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지음, 김혜영 옮김, 가토 게이키 감수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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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이 책은, 히토쓰바시 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에 참석하는 학생들이 한일관계에 대하여 느끼는 찝찝함, 역사의 진실에 대한 답답함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프롤로그를 읽다가, 케이팝을 좋아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어른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왜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을까. 젊은 세대들의 그런 모습들을 그냥 묵인한다고만 여긴 것이다.

역사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를 수 밖에 없는 배경에 대하여 두 가지를 지목하고 있다. 하나는 교육, 다른 하나는 언론 매체의 보도방식이었다. 대충 짐작으로 이럴 것이다 생각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일본인의 글을 통하여 사실을 접하게 되니, 조금은 더 적극적인 우리의 행동이 필요하지 않나 싶었다. 더불어, 일본 내부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건 앞으로의 시대에 조금은 희망적이지않나 하는 생각도.


📒 p. 16
까끌까끌한 찜찜함, 나에 대한 실망 그리고 흔들리는 정체성. 과거에 저지른 일은 분명 폭력적이고 잔혹한 지배였는데, 어째서 나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했을까. 어째서 똑바로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알면 알수록 발밑이 기우뚱거렸다. 그래도, 그렇기에, 더 알고 싶었다. 당신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무엇에 실망했을까? 무엇을 이대로 둘 순 없다고 곱씹었을까?


📒 p. 49~50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문제가 해결될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나 대부분의 일본인이 생각하는 '사죄 및 해결'과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생각하는 '사죄 및 해결'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일본에는 문언상으로 사죄하고 이 이상 문제화하지 않는 것이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생각하는 '사죄'란 일단 일본 정부가 구체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제도가 국가 범죄임을 전제로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한 뒤 그것이 진심임을 나타내는 증거로서 국가가 배상할 것, 나아가 진정 규명, 역사 교육 등의 재방 방지책을 시행하는 후속 조치를 포함한 '사죄'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해결'이란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죄종적'이거나 '불가역적'이지 않아야 비로소 '해결'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일 '합의'는 이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사죄'와 '해결'이란 일시적인 사죄나 배상금(일본은 그것조차 내지 않았지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해서 사죄의 뜻을 밝히고 '해결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자세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즉 '사죄'와 '해결'은 점이 아니라 선이다.


📒 p. 51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것은 피해 여성들로, 이 문제는 인권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정치적으로 마무리 지을까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미 돌아가신 피해자를 포함한 모든 피해자의 존엄을 어떻게 하면 회복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햐야 함을 잊지 말자. 그러기 위해 그 배경에 있는 일본의 침략 및 식민지 지배를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 일본인은 우선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정치 문제가 아니라 인권 문제로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p. 168~169
불편한 역사를 배우는 것은 ‘자학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불편한 역사를 배우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고, ‘자신을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외면하고 싶은 사실까지 직시하고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의의 아닐까.


📒 p. 187
역사를 바라보지 않는 선택이 가능했던 것, 어려운 문제라며 그냥 회피했던 것, ‘역사와 문화는 별개’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 이것이 바로 일본인인 나의 특권이었다. 나는 굳이 일본의 가해 역사를 고민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위치였기 때문에, 아무런 고민도 없이 순수하게 한국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 p. 192
물론 무지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니 무지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순히 일본인이 가해 역사를 반성하는 데서 그친다면, 피해자의 존엄을 지키거나 차별을 없앨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당사자를 위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당사자가 직면한 ‘차별받는 현실’이 내 안에서 보이지 않은 것 같다. 어느샌가 일본인으로서의 나를 먼저 지키고자 하는 생각이 내 안에 숨어들었다.


📒 p. 212~213
피해자를 이해하는 행위에 끝이란 없다. 그 점에서는 역사 문제의 ‘벽’을 쉽게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가해 역사를 외면하고 철저하게 소수자를 억압하는 이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보호받으며 살아왔다. 내가 앞으로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든 지금도 앞으로도 일본인이며, 일본인이라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렇게 쓰면 내가 직접 나쁜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과하게 무거운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악행을 방치한 것과 과거에 직접 악행을 저지른 것, 이 두 가지가 과연 어느 정도나 다른 것일까. 직접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나는 누군가를 발판 삼아 이룬 사회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 누군가란 재일 조선인 등 일본 사회의 소수집단이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국가들에 일본이 저지른 가해 행위의 피해자들이며, 전 세계 식민주의, 인종주의, 젠더차별과 계급차별의 피해자들이다. 우리의 삶은 분명히 그들 위에 존재해 왔다.


