두 권 다 인간에게 내재된 타고난 악, 즉 선천적 악을 이야기한다. ’다섯째 아이‘에서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특별한 모습을 보이며, 태어나서는 오직 집안의 행복을 불행으로 바꾸어 버리는 일을 하는 아이와 ’종의 기원‘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주인공의 악은 인간의 깊은 수면에 숨겨진 악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같은 주제 (인간의 타고난 악)를 다루지만 두 작가의 입장은 다르다. 도리스 레싱의 글에서는 타고난 악에 대한 인간의 무기력함을 보여준다.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어머니의 노력에도 악이라는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식의 모습에서 우울하고 음울한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정유정은 작가의 말에서 ’악에서 희망을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학습을 통한 인간의 성장은 악에서 조차도 변화와 새로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도 인간의 어두운 단면과 마주하고 있다. 부와 권력에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악해질 수 있는지, 이성이 아닌 공감과 감성의 결여가 어떤 결과를 야기 시킬 수 있는지 우리는 역사책이 아닌 역사의 한 중간에서 지켜보고 있다. 인간이 권력과 부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원죄를 타고났다. 그러나 또한 어둠에서 빛을 찾는 지혜와 용기도 타고 났다. 원죄를 완전히 씻어 제거할 수는 없겠지만 지혜와 용기라는 학습 도구를 통해 충분히 새로운 꿈과 희망을 만들 수 있다. 지금 촛불의 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