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산문선 열린책들 세계문학 256
조지 오웰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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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그의 대표작품인 동물농장과 1984에서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동물농장에서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을 풍자하고 권력이 부패해가는 과정을 실랄하게 풍자했으며 1984에서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국민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전체주의 독재국가를 그렸다.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자였지만 당시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를 사회주의의 이상을 퇴색시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강하게 비판하고 풍자했던 것이었다. 특히 1984는 소설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이 21세기 현시점에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조지오웰의 혜안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물론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과 1984라는 대단한 소설을 만들어서 독보적 위치에 올랐지만 반대로 이 두 소설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조지 오웰은 이 두 소설 외에도 수많은 에세이를 남겼고, 그 글들은 20세기 영국 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산문이라고 평가받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지 오웰의 에세이 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혹은 나만 그런게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조지 오웰은 민주적 사회주의를 꿈꾸었다고 하는데 약간 이상주의자처럼 들린다. 하지만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직접경험하며 전체주의 사상의 부조리를 체험하고 그것을 글로 썼는데 현실을 통해 자신만의 정치관을 수립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다보니 비판적이고 비평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에세이가 주목받는 것은 소설과는 다르게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직접적이고 강하게 글을 써서 조지 오웰의 가치관과 사상이 잘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지 오웰은 스스로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 사회주의에 찬성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말했다는데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의 최정점에 있는 조지 오웰의 대표작인 동물농장과 1984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상기시켜준다. 이 소설들은 조지 오웰의 말년에 나온 책들인데 앞서 발표된 에세이 들은 조지 오웰의 사상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한다. 말하자면 앞서 말했듯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경험하고, 파시스트에 대항하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였다가 진실을 왜곡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주의를 목격하고는 전체주의의 실상을 깨닫게 되고 그때부터 회의감을 느끼고 자신의 사상을 조금씩 쌓아나가며 에세이를 썼고, 비판적 시각이 완성형에 다다랐을 때 1984로 마무리를 한 것이다. 그래서 에세이는 조지 오웰이 그런 정치적 사상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발자취가 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버마와 인도에서 경찰공무원으로 근무 했다고 한다. 당시 버마는 영국의 식민지하에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조지 오웰은 그곳에서 식민지배의 최전선에 있는 경찰이란 신분으로 일하면서 식민 제국주의의 실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폭력적 지배 방식은 모국인 영국을 증오하게 만들었고 한편으로는 버마인들의 영국경찰에 대한 적의와 조롱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들에 대한 반감도 가지게 되었던것 같다. 특히 승려를 아주 혐오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지배하는 영국인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조롱하고 반발했는데 조지 오웰은 그런 행동에 분노했다. 기본적으로는 사악한 제국주의를 반대하면서 마음으로는 버마 편을 들었지만 자신을 조롱하는 승려들을 칼로 찌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제국에 대한 증오와 자신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식민지인에 대한 분노 사이에서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조지 오웰이 버마에서 경찰로 근무하는 중에 발정이 나서 탈출한 코끼리를 총으로 쏘아죽인 실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데 이 사건을 통해 조지 오웰은 제국주의자들의 허망함을 경험한다. 사실 조지 오웰은 코끼리를 쏘고 싶지 않았다. 탈출한 코끼리는 하층민 노동자를 죽였고, 집을 부수며 난동을 부렸지만 자신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코끼리는 진정된 상태였고, 큰 동물을 죽이는 것은 나쁜 일처럼 생각하던터라 양심의 가책으로 코끼리를 쏘지 않으려 했지만 자신이 코끼리를 쏘는 것을 구경나온 2천명의 식민지인들의 시선에 등떠밀려 어쩔수 없이 코끼리를 쏘고 만다. 백인은 원주민 앞에서 겁을 먹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자신이 지배하는 피지배자들에게 지배자의 약한 모습을 보이면 웃음거리가 되고 말기에 두려움보다 웃음거리가 되면 안된다는 생각만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지 오웰는 백인 독재자가 하는 짓거리는 스스로가 결정하고 선택하여 행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원주민의 요구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식민지에서 경찰이라는 나름 파워있는 권력자로 있지만 조지 오웰은 스스로의 권력의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의 원주민의 눈을 의식해서 행동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백인 독재자는 원주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려고 애를 쓰며 일생을 낭비하고, 큰 위기가 생길 때마다 원주민의 기대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는 논리다. 조지 오웰은 코끼리를 쏘았고, 또 쏘았다. 수없이 총알을 쏘아부었지만 코끼리는 바로 죽지 않았고 한참을 고통에 몸무림치며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자신의 살을 베어가는 원주민을 봐야 했다.