✏️ 이런 생각을 가지고 책을 내고자 했다는 게 고맙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이 좀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고맙다. 일본의 많은 젊은 세대들이 이런 인식들을 가지고 있어준다면, 그래서 한일관계에 다른 기류가 흐른다면, 우리는 정말 가깝고도 먼나라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렇게 바른 소리만 하는 그들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했다. 괜한 기우이기를 바랄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을 고1 딸아이에게 계속 읽어주었다. 아이는 "대박! 그 사람들, 인생5회차 아닐까? 어떻게 현대를 살아가는 일본인에게서 이런 글들이 나올 수 있을까? 그 사람들 지금 살아있는거 맞지?"

아이 역시 나처럼, 그들의 안녕을 걱정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연한 생각들을 늦게라도 많이 해주었으면, 함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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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영감의 스위치를 켜라
구자영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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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영《디지털 시대, 영감의 스위치를 켜라》


일론 머스크는 2017년 세계정부정상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로봇은 인간을 뛰어넘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이 어떻게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일을 통해 인생의 믜미를 발견합니다. 인간의 노동이 필요없는 세상이 오는데 어떻게 인간은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은 아니더라도 생각의 여지를 열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 아이랑 영어기사를 찾아 그것에 대한 자기 의견을 사설로 쓰는 수행준비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찾았던 신문기사가 바로 ChatGPT의 문제점에 관한 것이었다. 책을 읽다보니 같은 기사가 나와서 어찌나 기쁘던지, 한편으로는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좀 더 풍성한 이야기를 논할 수도 있었겠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는 확실히 예전보다 편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은 맞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보면서 필요한 자료가 있을 때 , 궁금한 게 생길 때 가장 크게 느낀다. 예전같으면 하나의 책에서 궁금한 게 생기면 다른 수많은 책들을 뒤적이고 자료를 찾아야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만 열어도 그 답을 바로 찾을 수 있다. 편한거는 장점이지만, 가끔은 필요한 것 이외에는 풍성해질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필요한 자료를 찾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자료들을 발견하고는 하는데, 스마트폰의 세계에는 "필요한 것만 바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편해진만큼 게을러지는것도 추가된다.

이렇게 의존도가 높아지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보고서나 논문을 쓰면서도 ChatGPT를 이용하여 작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작권의 문제는 따로 논한다 치더라도 생각이나 사고능력의 결핍을 초래하는 것은 어찌 막을 것인가.

그리고 "정보환각현상"을 초래한다는 것도 문제가 심각하다. 정보환각현상은 ChatGPT가 생성해 낸 오류있는 정보를 진실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러한 정보를 이용하여 쓴 글이 미디어에 노출되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 문제를 바로 잡는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테슬라의 뉴럴링크가 FDA로부터 인간의 뇌에 칩을 이식하는 임상실험에 대한 허가를 받은 부분에 있었어도 분명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정적인 면들도 있지 않겠는가.
책에서 언급되는 여러 사례들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렇게 변화고 있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가 살아남는 법.
창조적 영감에 있다.


📒 p. 18
두리들 대부분은 압도적인 구위로 타자를 제압하는 강속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모두의 인생 속에는 자신만의 강력한 변화구가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 인생 속 보물과 같은 그 변화구를 발견하게 하는 힘은 바로 영감이다.


📒 p. 34~35
영감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진정한 자신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나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또한 각자가 모두 자기 인생에 단 하나뿐인 원조, 오리지널 걸작이라는 자부심과 자존감의 발견이다. 그리고 영감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


📒 p. 70~71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는 문장 속 단어들 사이의 패턴을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내어 문장의 맥락을 학습하는 모델이다. 이러한 언어 모델을 활용하게 되면 문장속에 나타나는 분위기, 맥락과 같은 고차원적인 요소들을 AI가 학습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AI는 데이터에 라벨을 붙여서 학습하였다. 반면 지금의 AI 는 사전에 학습한 데이터 안에서 스스로 언어를 생성하고 추론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 p. 73
물리적 노동에 이어 지적 노동의 영역 즉 생각마저 인공지능에게 아웃소싱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을 아웃소싱당한 인간은 건전한 대안 없이는 타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고유의 영역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언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 존재의 중요한 의미를 준다. 점점 생각하지 않는 인간과 오히려 생각하는 AI의 출현이라고 할까?


