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에디터스 컬렉션 1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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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보니, 어느새 이 책도 세 번째 읽는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삼국지를 읽었던 것처럼 이 책을 읽은 시기도 주기가 있다. 2000년대에 민음사 초판이 나왔을 때 한 번, 2010년대에 독서모임에서 한 번, 그리고 올해. 문예출판사에서 에디터스 컬렉션으로 나온 2022년에 다시 한번. 그런데, 이번에는 유독 그 느낌이 다르다. 가장 큰 이유는 부모라는 자리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 뒤라서 그럴 것이다. "그 사람 아버지가 잘못이었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하던 마담의 한마디. 이것이 이번에는 요조의 첫 번째 수기의 첫 문장(부끄러운 생애를 살아왔습니다) 보다 더 강렬했다.



요조의 수기는 10대 중 후반부터 20대 중 후반에 걸쳐 3편의 글이 나온다. 책을 읽는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로 인하여, 사실 그의 나이를 잊고서 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충분히 당황스럽고, 어이없는 인물로 읽어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막상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서 이 소설을 다시 접하게 되면, 아버지의 잘못이 맞다. 적어도 분명, "그를 눈여겨 지켜봐 줘야 했을" 어른들의 잘못이 맞다. 정말 내 속을 다 들여다보여줘도 괜찮은 사람이 있었다면, 삶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도 때로는, 나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곤 한다. 요조는 그 가면이 너무 많았을 뿐이고, 벗지 못했을 뿐이다. 그 속의 요조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신께 묻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p. 130)... 순진한 신뢰는 죄입니까?(p.132)

신께 묻습니다. 무저항은 죄인가요?(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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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김중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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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제목을 보고 떠오른 것은,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의<이터널 선샤인>이었다. 아마 무엇을 지운다는 것에서 이보다 강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없었던 이유가 클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지우고 싶은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지우지도 못할거면서, 은근 설레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리고, 가제본 책과 함께 온 딜리팅 의뢰서를 훑어봤다. 수많은 항목에 대답을 하려면, 나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했지만, 지우고 싶은 상대에 대해서도 내자신을 아는 것만큼 알아야 했다. 의뢰서 작성도 못하는데 딜리팅은 가능한 것인가. 여기서 일단, 나는 의뢰서를 접어두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딜리팅을 한다는 거 자체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할지라도, 쉽게 결정할 수 없겠지만, 사람마다 그 용도가 참으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구성이 조금 더 치밀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가독성은 굉장히 좋은 소설이다. 첫 도입부분에 박민규작가가 생각이 났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작가는 출간되면서 공개된다는데 누구일까.
(책을 읽고 나서, 중학생 딸아이에게도 읽혔는데, 내용의 흐름이 자신이 생각한 게 아니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아이가 생각한 전제는 딜리터 한명과 그를 찾아오는 고객들의 사연이 주를 이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마 달러구트 꿈백화점의 여파가 아니었을까 하는.)

p. 9
지우는 건 인간들이 최고다. 지구가 그 증거다. 나무와 풀과 온갖 생명체가 끊임없이 생겨나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지워진다. 지우는 걸 최고로 잘하는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잘 지우는 사람들이 바로 딜리터들이다. -딜리터 묵시록 중에서

p. 16~17
"나쁜 선택이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일 뿐이에요. 좋고 나쁨의 기준이란 건 누구도 알 수 없어요. 좋고 나쁜 것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고, 그냥 절박하니까 고르게 되는 거죠. 눈에 보이는 걸 급하게."

p. 73
딜리터는 현실 이외의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선지자이며, 예언가이다. 휘어져 있고, 말려 있던 숨은 레이어로 현실의 물건을 이동시키는 사람이다. 딜리터는 곧 현실의 숨은 진실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딜리터는 지우는 사람이 아니라 더하는 사람이다. 지움으로써 더하고, 더하면서 지우는 사람이다. 우주의 단위에서 보면 더하기와 지우기가 똑같음을 알려주는 존재다. 딜리터는 우주의 저울이다.

