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코프스키의 영화 - 시간과 공간의 미로
나리만 스카코브 지음, 이시은 옮김 / B612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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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글을 쓰려면 아무래도 정성일 평론가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성일 평론가는 우리 시대의 이동진이고, 그 시대를 지나오며 그 새벽 정영음을 함께 듣던 사람이라면 정성일이란 이름은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유튜브는커녕 개인 블로그 같은 것도 없던 아날로그 시절이라서 개인이 영화에 대해 평을 하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그래서 정성일 아저씨 같은 평론가의 영향력은 굉장히 컸다. 그런 당시 씨네필의 멘토 같은 정성일 아저씨가 정영음에 나와서 틈만 나면 찬양하던 감독이 있었으니 바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되시겠다. 아무리 위대한 감독이라도 필모의 모든 영화를 잘 만들 수는 없다. 영화 역사상 단 한편의 실패작도 찍지 않은 감독은 타르코프스키 단 한 명뿐이다. 이런 식의 말을 하기도 했었는데 아무튼 정성일 아저씨의 타르코프스키 사랑은 유별났다. 솔직히 씨네필을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이야기까지 듣고 어찌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엔 어째서인지 영화를 보지 못했고, 타르코프스키를 영접하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90년대 중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세 편이 비디오로 출시가 되었고, 유작인 희생은 극장에서 개봉하기도 했지만 그땐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가 시간이 흘러 21세기에 접어들어서야 겨우 스토커와 솔라리스, 희생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는 봤지만 그 영화들에 대한 어떤 비평이나 짧은 감상조차 한마디도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영화가 너무나 난해하고 어려워서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봤지만 아는 게 없고, 이해도 못하고, 영화를 읽고 어떤 식으로건 해석을 하지도 못한 상태라 그저 정성일 평론가의 말을 빌려서 타르코프스키가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감독인지만 떠들 뿐이었다. 그래서 사실 나에게는 타르코프스키에서 정성일을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니 타르코프스키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정성일 평론가의 이야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때 정성일 아저씨가 영화 한 편 한 편에 대해 분석하고 영화를 꼼꼼하게 읽어줬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엔 감독에 대한 소개만 했을 뿐 디테일하게 영화를 디벼보진 않아서 풀리지 않는 영화의 궁금증은 늘 갈증처럼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해 못할 어려운 영화를 다시 볼 엄두는 나지 않았고, 그렇게 타르코프스키의 이름과 영화에 대한 물음은 점점 잊혀져 갔다. 그러다가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서거 40주년을 맞아 다시 그 잊혀져가던 이름이 도착한 것이다. 해외에서는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어지고 영화를 분석한 책도 많이 나왔다는데 그중 가장 깊이 있게 영화를 분석한 책이 나리만 스카코브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라고 한다. 이 책은 2012년에 타르코프스키 탄생 80주년을 맞아 출간되었는데 한국에서도 출간되었지만 절판되었다. 그러다가 올해 타르코프스키 서거 40주년을 맞아 이 절판됐던 책이 재출시된 것이다. 앞서 다시 그 이름이 도착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2012년부터 내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기다림의 시간이야말로 타르코프스키적인 시간이라고 하겠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 시간과 공간의 미로]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는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시간과 공간의 측면으로 분석한다. 타르코프스키의 미학적 체계의 핵심은 시간 그 자체에 있다. 타르코프스키의 이미지는 공간적 구성을 넘어선 '시간-이미지'이며, 이는 정성일 평론가가 타르코프스키의 이미지란 다른 감독의 이미지와는 달리 공간의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의 이미지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감독공간의 프레임을 넘어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는 데 주력한다. 일반적인 영화가 극적 긴장감을 위해 시간을 소비되는 도구로 사용한다면, 타르코프스키는 시간의 현존 그 자체를 체험하게 한다. 가령 미션 임파시블에서 성냥불이 시간 내에 붙어야 하는 사건의 조건이라면, 타르코프스키에게 성냥불은 그것이 타들어 가며 소멸하는 과정 전체를 관객이 견디게 만드는 시간의 경과이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타르코프스키는 필연적으로 롱테이크를 선택하며, 관객을 영화적 사건이 아닌 존재의 지속 속에 머물게 한다.


