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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의 역사 ㅣ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2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3월
평점 :
현재의 나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 모습만 가지고 판단할 수 있을까? ‘나’라는 인간은 태어난 이후로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읽은 책들,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얽히고설켜 지금의 나를 만들어 냈다. 단순히 지금의 결과물만을 보고 제대로 내가 누구인지 판단할 수 없다. ‘역사’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면서 우리 하나하나가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지만 지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우리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의 세대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떤 아픔을 가지고 왔는지 파헤쳐 보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에 가장 근접한 일제강점기 이후의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가장 먼 역사이다. 오히려 몇 백 년 전 조선의 이야기가 더 익숙한 것은 왜 일까? 아마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 가장 가깝게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지금도 살아있는 이들의 과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다락방에 꼭꼭 감추어둔 절대 세상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될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은밀한 역사는 우리에게 아픔이며 자랑이며 희망이다.
1980년 5월 18일에 죽은 자와 죽은 이들을 껴안고 살아가야 했던 이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충실했던 이들. 5.18 민주화운동은 사건의 당사자들 뿐 만아니라 주변인물들의 세상을 보는 시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이제껏 반공교육을 열심히 받아왔는데 그렇게 반공교육을 시킨 놈들이 결국 광주에서 시민들을 학살한 게 아니냐. 이렇게 되니까 순식간에 반공교육이 영향력을 상실하고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말을 믿지 않기 시작했어요......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운동이 대중화됩니다... p.62-63”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의 죽음. 거기에 이은 6월 민주항쟁 그리고 또 하나의 아픈 죽음. 87년 6월 항쟁의 상징이 된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절정으로 치닫던 민주항쟁은 결국 전두환 정권을 몰아내고 대통령을 직접 뽑는 직선제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김영삼 김대중 양김의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3당 합당으로 군사정부의 연장선이었던 노태우와 손을 잡은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이어 ‘현대사=김대중’ 이라는 등식의 성립이 가능한 김대중, 많은 가능성과 기대를 가진 만큼 실망도 컸지만 진정한 서민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이 차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다.
절름발이가 되어 넘어지고 주저앉아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던 현대사이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희망이라는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의 뒤를 이어 나아가야 할 때이다. 그들과 같은 용기도 그들과 같은 배짱도 없지만 선거라는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들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은 좀 더 치열하게 밑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언제 해야 하나요? 바로 지금, 이 순간 해야죠.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우리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제가 느낀 점이 무엇이냐 하면, 역사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현대사는 만들어 갈 요소가 대단히 많습니다. 이제껏 선배들이 이렇게 만들어왔습니다. 우리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주자는 바로 여러분입니다. p.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