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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쇄골뼈에 넣어둬
김이율 지음, 구광서 그림 / 새빛 / 2020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 힐링 에세이에는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감성적인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픈 곳을 어루만지고 위로가 되는 따뜻한 언어들은 그런 감성적인 그림이나 삽화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아니, 감성적이고 따스한 이미지가 시각적으로도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힐링이라는 책의 목적에 부합되어서 당연히 모든 힐링북들은 그런 식의 컨셉을 차용한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다르다. 다리털이 삐져나온 깍두기 머리의 깡패아재가 책의 커버에 떡하니 드러누워 있다. 일명 이 감성깡패 아재가 이 책의 호스트 되시겠다. 힐링이 아니라 킬링을 할 것 같은 깡패라니 우리가 줄곧 보아왔던 컨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게다가 눈물을 쇄골뼈에 넣어두라니.. 이렇게나 쌩뚱맞다니 ㅎㅎ
책은 깡패 아저씨의 눈물이라는 컨셉으로 되어 있다. 왜 하필 깡패인가? 우리는 헬조선이라 불리는 이 지옥같은 한국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척스럽게 그리고 필사적으로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마치 순정을 짖밟힌 깡패처럼 처절하게 말이다. 그런 깡패같은 우리들에게도 눈물 짓는 날들도 있고 위로가 필요한 날도 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많이 흔들리고, 많이 넘어지고, 많이 외로워져서 눈물 흘리는 날도 많아진다. 흔들리는 날이 많아질수록 외로운 마음을 달래줄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워진다. 이 책은 여리지만 억척스럽게 살아야만 했던 우리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위로의 선물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감정이 정체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감정기복이 심하지도 않고, 슬픈 상황에도 소리내어 울지 않고, 기쁜 일이 생겨도 환호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인생을 겪다보니 감정을 안으로 삭히는게 익숙해지고 표현하지 않게 되면서 감정이 정체되고 안으로만 파고 들게 된 탓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젠가부터 우린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강하고, 냉정하고, 괜찮은 척 살게 되었다. 아이처럼 감정을 드러내어선 안된다고 배웠다. 그렇게 하면 정글같은 이 험한 세상을 헤처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하기만 한 나무는 부러지기 쉽다. 그래서 우린 그 많은 시간을 부러지고 무너지고 힘들어 했었나보다.
작가는 우리에게도 순정이 있었음을, 얼마나 예쁜 꽃이었는지를 기억해내라고 말한다.
강한 척 하지만 한없이 여린 사람
냉정한 척 하지만 눈물이 많은 사람
괜찮은 척 하지만 마음 쓰린 사람
우린 그런 사람이었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이해하고, 나를 응원하면서 이제 감정을 안으로만 삭히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힘들면 힘들다고 하고, 울고 싶으면 실컷 울고, 내가 행복해지는 선택을 하라고 조언한다.
작가가 책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중요하게 여기고, 아끼지 말고 오늘의 행복을 소진해야 한다. 우리네 삶은 머물지 않고 계속 흘러간다. 오늘의 행복 역시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행복을 저축하지 마라. 오늘의 행복이 흘러갔다고 다가올 날이 절망과 슬픔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다가올 내일에 미리 아파할 것도 없고, 지나간 행복에 안주해서도 안된다. 오늘을 살고, 이 순간을 받아들이며 아끼는 것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힘들고 아픈 일이 있겠지만 그것 또한 우리의 인생이고 삶의 과정일 뿐이다. 미쳐 쓰지 못한 오늘의 행복이 흘러가버리듯 힘들고 아픈 일도 거침없이 흘러가버릴 거니 걱정하지 말자. 그것이 책 전반에 흐르는 작가의 메세지이다.
카르페디엠.
책의 문구들은 감탄하며 공감하게 되는 것도 있고, 아재개그로 너무 유치하다고 느껴지는 것도 있다. 또 어디선가 들어본 문구나 식상한 맨트도 있으며, 미소짓게 만들거나 아련해지고 가슴이 찡해지는 부분도 있다. 특히 카피라이터였던 작가의 이력에서도 느껴지듯 헤드라인 같은 짧고도 강렬한 문구는 긴 문장보다 오랜 여운을 남긴다. 감성깡패라는 재미있는 주제와 웃음과 감동이 있는 즐거운 에세이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