📒 p. 138
인공지능과 인간의 문제도 결국에는 집단화, 최적화되고 패턴화된 지능 집단(AI 시스템)과 개인의 문제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생성해 낸 무수히 많은 데이터를 학습해서 만들어진다.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의 집단 지성 총체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인간 집단 지성의 총체가 진실의 실체에 얼마나 가까운가는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이 내어 놓은 정확한 지식과 답변 결과물들이 집단 지성을 대변할 수 있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때론 진실과 먼 혹은 어떤 한 인간 혹은 작은 조직의 직관과 초월적 진리에 대한 답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는 점이다.


📒 p. 163~165
창의성과 유사한 창발성은 하위 차원의 존재들로 있을 때는 의미가 없다가 그러한 하위 차원들이 모여 상위 차원을 구성할 때 의미가 갑자기 발현되는 현상이다.

심리학자 루웬스는 이러한 창발성은"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존재 간의 협력"이라고 표현했다. 즉 창발성은 서로 다른 것들을 서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우연한 만남으로 새로운 의미를 가진 것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우연성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발생되어 사물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러한 연결성은 기술 간, 산업 간, 학문 간 융합이 가속화되는 디지털 시대에 더욱 필요한 역량으로 부상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창발성은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능력이다. 인공지능은 규정에 기반한 알고리즘에 의해 설계되고 작동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과율의 세계에서는 번뜩이는 우연성에 의한 비선형적 사고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진 우연적인 창발성은 디지털 시대의 인간이 인공지능에 비해 차별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 p. 188
디지털 과잉이 불러오는 가장 큰 폐해 중 첫째는 자기주도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생성형 AI가 발전함에 따라 더욱 심해졌다. 인간이 이러한 디지털 기술에 생각을 아웃소싱하게 되면 인간의 고유성인 사유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수동화되기 쉽다. 디지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 스스로의 독창적인 서사는 빈약해진다. 발터 벤야민은 "서사 예술이 희귀해졌다면 정보의 확산이 이러한 사태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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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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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모예스 #미비포유 #도서협찬 #다산북스 #소설추천 #영화도좋고책도좋고👍👍👍

📚 조조 모예스《미 비포 유 me before you》

이 책은 세 번째이다. 영화까지 포함하면 네 번째라고 할 수도 있다. 우연히 보게 된 영화가 너무 좋아서, 원서를 읽었다. 그다음은 중학생이었던 딸아이에게 번역판을 사주고 그 책으로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수행준비를 하면서 한번 더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아름다운 표지의 개정판으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모든 "좋은" 책이 그렇겠지만, 읽을 때마다,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참 다르다. 책을 읽게 되는 간격 사이에, 내가 지나쳐 온 시간들과 상황들이 책의 다른 부분들을 보게 한다. 찾게 한다.

이 책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사랑이라는 것에 꽂혀 책을 보다가 설레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정말 감정이 요동치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루이자의 입장에서, 그 다음은 윌의 입장에서, 그리고 이제야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똑같이 드는 생각은, 내가 윌이었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거라는 생각이다.

📒 p. 352
간병인 일에서 가장 나쁜 점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지도 모르겠다. 이것저것 들어 올리고 청소를 하는 일도 아니고 아득하지만 항상 코끝에 느껴지는 소독약 냄새도 아니다. 심지어 다들 내가 다른 직업을 가질 만큼 똑똑하지 못해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는 사실조차 최악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하루 종일 누군가와 딱 달라붙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의 기분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의 기분에서도.

✏️ 이번에 읽으면서 이 문장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윌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도 이런거 아니었을까. 사랑이라는 감정이 충만할 때는 상대의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에 그 힘이 나약해 졌을 때는 루이자는 다시 간병인의 느낌을 오롯이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이 넘치던 남자가 사랑이라는 것에 잠시 매달려 있다가 그 느낌마저 사라진 순간에 죽음이 생각난다면 그때는 죽는거 조차 편안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 p. 500
"미안해요. 내겐 충분하지 않아."

그는 말하기 전에 잠시 기다렸다. 이번에는 꼭 정확한 단어들을 골라야만 하겠다는 듯이. "난 그걸로 안 돼요. 이. 내 세상은, 아무리 당신이 있더라도 모자라. 진심으로 말하지만 클라크., 당신이 오고 나서 내 삶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달라졌어요. 그렇지만 그건 충분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에요."