그 사건 이후 코끼리를 쏜 것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고, 법적으로는 코끼리를 쏜 것이 옳았지만 겨우 사람 하나 죽었다고 무려 코끼리를 쏘는 것은 단가가 안맞는다며 질책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나이 많은 사람은 두둔했지만 젊은 사람들은 비난했다고 하는데 저 당시에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보수이고 젊은 사람들이 진보적 성향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면 소위 진보라는 사람들이 노예 한놈이 죽었다고 코끼리님을 사살하는게 말이 되냐고 따졌다는 뜻인데 정말로 이것이 당시 진보의 수준이라면 너무 실망스러다고 밖에는 표현하지 못하겠다. 조지 오웰은 코끼리가 비싼 기계장비 같은 존재라고 썼는데 사람을 살리기 위해 공장의 기계를 망가트리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 그러나 진보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젊은 친구들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그들이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대영제국이 몰락한 것일 수도 있겠다.


조지 오웰는 그 천민이 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천민이 죽어줬기 때문에 코끼리를 사살한 것이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쿵 저러쿵 해도 조지 오웰 자신도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같은 인권의식은 개나 줘라 이거다. 조지 오웰는 오로지 바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코끼리를 쏘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지배자는 피지배자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백인 독재자는 강한척은 혼자 다 해도 결국 피지배자의 요구대로 움직이게 된다는 논리인데 한때 일제강점기를 지내온 국가의 후손으로 이 말에 강한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만약 백인 독재자가 원주민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웃음거리가 되고, 어쩌면 원주민들이 약한 지배자의 지배를 벗어나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강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말한다면 솔직한 자기고백 쯤으로 받아들이겠지만 그것이 단지 원주민의 기대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조지 오웰은 스스로 버마를 지지하고 제국주의를 경멸한다고 했지만 정작 아주 제국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쩔어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제국주의자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은 분명하다. 백인 나리들이 원주민의 기대에 따라 행동한다는 사고는 제국주의자들의 비겁한 자기변명과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의 요구에 의해 움직인다니 그럼 피지배자들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지배해주길 바라는 엄청난 마조히스트란 말인가? 그야말로 넌센스고 언어도단이다. 그런 말로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조지 오웰 실망이다.


2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고 모두가 총을 쏘아서 코끼리를 죽이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 심리에 의해 총을 쏜 것일 뿐 거기에 백인 독재자나 원주민의 관계가 들어갈 여지는 없다고 봐야한다. 그 2천명이 버마인이 아니라 영국인이었어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라깡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다. 2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하나의 결과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면 그것을 모른척하고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것은 원주민의 기대에 등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행동하게 되는 지배자의 운명 따위가 아니라 단순히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심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것을 제국주의의 자기합리화로 말하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지 않나?


조지 오웰은 나름 양심선언으로 자기고백을 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이건 제국주의자의 사고방식에 갖혀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고 제국주의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으로 보인다. 뭐든지 제국주의라는 변명을 갖다 붙이는 속편한 사고가 아닌가 말이다. 수많은 피지배 원주민이 보고 있다는 것에 무력감을 느끼고 속으로는 너무 싫었지만 할 수 없이 코끼리를 쏘았다는 것에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스스로도 말했듯이 법적으로는 아무런 잘못도 되지 못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단순히 제국주의의 백인 독재자가 겪을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물론 조지 오웰의 에세이는 완성형이 아니고 사상과 가치관을 정립해나가는 하나의 과정에 있는 것이므로 너무 코너로 몰아부치고 비난을 해서는 안되겠지만,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백인 독재자의 입장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한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지 오웰 선생님 아닌 건 아닌 겁니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 조지 오웰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조지 오웰의 산문은 사상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고, 코끼리 사건은 조지 오웰이 아직 젊었을 때 있었던 일이라 정치적 신념과 사상이 제대로 형성되기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글에 남겼듯이 그는 어리고 교육을 받지 못해서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인 지배자의 입장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봤을 사람인지라 자신이 속해있던 위치에서의 가치관을 완전히 배제한 채 생각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후의 작품을 생각한다면 역시 초기의 작품들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제국주의, 전체주의를 경계하고, 영국에 반감을 가졌으며, 피지배층을 생각했다는 점에서 조지 오웰은 여전히 멋진 사람이자 대단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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