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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평점 :
인류의 탄생이후로 인간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왔다. 지구상에 처음 발을 내디디며 수렵, 채집생활을 시작한 인류는 자연 속에서 어머니 자연의 따뜻함, 풍성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배우는 동시에 자연의 냉혹하도록 차갑고, 부족하며 삭막함을 알아간다. 비록 방랑의 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괴로운 것도 많지만 성취해야 할 정확한 목표가 없기에 그들은 자유롭게 떠돌면서 삶 속에서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변화와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경험한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염려와 명확한 의지보다는 지금의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고 즐길 줄 알고 아파할 줄 알았다. 즉, 자연은 그들에게 언제나 성장의 장소이자 삶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지금 이 순간보다는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게 되며 동시에 미래에 대한 목표가 생겨난다. 자연은 더 이상 그들에게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제공하지 못하며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미래에 대한 걱정만을 제공한다.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산업혁명 그리고 지금의 정보화시대로 사회가 진화하면서 인류의 이성(논리,지식)은 그 어느 때보다 뛰어나게 된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자연은 이제 인류가 발전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으며 자연에서 제공받았던 여러 이점들은 컴퓨터와 스마트 폰을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다. 결국 논리와 지식을 통한 인류의 성장과 진화는 자연과의 거리감을 더욱 부추기게 되며 동시에 인간의 본성(자연을 갈구하는 마음)을 더욱 상실케 한다.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자연의 삶을 갈구하는 골드문트와 자연 너머의 세상을 추구하는 나르치스의 모습을 그리며 서로 간의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너무나 다른 서로는 너무나 서로를 그리워하고 서로에게서 배우며 성장해 나간다. 골드문트에게는 삶이 곧 배움터였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골드문트에게 삶이란 즐거움만 있을 수 없다. 고통과 죽음도 언제나 마주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 죽음이라는 끔직한 것조차도 사랑만큼이나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만져지고 느껴지며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어머니(자연)가 준 현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반면 나르치스는 감정보다는 이성을 중시한다. 현실적인 것들 보다는 현실너머의 이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처럼 실재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신적인 면(이성)을 강조하게 되고 학문과 종교에 심취한다. 하지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서로를 그리워한다. 이성과 감정이 떨어질 수 없는 것처럼 이들도 서로 떨어질 수 없다. 같이 존재하기에 서로는 더욱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는 유명한 말을 남긴 데카르트이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성은 지금 현재 우리에게 감정의 필요를 호소한다. 이성을 쫒으면 성장했지만 언제나 골드문트를 그리워한 나르치스처럼 이성 덕분에 이 만큼 진화한 인류문명도 골드문트의 존재를 그리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