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식민사관 - 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만권당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나 흔하게 들어본 속담 중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다. 한 인물의 이름 석 자가 후대에 그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를 전해 준다는 소리이다. 그럼 그 이름은 어떻게 인물의 성격과 이미지라는 것을 대표하게 되었을까? 첫 번째는 그 사람이 남긴 문헌과 그와 관련된 주변 인물의 글과 전언이 가장 중요한 1차적 자료가 될 것이다. 글 속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인물됨이 자연스레 녹아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문헌에 그의 업적 등이 포함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두 번째는 그 사람이 사용한 물건들 그리고 그 사람이 지나쳤던 여러 장소들이 될 것이다. 사용했던 물건들, 아꼈던 물품들 또한 그 사람을 알아 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들, 특히 1차 문헌이 아무개=who he was’ 라는 공식이 성립되게 해 주는 것이다. 과거를 알아가는 것도 또한 한 사람의 과거를 알아가는 과정과 비슷할 것이다. 과거의 문헌과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을 뼈대로 과거를 형성해 나간다.

 

 이덕일 선생님의 우리 안의 식민 사관에서 줄기차게 주장하는 부분이 일부 역사전문가들의 문헌과 유물 등의 잘못된 해석이며 그 해석이 식민지사관을 유지하기 위한 편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역사학의 주류라는 사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21세기 하드웨어에 19세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서 멋진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이 책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여기서 제시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사실이다. 하나는 한사군의 위치이다. 연나라의 위만은 고조선으로 망명하여 준왕을 몰아내고 위만조선을 세운다. 이 때의 위만조선을 멸망케한 한나라는 그 자리에 한사군(낙랑군, 임둔군, 현도군, 진번군)을 설치한다. 한사군의 위치가 일제 식민사관, 즉 조선총독부 사관의 주장대로 한강 이북에 있었다면 고조선도 거기 있었던 것이 된다.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는 낙랑군을 중심으로 한강 이북에 한사군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 전역은 과거 한나라 영토가 된다. 중국 동북공정은 맞는 논리가 된다. 반면, 독립 운동가들의 주장대로 한사군이 만주 서쪽이나 허베이성(하북성)일대에 있었다면 이 일대까지 고조선 강역이 된다. 즉 지금의 베이징부근까지 한때는 한국사의 역사 강역이었다는 뜻이 된다. p.221” 이것이 한사군의 위치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두 번째는 임나일본부설의 진위이다. 우리가 삼국시대라고 알고 있는 시대가 사실은 아직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삼한이며 백제와 신라 가야를 일제 강점기의 조선총독부와 같은 임나일본부가 지배했다는 주장이다. 이 논리를 사실인 것처럼 만들기 위해 식민지사관주의자들은 삼국사기초기 기록 불신론을 내세운다. 왜 부정했겠는가? 일본서기나 고사기에는 한반도 내의 왜, 즉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서술하고 있지만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쓰다 소키치는 한반도 남부에 고대판 조선총독부인 임나일본부, 즉 왜가 존속하고 있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주목했다. 그러나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쓰다 소키치는 고사기 및 일본서기가 사실이라면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가짜로 모는 이른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창안해 했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관하여 가 그 논문이었다. p .177”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박은식 대통령은국어,국사는 혼이다” p.25 라고 말씀하셨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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