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 손그림 그리기 귀염뽀짝 시리즈 2
페이러냐오 스튜디오 지음 / 서울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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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그림그리기를 정말 좋아하는데 시에서 주최하는 그림전에서 상도 받고 한걸 보면 꽤나 소질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독창적으로 그리는 것은 무리고 일단은 그림책이나 동화책 등을 보며 거기 나오는 그림을 따라하며 그림을 배우는 듯 하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따라 그리며 그리기 연습을 하는 것 같다. 따로 연습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처럼 쓱쓱 그리는 것이 연습이 되는 셈이다. 어쨌건 그렇다보니 그림체가 대동소이하다. 아이들 동화책에 나오는 그림체라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그리다보니 거의 비슷한 그림만 그리게 되는듯 하다.


학년이 많아질수록 그림 실력은 더 늘어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 섬세하고 복잡한 그림보다 단순화 된 캐리커쳐 스타일의 귀여운 그림을 더 많이 그리는 것 같다. 물론 섬세하고 디테일한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다이어리를 꾸미거나 노트에 그림을 그릴 땐 멋진 그림보단 귀염뽀짝한 그림을 더 많이 그린다. 요즘은 천원이면 뭐든 살 수 있는 뭐든 다있는 그곳에 가면 이런 귀염귀염한 캐릭터 스티커나 엽서 같은 것을 많이 파는데 그런 걸 사와서 따라서 그리기도 하고 붙이면서 논다. 그런거 엄청 많이 샀다. 어른이 봐도 귀여우니 아이들 눈엔 얼마나 귀여울까?


그런 캐릭터 그림은 섬세한 그림보다는 상대적으로 그리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에 곧잘 따라서 그리긴 하지만 스티커나 엽서 등에 나오는 그림을 카피하는 것에 그치고 마는 것이 아쉽게 느껴졌었다. 그림의 원리를 안다면 스티커에 나오는 그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사물이나 동물을 관찰하여 특징을 잡아내고 독창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냥 따라만 그리는 모방이 아니라 창조를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기자기 손그림 그리기'는 귀염한 그림을 그리는 방법과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 등의 도형을 이용해서 귀여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알려주기 때문에 손그림 DIY작품을 그릴 수 있게 도와준다.


책에 소개된대로 사물과 동물, 사람을 그리는 법을 배우면 특징을 잡아서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선 긋는 방법, 도형을 그림으로 그리는 방법, 그림 꾸미기와 색칠법 같은 것을 알려주기 때문에 스케치부터 채색까지 손그림의 전과정을 꼼꼼하게 배울 수 있다. 또 캐릭터의 감정이나 동작을 설정하는 방법과 만화적 기법 등도 알려줘서 다양한 표현을 구현할 수 있다. 손그림 그리기 도구 소개와 귀엽게 그림을 그리는 비결도 알려주고 있다. 단순히 그림 한두개를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귀여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방법론적으로 알려주고 있어서 스스로 뭐든 그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QR코드를 찍으면 영상이 나오는데 영상을 보며 그림 그리는 것을 따라 할 수 있어서 책의 설명만으로 부족하게 느낄 수 있는 설명을 자세하게 들으며 배울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부록으로 네임택, 책갈피, 쪽지, 인스(인쇄스티커), 컬러링 엽서를 직접 만드는 DIY 도안이 있어서 직접 그린 귀여운 손그림으로 예쁜 굿즈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 책에 나오는 그림 자체도 귀엽고, 그림을 그리는 방법도 배울 수 있어서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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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달 시화집 가을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카미유 피사로 외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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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시를 읽기 좋은 계절이다. 괜히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도 써보고 싶고, 시도 읽으며 감상에 빠지기에 좋다. 쌀쌀해지는 날씨와 푸른 하늘이 사람을 서정적으로 변하게 만들어서 평소에는 안 읽던 시도 한번 읽어 보고 싶은 기분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가을을 노래한 총 35명의 시인의 시와 가을을 그린 카미유 피사로, 빈센트 반 고흐, 모리스 위트릴로의 그림을 하나로 묶어서 가을의 시화를 선보이고 있다. 9월, 10월, 11월의 가을을 주제로 한 시와 가을 날에 어울리는 그림은 지금 시기에 읽기에 아주 시의적절하다.