✏️ 이 뒤에 세 장 정도에 걸쳐 윌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제일 마음이 아팠던 부분이다.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었던 한 개인이, 이제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을 때, 휠체어라는 것에 갇혀서 그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이 느끼는 자괴감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루이자를 만나고 순간적인 행복이 다가 오는 순간은 분명 있었겠지만, 그 뒤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느낌은, 그 행복을 알게 되는 순간 이전보다 훨씬 더 비참했을 것이다.

📒p. 575(옮긴이의 말 중에서)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소회를 하나 덧붙인다. 요즘 나는 무슨 일을 하든 그 근저에 두려움이 동기로 작용하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자율적인 선택이라고 착각했던 여러 행동들이 사실은 상처받거나 실망하거나 실패할까 두려워, 혹은 타인의 눈이 두려워 공포를 피해 타협한 회피였다는 자각이 어느 날 퍼뜩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삶이 그리 길지 않으며 죽음이 필연이라면 한순간이라도 두려움에 마비되어 허비할 수는 없다. 삶의 고삐를 쥔다는 게 누구에게나 허락된 사치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 삶을 결정하고 책임질 힘은 내가 내 마음속에서 발견해야만 한다. 《미 비포 유》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그런 마음의 결의를 어루만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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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도슨트가 알려주는 전시 스크립트 쓰기 - 진심이 닿는 전시 해설의 노하우
김인아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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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아《미술관 도슨트가 알려주는 전시 스크립트 쓰기》


✅️ 출판사에서 "이 책이 필요한 독자" 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아래와 같다.

*미술관 도슨트 활동을 희망하는 예비 도슨트
*명료하고 체계적인 스크립트를 작성하고자 하는 도슨트
*미술관에서 이루어지는 전시 해설이 궁금한 미술 애호가
*스크립트 분석을 통해 예술 작품과 전시에 대한 이해를 더 넓히고 싶은 분
*미술관은 아니지만 여행지의 가이드나 사물·행사 등을 잘 설명하고 싶은 콘텐츠 크리에이터
*그 외 콘텐츠를 전달하는 작업의 일선에 있는 분

여기에, 하나 더.
나처럼 도슨트에 대해 어설픈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추가.


✏️ 왜 도슨트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스크립트가 있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단지 작품에 대해 알고 있는 사항들을 전달하는 것이라 여겼다. 아마 도슨트를 자원봉사하는 분들로만 생각해서 그런 이미지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p. 22 우리나라는 1968년 시행된 국립중앙박물관의 도슨트 제도가 최초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호암갤러리와 국립현대미술관 등 미술관에서 도슨트 제도가 시작되었고, 기관마다 전시해설사, 투어 가이드, 전문자원봉사자, 도슨트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미술관 직원인 큐레이터와 자원봉사자인 도슨트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도슨트는 미술관의 직원이 아니다. 대부분의 국공립 미술관에서 도슨트의 지위는 문화자원봉사자, 전문자원봉사자 등의 자원봉사자라는 역할로 인식된다. 소정의 활동비를 받긴 하지만 자원봉사자로서 도슨트라는 위치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기꺼이 나누는 역할이지 물질적인 재화를 바라는 자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 특정한 교육을 받고, 관람객들에게 설명을 하기 위해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일정이 끝나고 나서는 그날의 일지도 써야 되는 것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것들이다.

✏️ 이 책은, 도슨트 활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최적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크립트를 쓰기 위해서 자료를 어떻게 수집하고 정리해야 하는지, 자료수집하는 과정에서 현장투어가 스크립트의 구조나 분량조절을 하는데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무엇을 자료로 하여 써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서술해 나가는지, 왜 큐레이터의 전시제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작품해설에서 어떤점이 고려되어 햐는지, 어떤 작품을 선택해서 어떤 동선을 따라갈 것인지 등등 너무나 현실적인 설명들이 가득했다. 이만큼 친절한 해설서가 있을까 싶었다. 실제 전시된 전시회들의 예시를 곁들여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도 좋았다.