p. 85
"그럴 리가요. 저도 조이수 씨 닮아서 자꾸 거짓말을 하네요."
"저는 거짓말이고, 그쪽은 농담이잖아요. 달라요."
"비슷한 거죠. 둘 다 가짜 스토리텔링으로 현실을 속이는 거잖아요. 조이수 씨는 새로운 이야기가 자꾸 보이니까 그걸 무의식중에 내뱉는 거고, 저는 현실이 지겨워서 자꾸만 농담으로 그걸 덮어버리고 싶은 거죠. 다르지 않아요."

p. 163
"아뇨, 지금의 저를 만든 건 저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사람들일 겁니다."

p. 227
사물이든 사람이든 상처가 있는 부분에는 기억이 매달려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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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명의(아주) 짧은 역사
헨리 지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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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지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

✏ 앞에서 레고를 만들고 있던 초3아들에게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를 읽어주고 있었다. 첫시작의 문장들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가 클 것이다. '시아노박테리아'라는 단어가 내입에서 나가는 순간 아이가 나를 쳐다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가 한 말: "스트로마톨라이트!!!" 어라? 이걸 이 아이가 어떻게 알까??? 나의 쏟아지는 놀라운 찬사에 아이는 신이 나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나서 예림당의 why시리즈 중에 살아있는 화석을 가지고 와서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얼마전에 들렸다 인터불고호텔안에 있던 희귀화석인 거북이 설명에도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적혀있었다고 얘기한다.(난 거북이만 쓰다듬고 왔는데 말이지)

이 대화이후 책읽는데 속도가 붙었다. 물론 중간중간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말이다. 일반적인 지구역사나 생물체에 대한 책들은 조금 지루한 면도 없지않은데, 이 책은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며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단어와 평이한 글로 되어 있다.

✏ 입문서로 읽기에 너무너무 좋은 책이다.

📒 p. 16~17
34억 년 전쯤에는 수없이 많은 생명체가 모여 우주에서도 보이는 초(礁:암초 초)를 형성하기 시작했다......이 시기의 초는 시아노박테리아라고 불리는 미생물이 만들어낸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녹색 실과 점액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늘날 연못 위를 녹청색 찌꺼기로 뒤덮는 바로 그 생물이다. 이들은 바위와 해저를 잔디처럼 뒤덮고 있다가 폭풍이 불어오면 다시 모래에 묻히고, 이 과정이 반복되는 동안 점액과 침전물이 층을 이루며 쿠션처럼 푹신한 언덕을 이룬다. 이 언덕 같은 덩어리를 스트로마톨라이트라고 부른다.

📒 p. 217~218
폐경은 인간만이 이루어낸 또 다른 진화적 혁신이다. 포유류든 아니든 일반적인 동물들은 너무 나이가 들어 번식이 불가능해지면 노화되어 빨리 죽는다. 그러나 생식 능력이 끊긴 중년의 인간여성은 유익한 삶을 수십 년 더 누릴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더 많은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자연선택어 논리에서 아기를 실제로 누가 키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든 키워내기만 하면 된다. 번시글 멈추고 딸들의 양육을 도와주는 여성은 생식 능력을 계속 유지하면서 딸들과 경쟁할 때보다 평균적으로더 많은 수의 자손을 길러낼 수 있다......번식은 다른 곳에 쓸 에너지를 모두 빼앗아가기 때문에 보통 수명을 단축시킨다. 따라서 중년에 번식을 멈춘 인간 여성우 더많은 자손들을 키워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오래 살 수 있게 되었다.
(리처드 도킨슨은 <이기적 유전자> p.254~256(을유출판사, 2018) 에서도 여성의 폐경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여성자신의 수명보다 아이들의 기대수명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교하며 읽는 재미!^^)

(@kachibooks 에서 책을 협찬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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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송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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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와카미 데쓰야 <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 실제 고바야시 서점과 그 주인인 고바야시 유미코 씨를 모델로 한 소설. 유미코 씨의 에피소드 + 오모리 리카라는 주인공이 신입사원에서부터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 무엇인가 고민이 생기고 해결하고 싶은 일이 주어질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눌 대상이 있다는 것은, 그리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언젠가 한번은 고바야시 서점에 들려보고 싶다. 수다라도 괜찮다면 말이다.