9월, 10월, 11월 석 달 동안 매일 한편의 시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책에서 소개하는 시는 주제나 배경이 모두 가을이다. 혹은 꼭 가을이라고 특정되진 않았지만 가을 느낌이 나는 시도 소개되고 있다. 하긴 시라는 것이 감각적인 운율과 감성적인 문장 때문에 어지간하면 가을은 떠올리게 하지만 어쨌건 시 내용에 직접적으로 가을이라는 말이 들어가거나 가을임을 암시하는 내용이 없어도 어쩐지 가을을 떠올리게 되는 시들이 포함되어져있다.


매일 한 편씩 시가 소개되는데 그 시가 소개된 해당 날짜와 어떤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주제나 내용에 따라 월별로는 크게 구분이 지어져 있다. 가령 첫눈을 노래한 시는 11월에 포진하고, 달과 밤을 주제로 한 시는 추석이 있는 10월에 배치하는 식이다. 그렇게 총 91편의 가을시를 소개하고 있는데 가을을 읊은 시가 이렇게나 많은줄은 미처 몰랐다. 가을이 시를 읽기 좋은 계절이라면 시를 쓰기에도 좋은 계절이기 때문인가보다.


시는 91편인데 시인들은 총 35명이라 당연히 중복되는 시인들이 많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시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윤동주 시인은 독립에 대한 열망과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정신적 고통, 참회하는 내용 같은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가을 시를 접하고 나니 서정적인 시어와 섬세한 내용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내용 속에 조선의 독립과 나라 뺏긴 아픔, 고뇌와 반성 같은 것들이 숨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외형적인 시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울린다. 시가 참 예쁘고 아름답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시인은 노천명 시인이다. 노천명 시인의 시도 윤동주의 시처럼 운율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아름다운 말들을 시로 옮겼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가을을 묘사한 것이 느껴지는데 당시 시대 상황 때문인건지, 가을날의 정서가 원래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시에서 슬픔이 느껴진다. 스산하고, 애잔하고, 쓸쓸한 감정이 느껴져서 가슴에 찬바람이 부는 기분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미야자와 겐지의 시와 하이쿠도 몇 수 소개하고 있지만 역시 우리 감성엔 우리 글이 더 좋게 느껴진다. 외국의 시도 좋긴 하지만 윤동주 시인의 시나 노천명 시인의 시는 그야말로 가슴에 착 감기는 듯하다.


시를 소개하면서 그 시와 연관되거나 시의 내용을 연상시키는 회화를 짝지어 소개하는 것도 참 좋은 구성같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과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을 묶어놓는다거나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과 고흐의 '자화상'을 세트로 보여주는 식이다. 별밤 세트, 자화상 세트는 아예 처음부터 서로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고 해도 될 정도로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서 시와 그림을 함께 접하면 감동이 두 배가 된다. 다른 시들도 그 시에 어울리는 그림과 짝을 지어서 소개하고 있어서 멋진 시화를 즐길 수가 있다.


이미 9월은 지났고 10월의 끝자락에 왔지만 여전히 가을은 깊어지고 있고, 감성도 익어가는 이 무렵에 가을을 노래한 시를 읽어보면서 감성에 젖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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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내일도 귀여울 거니까 - 뾰롱 에세이
김진솔 지음 / Storehouse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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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귀염뽀짝한 그림과 감동이 있는 인스타 문구 같은 것을 조합해놓은 요즘 굉.장.히. 유행하는 힐링북이다. 사실 이런 책은 큰 교훈이나 대단한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뭔가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거창한 의미를 가지지도 않는다. 그냥 귀여운 그림과 함께 잔잔하게 흘러가는 문구들이 전부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아무 생각없이 쭉 보고 있자면 안심이 되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마치 별거 없지만 푸른 산을 보면 머리 속이 맑아지고, 가슴이 고요해지듯이 이 책도 고요하고 조용한 시간을 선물해준다.


책의 표지는 노란 뼝아리의 얼굴을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는 어릴 적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서 500원과 맞바꾼 순수한 감정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병아리는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지도 않고, 고양이처럼 도도한 매력을 뽐내지도 않는다. 그냥 삐약삐약거리면서 방을 돌아다닐 뿐이다. 사람에게 안기지도 않고, 애교를 부리지도 않고, 고양이처럼 밀땅을 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정말 심심한 애완동물이지만 샛노랗고 귀여운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고, 헤벌쭉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병아리를 보고 있는 시간은 하염없이 행복해진다. 이 책이 딱 그렇다.


