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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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사회는 넘쳐나는 정보홍수로 익사직전까지 가 있다. 분당 새로운 소식들이 바로 바로 입력되다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진짜 정보는 얼마나 될까? 어떤 정보가 내가 필요한 정보이며 그 정보가 과연 정확한 진실을 담고 있는지 우리는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인터넷 신문지상에 1면으로 나오는 제목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을 달고 사람들의 클릭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덕분에 우리는 더 선정적이고 더 가십적인 내용을 찾아 헤맨다. 굳이 찾아서 보지 않는 이상 양질의 정보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어느 연예인이 누구와 사귀고 헤어지는 것은 핫 이슈이지만 11월 제 1차 민중궐기운동 중 다친 한 농민의 상태는 관심 밖의 일이다. 현대에서 나오는 새로운 제네시스의 외관은 검색어에 올라오지만 국정교과서라는 단어는 검색어에서 보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정말 올바른 정보를 섭취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정보 편식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 사방을 보지 못하고 오직 앞만 보도록 끌려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은 이렇게 말한다. 자기 나름으로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 광고 메시지나 언론이 전하는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자유로운 사고를 해야만 자유롭게, 양심에 입각해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63” 자유롭다는 것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넓고 깊음을 의미한다. 곧 세상을 자기중심에서 우리, 내가 사는 나라에서 우리가 사는 지구로 생각의 확장을 할 수 있게 된다. 그 와중에 세상의 부조리에 마주하게 되고 분노하게 된다. 분노는 저항을 불러오고 그 저항은 다시 변화를 이끌어 낸다. 변화는 다시 재창조로 옮겨와 너와 내가 균형을 이루는 사회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저자는 강조한다. 분노하라고....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p39.”

 

레지스탕스(저항)가 폭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분노가 물리적인 힘을 과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레지스탕스와 분노는 내가 살아있음을 그리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비폭력이라는 방식으로.... 나는 호소합니다. 우리의 정신을 완전히 개혁하자고. 폭력은 거부해야 합니다. 우선 효과가 없기 때문에 그래야 합니다......폭력은 폭력의 악순환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미래로, 희망으로 향한 문을 닫아버리게 합니다..... 비폭력이란 손 놓고 팔짱 끼고,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 다음에 타인들의 폭력성향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p.65”

93세의 노학자의 분노하라라는 외침은 외면적인 젊음만을 추구하고 내면적인 젊음은 죽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먼저 우리 자신에게 분노하라고 외친다. 비폭력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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