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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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나도 변하기 시작한다. 언제나 나를 둘러쌓고 있던 무거운 옷의 껍질들이 하나하나 벗겨지며 원래 몸 형태를 드러내고 마음까지도 얼어붙게 만들던 하얀 입김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다. 몸이 변하듯 주위의 세상도 변신을 시작한다. 동장군을 피해 땅 속 깊이 숨어있었던 파란 잎들이 추위에 얼어 버렸던 땅의 무게를 뚫고나와 새 봄의 소식을 전한다. 창문 사이로 비추는 햇살은 여느 때와 다르게 나의 세포 하나하나와 화학작용을 하면서 엔도르핀을 분비해 내며 소리친다. ‘잊어라, 고통과 아픔의 시간은.... 그리고 맞이하자. 행복의 순간을...’ 나의 몸과 나를 둘러쌓고 있는 세상은 봄을 알리지만 정작 나의 마음은 언제나 겨울이다. 새 봄의 소식보다는 나를 감싸고 있는 걱정거리와 답답함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삶의 무게들만이 느껴진다. 하루하루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지만 여느 때처럼 나의 마음은 바쁘기만 한다. 따뜻한 햇살아래에서 하늘을 바라본 적이 언제이며, 총총히 박혀있는 밤하늘에 있는 별과 토끼가 산다는 달을 봐라 본지가 언제이고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맞추어 흐르는 감미로운 음악에 빠져 나 또한 촉촉해지는 감정을 느껴본지가 언제인가? 오늘도 나는 바쁘기만 하다. - 일상 속의 깨달음

 

주위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어디를 가든 전화 한 통이면 나를 만나 줄 친구들 나와 함께 웃어주고 수다 떨어줄 사람들이 있다. 스마트폰의 주소록에는 나의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번호들로 넘친다. 그럼에도 나는 외롭다. 같은 식당에서 같은 식탁에 앉아 마주보며 식사를 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서로의 폰을 보며 가상의 현실에 빠져든다. 나의 슬픔과 아픔 그리고 기쁨을 진심으로 함께 해 줄 사람이 없다. 허균과 기생 계랑과 같은 이성을 넘어서는 우정이 없으며 홍대용과 그의 벗들처럼 악기를 통해 하나되는 흥과 즐거움이 없다. 단지 우리에게는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만남을 가진다. 만남은 이어짐이다. 점과 점을 이어지는 단순한 물리적인 이어짐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고 알고자하는 마음의 이어짐이다. 마음을 이어주는 만남이야말로 맛난 만남이다. -맛난 만남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진짜로 미쳐 본 적이 있는가? 어느 하나에 미쳐보기 전에 생각해 볼 것이 많다. 금전적 혜택이 있는지, 경력에 도움이 되는지 등 이것저것 따져봐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결국 어느 하나에 좋아서 미쳐보기 전에 넘쳐나는 잡다한 생각들로 미쳐버린다. 잊는다는 것은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해서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될지, 출세에 보탬이 될지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냥 무조건 좋아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다는 말이다. 붓글씨나 그림, 노래 같은 하찮은 기예도 이렇듯 미쳐야만 어느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니 그보다 더 큰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깨달음에 도달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미쳐야 할 것인가? p.30” - 벽에 들린 사람들

 

이 책은 조선 선비들의 작품을 통해 그들을 알아보는 형식으로 글이 전개된다. 한 것에 미쳐 고수에 도달한 사람들을 모은 벽에 들린 사람들’, 조선 선비들과 선비들의 만남을 그린 맛난 만남’, 그리고 그냥 스치고 지나갈 정도로 평범하지만 조선 선비들에 눈에는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평범함을 묘사한 일상 속의 깨달음의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 가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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