때론 조용히 흐르는 물처럼 잔잔히 책장을 넘기고, 고요한 물 위에 작은 파장이 일듯 가슴에 작고도 은은한 감동이 번진다. 가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듯 작은 웃음으로 책을 잡은 손이 흔들리기도 한다. 극적인 과장도 없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클라이막스도 없으며, 미친듯이 웃기거나, 진한 여운과 격한 감동을 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감정의 과잉은 절제되고 세상사에 지쳤을 마음을 고요하게 덮어주는 듯 하다. 폭소가 아닌 작은 미소 하나, 심금을 울리는 진한 감동이 아닌 조용히 오래 남는 작은 여운을 선사해준다.


가끔.... 스스로 가두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그리고 별 것 아닌 멘트 하나에 혼자 괜히 심각해져서 오랜시간을 그 의미를 곱씹어보게 되고 그 문장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게 되는 일도 있다. 「가끔.... 스스로 가두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첫장에 나오는 이 말은 오랫동안 머리 속을 맴돌았다.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을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스스로를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가두어두고 힘들게 하는 경우 말이다. 과거의 후회나 자책, 자괴감, 미래에 대한 불안 등 마치 테마감옥처럼 자신을 가두는 감옥의 종류도 다양하다. 다른 사람의 중범죄에 대해서는 너무나 너그러우면서 자신의 경범죄에는 가혹하리만치 처벌을 한다. 스스로를 독방에 가두고 외로움에 떨게 만든다. 영화 빠삐용에서 빠삐용은 햇볕이 들지 않는 어두운 독방에 홀로 갇히자 나중에는 빛을 두려워하게 된다. 자신을 외로움의 감옥에 가두고 힘들게 한 사람은 어둠의 그림자 때문에 희망을 보지 못하게 되는 일이 많다. 난 뭐가 그렇게 불안하고 뭐가 그렇게 우울하고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스스로를 가두려 했던 것일까? 첫장부터 어둠 속에 갇혀 있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버림받는 건 익숙해지지 않네
비라도 그쳤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심지어 버림받는 것은 아무리 해도 적응이 안된다. 버림받았는데 비까지 오다니.. 나쁜 일은 꼭 한꺼번에 찾아오는 법이라 살다보면 이런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이런 일을 당하면 보통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마련이다. 너무 큰 슬픔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그 비를 맞으며 울고 있는 동안 내가 우산을 씌워주던 꽃은 나 때문에 버림받게 된다. 내가 버림받고 힘들어하는 동안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내가 버림받은 슬픔에 빠져 내가 버려두고 있는 것이 있지는 않은지 눈물을 닦고 살펴보아야 한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어디로... 가야 하지?
어른이 된 토끼는 길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이별한 사람들이 길에서 택시를 보면 꼭 부른다는 이별택시. 근데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이 부분은 이별을 하지 않아도 이상하게 계속 읊조리게 된다. 살다보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날이 너무 많이 생긴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리고 뒤이어 결정장애도 함께 주었다. 앞으로의 진로, 하고 싶은 일, 내 인생이 목적, 삶의 이유. 어른이 되면 정확하게 답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어간다. 예전엔 그걸 이룰 수 있건 그렇지 않건 적어도 '꿈'이란 것이 있었다. 구체적이진 않아도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을 머리속으로 떠올릴 수 있었지만 현실에 물들어갈수록 꿈은 점점 사라져만 간다. 뭘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내가 지금 어디있는지조차 잊고 살게 된다. 때론 산토끼가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일도 많이 있다. 꿈과 길을 잃어버린 채 집에 널부러진 산토끼는 어디로... 가야 하지?

이게 뭐지?
뭐라고 쓰여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네
하나도 모르겠어

예전엔 미니홈피에서 도토리를 교환했었고, 버디버디로 미지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러브스쿨에서는 그리운 옛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땐 최첨단 디지털 문화를 누렸고 나름 잘 나갔다. 나름대로 콤퓨타도 잘 다루고 시대에 뒤처지는 올드보이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자고 일어났더니 페이스북, 인스타, 트위터, 유튜브, 틱톡. 어디서 이상한걸 만들어서 지들끼리 돌려쓰더니 그걸 모른다고 꼰대라고 말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라떼는 말이야! 솔직히 SNS는 사용을 하지 않다보니 가끔 글이라도 하나 올리려고 하면 굉장히 버벅거린다. 게시글의 주소 하나 복사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게 뭐지? 뭐라고 쓰여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네... 이렇게 되어버렸다.