✏ 책속에 '백년문고'라는 전집이 나온다. 100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권마다 '한자' 한 글자를 제목으로 정하고 해외구분없이 단편을 세편씩 모아놓은 앤솔러지 시리즈이다. 매력있는 구성이다.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해보니 원서로 구매가 일부 가능했다. 이 참에 오랜기억을 살려 일본어나 다시 해볼까 의욕이 불끈! (또는 의욕만 불끈!)

✏ 단순한 에피소드로 사회신입생의 성장드라마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성장을 보면서 같이 따듯해지고, 흐믓해지는 소설이다.

📒 p. 91
"우선은 하나씩이라도 괜찮으니까 일이나 회사, 주위 사람들의 좋은 점을 찾아서 좋아해 봐. 그러면 자연히 좀 더 알고 싶어질걸? 뭐든 괜찮아. 모처럼 연이 닿아서 다이한에 들어왔는데 일도 회사도 사람도 좋아하지 못하면 아깝잖아."

📒 p. 114
"자기를 비하하는 말을 쓰면 정말 얄팍해져."

📒 p. 115
유미코 씨와 대화하면 살아 있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생긴다, 이런 나여도. 어느샌가 고바야시 서점은 나의 오아시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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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플레저
클레어 챔버스 지음, 허진 옮김 / 다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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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챔버스 <스몰 플레저 small pleasures>

✏ 마지막 장을 덮으면, 맨 앞장으로 다시와서 확인을 해야 하는 소설. 그리고나면 여운이 길어지는. 😭

처녀생식에 관한 게 포인트가 아니었나? 그렇게만 알고 시작했던 소설의 시작은 기차 사고 기사였다. 이게 무슨 연관일까 계속 읽어가다보면 마지막장과 이어지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진...이라는 인물. 행복해지면 좋았을것을...그녀가 그나마 누리던(?) 작은 기쁨들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나와는 너무 다른 성향의 그녀라서, 답답하면서도 안쓰러웠는데, 그래도 아니 그래서 더 응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 이 책은 내용찾아보지말고!!! 그냥 읽어야한다. 스포하는사람 없었으면 좋겠다.

✏독서모임에서 같이 읽어보자고 해야겠다.

📒 p. 52
그녀는 평생 주의 깊게 주변을 살핀 결과 진실은 사람들이 기꺼이 인정하는 것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항상 표면이 아니라 그 밑에 더 많은 것이 있었다.

📒 p. 242
인정과 사랑을 향한 갈망은 변하지 않아요. 늙어가는 몸이 덜커덩거릴 뿐이죠.

📒 p. 329
모든 일을 두 배로 빠르게 하면 시간을 속여서 그를 빨리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 p. 339~340
"어디 가는 거에요?" 마침내 진이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워드가 말했다. "발을 멈추면 당신이 떠난다는 것밖에 모르겠어요."

📒 p. 456
불행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진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불행은 잠도 방해했기 때문에 피로를 풀지도 못한 채 일어났다.

작은 즐거움들 - 하루의 첫 담배, 일요일에 점심식사를 하기 전에 마시는 셰리 한 잔, 일주일 동안 쪼개 먹는 초콜릿 바 하나, 아직 다른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도서관의 새 책, 봄의 첫 히아신스, 단정하게 잘 다려서 개어놓은 여름 향기 나는 빨래, 눈 덮인 정원, 보물 서랍에 넣으려고 충동 구매한 문구 - 로 충분히 기운을 낼 수 있었다.

(@darambooks 의 도서협찬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책표지만큼 좋았던 책이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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