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군의 길 - 하 - 정조평전 성군의 길
한영우 지음 / 지식산업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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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는 세자가 되고, 왕으로 조선을 이끌어 가는 평생 동안 할아버지의 명예와 아버지의 명예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한다. 할아버지 영조와 아버지 사도세자는 물과 불로 서로 섞일 수 없다. 영조를 명예롭게 하는 만큼 사도세자의 명예는 땅에 떨어진다. 정조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둘 다 명예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것은 모든 잘못을 간신배들의 무고에 돌리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 간신배의 무고에 속아 할아버지가 아들을 죽였고, 뒤에는 속은 것을 알고 무척 후회했다. 아버지는 억울하게 죽었다는 시나리오가 필요했다.... p.348“

 

나경언의 고변사건, 평안도 유람, 금등사건 등을 통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명예를 균형 맞추었다. 사실여부를 떠나서 신권이 강한 조선에서 어떻게 가능했을까?

 

1. 공부하고 노력하는 군주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와 어머니 혜경궁을 닮아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문인적인 체질을 타고난 그였기에, 신하들로부터 배우기 위해 여는 경연에서 오히려 그들을 가르쳤다고 하니, 말이 칼처럼 난무하는 정치에서 어떻게 정조를 굴복시킬 수 있었을까?

 

2. 내 편 만들기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군주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능력자를 양성하기 위한 규장각과 장용영, 장용영 외영 설치는 정조를 보필하여 정조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였다.

 

3. 모범적인 실천가

말로만 하는 정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정조는 실천가였다. 민국, 백성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왕이다.

 

민국으로 가려면 임금부터 서민적인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왕실에서 비단을 추방하고 임금 자신도 일상생활에서 면포 옷과 베옷을 입고 살았으며..... 음식은 보통 하루 두 끼를 먹고, 반찬은 두서너 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얻기 어려운 진귀한 진상품을 거부했다. P.351’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는 정조를 이해하는 데 결코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전문가들마다 여러 가지로 평하지만 어떤 게 진실이라고 규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정조가 있었기에 사도세자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보려는 노력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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