솔직히 그냥 귀여운 그림만 그려져 있는 평범하고 흔한 힐링북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꽤나 재미도 있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좋고, 재미있는 부장님 개그에, 은근 중독성 있는 그림까지 재미도 있고, 공감되는 내용도 많이 있고, 웃으며 읽게 된다. 그리고 생각이 깊어지는 내용까지 있어서 힘들고 마음이 어수선할 때, 마음 속을 정화하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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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곤 우화 - 교훈 없는 일러스트 현실 동화
이곤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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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이솝우화를 한번쯤 읽어본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우화는 동물이나 식물 등을 의인화 하여 사회를 풍자하고 도덕적인 교훈을 주는 이야기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보편적인 지혜와 교훈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도덕적'이라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거나 가족간의 우애와 친구간의 우정 같은 기성세대들이 아이들을 앉혀놓고 설교하고 싶은 내용들을 이야기로 꾸민 것이다. 이렇게 우화는 짧은 이야기들이라 읽는데 부담도 없고, 도덕적인 교훈을 주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많이 읽힌다. 동물들이 나와서 사람처럼 말을 하고, 권선징악 같은 원초적인 주제나 나쁜 사람을 골탕먹이는 내용도 많아서 꽤나 재미도 있다. 그래서 이솝우화는 아이들이 좋아한다.


하지만 이 이솝우화가 교훈적이라는 것 때문에 아동용으로 읽히고 있지만 사실은 성인들을 향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현대의 성인에게 더 적합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세상에 찌들고 탐욕적으로 변한 성인들에게 좀 착하게 살아라고 말을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솝우화는 교훈적이고 좋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있거나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특히나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과거와 같은 흑백논리와 기존의 가치관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일이 많은데 마치 라떼는 말이야라는 느낌으로 도덕적이기만 한 이야기에 빠져있는 것에 조금은 회의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곤 우화는 이솝우화에 대응한 현실반영 성인용 우화이다. 무조건 착하게 살면 만사가 해피해진다는 기존의 일차원적인 권선징악 스토리에서 벗어나서 세상을 보는 각도를 바꾸어서 새로운 시각으로 현실에 접근하고 있다. 어릴 때는 그다지 느끼지 못했지만 성인이 될수록 점점 세상은 따뜻한 동화나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만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그런 이상적인 세상의 교훈을 주는 동화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냉혹하고도 차갑지만 우리가 매일 마주하게 되는 현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곤 우화의 내용은 차가움을 넘어 냉혹하고 처절하고, 좌절감을 맛보게 하는 것조차 있다. 그래서 읽고 나면 씁쓸함이 입안을 감돌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에 수긍하게 된다. 또 저자는 이곤 우화에 교훈 따위는 없다고 말하지만 나름의 확실한 교훈을 담고 있는 것도 있고, 기존의 속담이나 잘 알려진 이솝우화를 비틀어서 고정관념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도 있다. 사실 이런 것들이 더 큰 교훈이 될 수도 있다. 틀에 박힌 결론이 아니라 현실감 있는 감각으로 요즘 세대에 맞게 다시금 생각해보며 결국 교훈이나 삶의 방식, 인생에서의 선악이라는 것도 하나가 아니라 각자의 입장과 시선에서 달라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런 식의 비틀린 이야기 진행구조를 너무 좋아한다.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틀을 깨는 것에서 우리의 생각의 깊이는 깊어지고, 가치전복적인 사고와 함께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솝우화건 이곤 우화건 우리가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곤 우화는 차가운 내용과는 상반되게 너무 귀욤귀욤한 일러스트 삽화가 그려져 있어서 우화를 더욱 차갑게 느끼도록 만든다. 귀요미 삽화는 우화라는 장르적 가치를 따르고 있지만 그와 대비되는 내용은 현실과 동화의 격차를 더욱 벌려놓아서 더 큰 현실의 벽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현실은 우화보다 더욱 차갑고, 냉혹하고, 잔인하다.



