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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방.악마와 선한 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5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지영래 옮김 / 민음사 / 2013년 10월
평점 :
오늘 아침도 일어나지지 않는 몸뚱이를 힘겹게 일으킨다. 어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뭘 생각하다 잠에 빠졌는지 기억이 하나도 없다. 불은 꺼지지 않은 채 그대로 이고, 잠자리 옆에는 읽다가만 책이 덩그러니 뒹굴고 있다. 다시 하루가 시작한다. 몸을 일으키고 씻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기계처럼 자동으로 몸이 평상시 순서대로 움직인다. 어느 순간 다시 어제처럼 똑같은 책상에 앉아서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작업을 하고 있다, 낮의 정 중간, 정오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 같이 일어나 점심을 먹는다. 잠을 깨기 위해, 남은 오후를 버티기 위해 시큼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동료들과 뇌를 거치지 않는 의미없는 잡담을 한다. 하루를 마감하는 열차 안에서 서 있기도 힘든 두 다리를 버티고 서서 집으로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 어제와 같은 일상이었다. 특별할 것도 기억에 남을 만한 일도 없었던, 그저 어제와 그저께와 같은 그냥 그런 하루였다.
지금 살고 있는 여기는 어딘가? 쳇바퀴 도는 다람쥐처럼, 바위를 계속 위로 밀어 올려야 하는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처럼 일생을 반복적 일상으로 메워가는 여기는 지옥인가, 천국인가? 만약 여기가 천국이라면 누구도 신을 믿지 않을 터, 하지만 여기가 지옥이라면, 그럼에도 행복해 하는 이들은 뭔가? 심장을 꿰뚫는 창이 없고 살갗이 녹아 들어가는 지옥불이 없는 현실의 지옥이 다행이라고 자위하는 것인가?
사르트르의 ‘닫힌 방, 악마와 선한 신’은 여기에 답을 제시한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닫힌 방’,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악마와 선한 신’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주장, 천국 (행복)은 모두 나로 인해 존재한다.
“~나는 애원하기도 했고, 징조를 애걸해 보기도 했고, 하늘에 메시지를 보내 보기도 했지만, 대답은 없었어. 하늘은 내 이름조차 몰라. 나는 매 순간 신의 눈에 내가 어떤 존재일 수 있을 까 자문했지. 이제는 내가 그 답을 알아, 아무것도 아닌 거야.~~~침묵, 이게 신이야. 부재, 이게 신이지. 신이란 인간들의 고독이야. 나밖에 없었던 거지, 나 혼자 악을 결정했고, 내가 혼자서 신도 만들어 냈어. 속인 것도 나였고, 기적을 행한 것도 나였고, 오늘 나를 심판하는 것도 나야. 나 혼자만이 내 죄를 사할 수 있지. 나, 인간인 내가 말이야. p.309”
매번 같은 쳇바퀴도 내가 어떤 속도로 달리는 지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달리는 지에 따라 어제와는 다르다. 같은 바위를 같은 언덕에 올려두지만 어디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어제 놓쳤던 장면을 오늘은 볼 수 있다. 주인공 가르생이 이야기 했듯이 타인이 있는 여기가 지옥일 수도 있지만, 고츠가 이야기한 것처럼 여기가 천국일 수도 있다. 모든 건 내 안에 존재한다. 천국도 지옥도...
지옥처럼 지루하고 재미없었던 일상이 너무나 그립고 사무치는 요즘, 더욱 와 닿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