롱테이크는 편집을 하지 않아 시간을 닫지 않고 열린 상태로 지속적인 현장감을 추구한다. 실재 시간을 재현하여 그것을 보는 관객이 내러티브가 아닌 시간을 보는 경험을 하게 한다는 것. 타르코프스키가 이렇게 롱테이크를 사용하는 것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으로 몽타주가 시간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언제나 감춰져야 한다고 말한다. 편집이란 감독이 자신의 의도를 말하기 위한 수단인데 그것을 거세함으로서 감독의 주관적 이야기에서 객관성을 띄게 되고, 비로소 화면은 의미가 아니라 시간으로 채워지게 된다는 것. 이는 시각적 요소의 충돌에서 새로운 인식을 끌어내는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기법과는 반대 입장인 것이다. 몽타주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모호하지 않게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고, 사건을 보여주고 암시하는 데 그친다면 타르코프스키의 롱테이크는 시간 속에 머물며 변해가는사실과 본질의 감각을 전하겠다는 영화의 근본적인 목적을 실현하는 예술적 근간인 셈이다.


여기서 핵심은 타르코프스키가 롱테이크에 담아내려 한 것이 정교한 메타포나 상징적 기호가 아니라, 시간 그 자체였다는 점이다. 사건이나 움직임이 내러티브적 목적을 내려놓는 순간, 그 행위가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물리적 사실만이 남게 된다. 즉, 특정한 의미를 관철하기 위한 동작이 아니라 그저 행하는 동작이 될 때, 그 행위의 유일한 속성은 오직 시간이 된다. 이는 관객에게 해석이 아닌 시간을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다. 그래서 기존 영화 문법에 익숙해져 있던 관객들은 그 긴 시간 동안 그 화면에 담긴 의미나 의미론 적 암시를 읽어내기 위해 애를 쓰지만 결국 믿을 수 없는 지루함에 도달하게 된다. 30초 짜리 쇼츠도 재미가 없으면 바로 넘기는 요즘의 관객들에게 의미없는 행동 속에서 시간의 흐름과 그 과정을 견디라고 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어떤 심오한 뜻이 있을까 싶어 졸린 눈을 비벼가며 화면을 뚫어지게 봤지만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한 씨네필의 자괴감은 영화에서 더 멀어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타르코프스키가 이런 롱테이크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경과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한 도구는 공간이다. 롱테이크 속에서 시간적 평면성이 부각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공간적 조작 덕분이다. 롱테이크가 진행되는 동안 카메라의 이동은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대신 단일한 시점만을 제시하며, 그 결과 공간과 카메라가 동일시되면서 사물의 물질성이 오롯이 드러나게 된다. 즉, 카메라의 쇼트를 나누지 않고 하나의 시점을 유지함으로써 관객의 시선은 그 공간에 갇히게 되고, 비로소 화면 속 사물의 실체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의 대표적인 3대 롱테이크라고 불리는 스토커의 비밀의 방 시퀀스, 향수에서의 촛불 시퀀스, 희생에서의 저택을 불태우는 시퀀스에서는 각각 망설임과 지연의 시간, 지속과 반복의 시간, 경과와 소멸의 시간을 체험하게 한다. 그리고 향수와 희생의 롱테이크는 엔딩과 맞물려 있는데 이는 영화의 마지막을 하나의 끊김 없는 시간으로 지속시킴으로써, 끝남의 순간을 지연시키고 그 자체를 체험하게 만든다.


이 책은 타르코프스키가 직접 쓴 두권의 책 타이틀에 모두 들어가 있을 정도로 타르코프스키가 중요하게 생각한 시간의 개념과 그것과 셋트로 움직이는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앞서 롱테이크에 어떤 상징이나 함의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체험하게 하는 도구라는 말을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영화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시간, 공간, 사건이라는 세 요소를 중심으로 구성되므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프롤로그에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꽤나 어려운 분석이 등장한다. 그리고 나서 일곱 편의 영화를 하나씩 심층분석하는데 타르코프스키가 시간, 공간, 사건이란 세 요소로 만들어내는 철학적 체험을 소개한다. 사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그러하듯 이 책도 굉장히 지루하고 현학적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에 나오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해석부터 제대로 다 이해를 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기 전 우선 스토커를 다시 본 후 책을 통해 그 내용을 되짚어보려 했다. 하지만 역시나 오랜만에 다시 본 스토커는 여전히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책의 내용도 어려워서 영화를 분석한 그 내용들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분석 자체를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탓이리라. 그러나 전부까진 아니지만 이렇게나마 그동안 궁금해하던 스토커에 대한 의미를 분석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물론 책을 읽은 후 다시 영화를 본다면 무심코 지나쳤던 것까지 디테일하게 살펴보며 책에 써있는 내용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스토커가 끝나면 향수와 희생까지 묵시록 3부작을 조지고 싶다. 타르코프스키 영화만큼 어렵지만 알고 싶은 나리만 스카코프의 이 책도 나에겐 타르코프스키 영화만큼의 도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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