내 안에 박힌 돌 조각 위에 시간과 인내가 쌓이면 진주가 된다
상처는 아프고 시간은 더디며 결과는 불확실하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반짝이는 진주를 생각하며 오늘을 견뎌낸다.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 진주 빛 노력


사회는 우리에게 노오력을 하라고 말한다. 나쁜 사장에게 갑질을 당하고 월급을 떼이는 것도 좋은 공부라고 말한다. 젊은 친구들은 노오력은 하지 않고 편한 일만 하려고 한다며 기성 세대들은 청춘들을 비난한다. 라떼는 말이야 라며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노력한 만큼 결과를 가져가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거란 허황된 희망만 심어줄 뿐이다. 진주 빛 노력은 다른 누군가의 성취로 돌아가는 일이 너무나 많다. 자본주의는 노력에 보상해주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얼마나 노력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일어 얼마나 돈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노오력을 하라고 말하는 이는 껍질을 깨고 진주를 가져가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참 이상해
내가 개미일 때는 그렇게 꿈을 찾으라고 하더니
막상 꿈 찾아 베짱이가 되겠다니까 현실을 보라고 그러더라
꿈이 없어서 개미였던 것도 아니고
현실을 몰라서 베짱이가 된 것도 아닌데
내 꿈도, 현실도 아무것도 모르는 건 당신 아닌지

- 개미와 배짱이


우린 평생 꿈과 현실 속에서 방황하며 살아간다. 때론 자신의 꿈이 뭔지 모르는 일도 있고, 가난한 현실 때문에 꿈조차 가난해지는 일도 많다. 한국에서 말하는 꿈이란 직업을 뜻한다. 장래 희망, 꿈이 뭐냐고 물어보는 것은 어떤 직업으로 돈을 벌것인가 라는 의미가 된다. 직업이 꿈이 되어버린 것은 어른들의 탓이다. 그런데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학생이 많아진다는 뉴스에는 아이들이 겨우 9급 공무원에 매달려서 공부하는 것을 보며 청춘이 포부와 꿈도 없다며 한심스럽게 생각하고, 아이돌을 목표로 노력하는 아이들을 향해서는 허황된 꿈을 꾼다며 혀를 찬다. 도대체 뭘 어쩌란 것이냐?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꿈을 꾸는 방법조차 알려주지 않았으면서 스스로 결정한 청춘의 꿈을 비웃거나 비난하면 어쩌란 것인가? 사람들은 겪어보지 않은 남의 꿈은 쉽게 생각한다. 내가 해보지 않은 남의 노력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꿈과 현실은 남이 이러쿵저러쿵 말할게 아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쪽박은 깨지 말아야 한다.



어른들은 사회에서 구르다 보면 모난 곳도 둥글어진다고 했어
그렇게 성장하는 거랬어
그렇게 구르고 굴러서 둥글어지긴 했는데
많이 다쳤고, 너무 아팠어
사람들은 '성장'을 말하는데 나는 점점 더 작아졌어

