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구경하는 사회 (이옥토 리커버 에디션)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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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사물을 꿰뚫는 창과 같다. 창은 검처럼 날카로워 쉽게 베고 상처입히지만 자루가 길어서 관통상을 입힐 수 있다. 그것과 궤를 같이하는 질문은 깊게 후벼파는 상처를 남긴다. 기자들은 주로 타인에게 이런 무기를 사용한다. 기자라는 신분이 곧 권리인 것처럼 당당히 찾아와 창을 날린다. 그 창이 정확한 상대를 겨냥하고 있는지, 어떤 상처를 입히고 고통을 주게 되는지에 대한 고민은 중요하지 않다. 독자의 알 권리라는 절대적 쉴드 뒤에 숨어, 공격만을 가한다.

기자로서 작가는 취재 대상에게 던질 창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나는 이 이야기를 잘 이해하고 있나? 나는 과연 이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적합한 사람일까? 이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누굴까? 이 고통을 이야기할 권리는 대체 누구에게 있는 걸까?" p.248

 

기자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중매쟁이다. 단편적인 사실으로는 인연의 끈을 엮을 수 없다. 그 사람이 자라온 가정, 살아온 학교, 회사, 친구들 간의 관계 등 맥락을 전달하고 이해를 구해야만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언론이 하는 일은 겪은 이들과 겪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기억의 연결고리가 깜빡이다 꺼지지 않도록 기능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공적인 애도에 대해 적으려면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야기가 때론 이야기에 불과하고, 지나치게 매끈히 다듬어진 이야기는 오히려 해체가 필요할지도 모르며, 우리가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는 위험성을 또렷이 기억하면서, 기억을 듣고, 이야기로 꿰어서, 이해로 마음을 집어넣는 일이 쉬워지면, 슬픔을 나눈 공동체를 상상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니까." p.262

 

''이라는 것은 매일 한다는 의미이다. 매일 한다는 것은 일상화되어 기계적으로 행해지기 쉽다. 어떤 의문도 의심도 주의도 필요치 않다. 습관처럼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처럼 일을 한다. 하지만 매 순간 의심을 품고, 생각하며, 목적을 되새겨야 하는 ''들도 있다. 기자라는 직업은 일상생활의 순간순간을 파고들어 균열을 만들고, 그 균열이 틈을 만들고, 다시 구멍을 만들어 일상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따라서 그들의 작업은 장인의 손길처럼 꼼꼼해야 하고, 서두름이 없어야 하는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어야 한다.

 

"일상을 살아가며 연민을 잊지 않는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 균형과 전환 사이에서 기이한 파열음이 나는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라는 건, 개인들의 자유로운 반응 속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화학작용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각자의 시선이란 잔인할 정도로 개인적이고, 우리의 망막에 고인 타인의 고통은 아무리 자극적이어도 눈물 한 방울 내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 한 구석에 던져 놓은 신문뭉치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새로운 물건을 만들듯이, 시야 어딘가에 머무르다 펼쳐보게 될 가능성이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하며 되도록 조금 더 천천히, 더 담담한 뉴스를 만드는 건 어떤가. 빨리 시선을 잡아채는 것이 반드시 변화를 약속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학습한 지 오래이니, 오래 걸리더라도 있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알려야 할 것을 균형 있게 생산해 내는 매체로 머무는 건 어떤가." p238

 

작가는 더 나은 기자가 되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의문을 품지만 읽는 독자로서는 더 나은

''가 되기위해 생각해야 될 고민거리들을 떠안게 된다.

 

"개인을 잠시 내려두고 보편이라는 관점을 택하는, 그리고 닮음이라는 틀에서 훌쩍 벗어나 저 멀리의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상상한다. 나 이상의 테두리를 감각하고, 나의 가족이나 친구보다 더욱 큰 사회가 있음을 인지하고, 지구 공동체 안의 시민으로서, 인류의 일부로서 어떤 고통과 어떤 뉴스를 더 큰 '우리'의 우선순위로 놓고 해결해 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것.

알고리즘과 구독에 갇힌 나의 타임라인 밖으로 빠져나와 다른 삶의 존재를 알아채는 것. 모든 연민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을 매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대로를 아는 것, ''를 중심으로 뉴스를 떠먹이려는 뉴스의 매개자들이 의도치 않게 왜곡하고 있을지도 모를, 나와 연관되지 않은 일 역시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p.154

 

 

"특혜에서 배제된 집단으로 묘사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선한 일을 하는 경우에도 악한 일을 하는 경우에도 약자라는 맥락 안에서 조명받곤 한다. 약자의 선행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계층의 특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 개인의 독특한 선함의 질감을 놓치지 않도록, 악행을 바라볼 때는 개인의 악함으로는 다 포착되지 않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과 모순에 고루 책임을 묻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꾸만 약자의 일을 저 멀리 타자화하며, 나와 관련 없는 남의 일로 간단히 치부해 버리는 인지적 게으름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p.136

 

"문제는 산업재해라는 고통의 흔함이다...... 흔한 사고일수록, 어디서나 보이는 사고일수록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지고, 주기적으로 비슷한 소식을 들은 나머지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패러독스에 빠진다." p.94

 

"개인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그 방향을 틀어야 한다. 범죄가 일어나도록 방조하는 사회 구조와 가벼운 처벌을 일삼는 사법 시스템을 가리켜야 한다." p.71

 

 

"고통을 판다. 고통을 본다. 고통은 눈길을 끌고,,,,때로는 돈이 된다. 고통이 자주 구경거리가 됐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이제 고통은 콘텐츠가 됐다. 콘텐츠가 된 고통은 디지털 세계 속에서 클릭을 갈망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산업의 틈바구니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버글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통을 착취하거나 구경하고, 모른 척 지나친다." p.49

 

"대상화를 무작정 멈추라는 말은 함정이다. 타인에 대한 말하기가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도울 기회를 알지도 못한 채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시선이 구경이 될 수 있다는 걱정에 빠져서 고통을 보는 일 자체를 멈춘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인간성 실패의 시작일 것이다. 우리의 눈은 움직일 수 있다. 자랑스럽지 않은 이유로 머물렀다고 하더라도 더 나은 곳으로 분명히 이동할 수 있다. 본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전달과 전달, 중개와 중개를 통해 유예되어 버린 행동의 가능성이 당신에게 있으니까.

그러므로 구경으로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그 시선을 멈추지 말기를. 여력이 된다면 포기하지 말고 움직이기를. 행동이 절대선은 아니라는 것일 잊지 않기를. 시급한 진단의 효용과 오용을 잊지 않은 채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사유하기를."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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