- 모난 돌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 주었던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의 한 구절이다. 우리는 모난 돌이 정맞는다고 배워왔다. 니 성질대로 하다가는 정맞으니까 둥글둥글하게 살아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둥글둥글하다는 것은 내 개성 죽여가며 남에게 맞추고,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 의견에 따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성장'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정을 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지만 바위는 계란의 사정 따윈 봐주지 않는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약자들만이 강자들의 눈치를 보고 비굴하게 대가리를 숙인채 살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그래야 밥이라도 빌어먹고 살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꼭 이런 극단적이고 정치적인 표현이 아니더라도 성장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깎아내리고, 성질을 죽이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랐다. 그렇게 해야 바닷가의 조약돌처럼 모두가 맨들맨들한 똑같은 모양의 돌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모양이 되기 위해 수없이 깎여나가야 했던 시간들. 자신을 잃고, 자아를 잃어버린 시간. 내 속에 내가 없는데 내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성장이라면 여전히 피터팬인채로 혼자 하늘을 날며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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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산문선 열린책들 세계문학 256
조지 오웰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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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그의 대표작품인 동물농장과 1984에서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동물농장에서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을 풍자하고 권력이 부패해가는 과정을 실랄하게 풍자했으며 1984에서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국민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전체주의 독재국가를 그렸다.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자였지만 당시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를 사회주의의 이상을 퇴색시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강하게 비판하고 풍자했던 것이었다. 특히 1984는 소설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이 21세기 현시점에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조지오웰의 혜안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물론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과 1984라는 대단한 소설을 만들어서 독보적 위치에 올랐지만 반대로 이 두 소설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조지 오웰은 이 두 소설 외에도 수많은 에세이를 남겼고, 그 글들은 20세기 영국 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산문이라고 평가받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지 오웰의 에세이 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혹은 나만 그런게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조지 오웰은 민주적 사회주의를 꿈꾸었다고 하는데 약간 이상주의자처럼 들린다. 하지만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직접경험하며 전체주의 사상의 부조리를 체험하고 그것을 글로 썼는데 현실을 통해 자신만의 정치관을 수립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다보니 비판적이고 비평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에세이가 주목받는 것은 소설과는 다르게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직접적이고 강하게 글을 써서 조지 오웰의 가치관과 사상이 잘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지 오웰은 스스로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 사회주의에 찬성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말했다는데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의 최정점에 있는 조지 오웰의 대표작인 동물농장과 1984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상기시켜준다. 이 소설들은 조지 오웰의 말년에 나온 책들인데 앞서 발표된 에세이 들은 조지 오웰의 사상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한다. 말하자면 앞서 말했듯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경험하고, 파시스트에 대항하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였다가 진실을 왜곡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주의를 목격하고는 전체주의의 실상을 깨닫게 되고 그때부터 회의감을 느끼고 자신의 사상을 조금씩 쌓아나가며 에세이를 썼고, 비판적 시각이 완성형에 다다랐을 때 1984로 마무리를 한 것이다. 그래서 에세이는 조지 오웰이 그런 정치적 사상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발자취가 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버마와 인도에서 경찰공무원으로 근무 했다고 한다. 당시 버마는 영국의 식민지하에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조지 오웰은 그곳에서 식민지배의 최전선에 있는 경찰이란 신분으로 일하면서 식민 제국주의의 실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폭력적 지배 방식은 모국인 영국을 증오하게 만들었고 한편으로는 버마인들의 영국경찰에 대한 적의와 조롱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들에 대한 반감도 가지게 되었던것 같다. 특히 승려를 아주 혐오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지배하는 영국인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조롱하고 반발했는데 조지 오웰은 그런 행동에 분노했다. 기본적으로는 사악한 제국주의를 반대하면서 마음으로는 버마 편을 들었지만 자신을 조롱하는 승려들을 칼로 찌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제국에 대한 증오와 자신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식민지인에 대한 분노 사이에서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조지 오웰이 버마에서 경찰로 근무하는 중에 발정이 나서 탈출한 코끼리를 총으로 쏘아죽인 실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데 이 사건을 통해 조지 오웰은 제국주의자들의 허망함을 경험한다. 사실 조지 오웰은 코끼리를 쏘고 싶지 않았다. 탈출한 코끼리는 하층민 노동자를 죽였고, 집을 부수며 난동을 부렸지만 자신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코끼리는 진정된 상태였고, 큰 동물을 죽이는 것은 나쁜 일처럼 생각하던터라 양심의 가책으로 코끼리를 쏘지 않으려 했지만 자신이 코끼리를 쏘는 것을 구경나온 2천명의 식민지인들의 시선에 등떠밀려 어쩔수 없이 코끼리를 쏘고 만다. 백인은 원주민 앞에서 겁을 먹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자신이 지배하는 피지배자들에게 지배자의 약한 모습을 보이면 웃음거리가 되고 말기에 두려움보다 웃음거리가 되면 안된다는 생각만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지 오웰는 백인 독재자가 하는 짓거리는 스스로가 결정하고 선택하여 행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원주민의 요구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식민지에서 경찰이라는 나름 파워있는 권력자로 있지만 조지 오웰은 스스로의 권력의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의 원주민의 눈을 의식해서 행동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백인 독재자는 원주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려고 애를 쓰며 일생을 낭비하고, 큰 위기가 생길 때마다 원주민의 기대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는 논리다. 조지 오웰은 코끼리를 쏘았고, 또 쏘았다. 수없이 총알을 쏘아부었지만 코끼리는 바로 죽지 않았고 한참을 고통에 몸무림치며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자신의 살을 베어가는 원주민을 봐야 했다.


그 사건 이후 코끼리를 쏜 것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고, 법적으로는 코끼리를 쏜 것이 옳았지만 겨우 사람 하나 죽었다고 무려 코끼리를 쏘는 것은 단가가 안맞는다며 질책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나이 많은 사람은 두둔했지만 젊은 사람들은 비난했다고 하는데 저 당시에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보수이고 젊은 사람들이 진보적 성향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면 소위 진보라는 사람들이 노예 한놈이 죽었다고 코끼리님을 사살하는게 말이 되냐고 따졌다는 뜻인데 정말로 이것이 당시 진보의 수준이라면 너무 실망스러다고 밖에는 표현하지 못하겠다. 조지 오웰은 코끼리가 비싼 기계장비 같은 존재라고 썼는데 사람을 살리기 위해 공장의 기계를 망가트리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 그러나 진보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젊은 친구들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그들이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대영제국이 몰락한 것일 수도 있겠다.


조지 오웰는 그 천민이 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천민이 죽어줬기 때문에 코끼리를 사살한 것이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쿵 저러쿵 해도 조지 오웰 자신도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같은 인권의식은 개나 줘라 이거다. 조지 오웰는 오로지 바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코끼리를 쏘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지배자는 피지배자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백인 독재자는 강한척은 혼자 다 해도 결국 피지배자의 요구대로 움직이게 된다는 논리인데 한때 일제강점기를 지내온 국가의 후손으로 이 말에 강한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만약 백인 독재자가 원주민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웃음거리가 되고, 어쩌면 원주민들이 약한 지배자의 지배를 벗어나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강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말한다면 솔직한 자기고백 쯤으로 받아들이겠지만 그것이 단지 원주민의 기대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조지 오웰은 스스로 버마를 지지하고 제국주의를 경멸한다고 했지만 정작 아주 제국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쩔어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제국주의자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은 분명하다. 백인 나리들이 원주민의 기대에 따라 행동한다는 사고는 제국주의자들의 비겁한 자기변명과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의 요구에 의해 움직인다니 그럼 피지배자들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지배해주길 바라는 엄청난 마조히스트란 말인가? 그야말로 넌센스고 언어도단이다. 그런 말로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조지 오웰 실망이다.


2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고 모두가 총을 쏘아서 코끼리를 죽이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 심리에 의해 총을 쏜 것일 뿐 거기에 백인 독재자나 원주민의 관계가 들어갈 여지는 없다고 봐야한다. 그 2천명이 버마인이 아니라 영국인이었어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라깡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다. 2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하나의 결과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면 그것을 모른척하고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것은 원주민의 기대에 등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행동하게 되는 지배자의 운명 따위가 아니라 단순히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심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것을 제국주의의 자기합리화로 말하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지 않나?


조지 오웰은 나름 양심선언으로 자기고백을 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이건 제국주의자의 사고방식에 갖혀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고 제국주의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으로 보인다. 뭐든지 제국주의라는 변명을 갖다 붙이는 속편한 사고가 아닌가 말이다. 수많은 피지배 원주민이 보고 있다는 것에 무력감을 느끼고 속으로는 너무 싫었지만 할 수 없이 코끼리를 쏘았다는 것에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스스로도 말했듯이 법적으로는 아무런 잘못도 되지 못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단순히 제국주의의 백인 독재자가 겪을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물론 조지 오웰의 에세이는 완성형이 아니고 사상과 가치관을 정립해나가는 하나의 과정에 있는 것이므로 너무 코너로 몰아부치고 비난을 해서는 안되겠지만,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백인 독재자의 입장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한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지 오웰 선생님 아닌 건 아닌 겁니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 조지 오웰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조지 오웰의 산문은 사상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고, 코끼리 사건은 조지 오웰이 아직 젊었을 때 있었던 일이라 정치적 신념과 사상이 제대로 형성되기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글에 남겼듯이 그는 어리고 교육을 받지 못해서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인 지배자의 입장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봤을 사람인지라 자신이 속해있던 위치에서의 가치관을 완전히 배제한 채 생각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후의 작품을 생각한다면 역시 초기의 작품들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제국주의, 전체주의를 경계하고, 영국에 반감을 가졌으며, 피지배층을 생각했다는 점에서 조지 오웰은 여전히 멋진 사람이자 대단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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