✏️ 관람객을 상대로 한 것이니, 스크립트를 쓰는 것뿐만 아니라, 작성한 스크립트를 어떻게 말로 소화해 낼 것인지도 설명하고 있다. 현장의 경험이 그대로 살아 있는 다양한 사례들이 있어서 읽는 재미도 있었다. 도슨트로 설명하려고 준비중인데 다가온 관람객이 아무도 없었던 경우나 두명이 설명을 듣다가 각각 다른 방향의 그림으로 갔다는 설명에서는 글을 보고 있는 나조차 당황스러웠다. 아...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 그림을 볼 때는 나만의 방식으로 느껴봐야 한다는 주의라, 아니 어쩌면 다른 사람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림을 보면, 내가 느낄 수 있는 부분에 방해를 받는다고 생각해서 한번도 도슨트의 설명을 가까이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책을 보고 나니, 다음에는 도슨트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한번 주의깊게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나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p. 287
간결하게 핵심을 전달하는 것. 그것은 도슨트 해설의 가장 기본기조일 것이다. 백과사전처럼 많이 아는 것, 아는 것을 모두 말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작품이 쉽든 어렵든, 그것에 대해 도슨트가 모든 것을 이해시킬 수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해설 사이사이에 말줄임표나 띄어쓰기 같은 빈 공간을 마련해두고, 관람객이 스스로 숨 쉬고 느낄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한다. 그래서 도슨트로서 실제 현장에 서기 위해 스크립트를 쓰고 말하는 것은 도슨트가 알고 있는 많은 정보 중에서 취사선택하는 능력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외의 도슨트 해설은 '적절한 작품 감상으로의 유도'라는 목적을 달성하도록 말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는 동시에 그 말에 옭아매는 덫을 놓지 않는 해설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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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라이프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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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라이프 #마루야마마사키 #블루홀식스 #도서협찬
#일본소설 #강력추천

📚 마루야마 마사키《원더풀 라이프》

들어가기 전에 일단 강추!!!👍👍👍👍👍

✏️ 처음 접해보는 일본작가이다. 그런데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있다.

✏️ 이 작품은 무력의 왕, 한낮의 달, 불초의 자식, 가면의 사랑이라는 소제목으로 번갈아가며 네커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이 커플들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것이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다시 앞으로 슬슬와서 확인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묘미.
물론 책을 읽는 도중에도 혹시, 설마 하는 부분들이 간혹 등장하기는 한다.

✏️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깊었던 그리고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던 부분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었다. 내가 차이를 두고 배려하려는 부분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차별과 구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듯했다. 그냥 그럴수도 있지 않겠냐는 의식속에 나도 모르는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p. 215~216
복지 관게자들은 차별 없는 사회를 외치며 '이해'와 '지원'이라는 단어를 입에 자주 올린다. 그러나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모두가 우리 같은 장애인들에게 익숙해지는 일이라고 도시하루도 늘 생각했다.
지금으로서 우리는 일반인들의 눈에 '기형적인 존재'다. 편견과 차별 이전에 애초에 자신들의 세게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만나기를 두려워하고 기피한다.

아무리 그래도 조금 더 눈에 띄는 곳에 존재해도 되지 않을까. 보이지 않으니 깨닫지 못한다. 만나지 않으니 알지 못한다. 우리 같은 장애인의 존재를. 당신들 건강한 사람들처럼 우리도 똑같이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기뻐하고, 웃고, 욕망하고, 분노하고, 슬퍼한다는 사실을.

✏️ 그리고 장애를 가진 자식들을 살해한 부모들에 대한 신문기사를 언급하면서 나오는 문장들도 그 생각하는 결이 좋았다.

p. 314
어떤 사람에게 인격이 있느냐 없느냐는 남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 사건도......그러니까 어머니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햏고, 그래서 다들 동정도 하겠지만 아이의 마음은 아무도 모르겠져. 아니, 대부분 알려고 하지도 않을 거예요.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심정은 이것저것 추측하거나 가타부타 이야기하지만, 살해된 아이가 어떻게 느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게 현실이니......

✏️ 가끔 경제적 이유든 어떤 이유로든 어린 아이들과 동반자살을 하는, 또는 아이들을 먼저 죽이고 자신들도 뒤따라 죽는 사건들을 볼 때 내가 늘 가졌던 생각이다. 왜 그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생각하지 않을까. 그 아이들은 다른 미래가 있을수도 있고, 살고 싶을 수도 있는데, 왜 그 아이들의 생각은 부모조차도, 사회도 안중에 없는 것일까.

✏️ 작가는 소설속에 직장내 성희롱이라든지,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것이라든지, 건축에서의 배제예술을 인물들의 대화속에서 툭 던져놓는다.
동일본 대지진은 2011년, 9.1이 넘는 거대지진으로, 사상자는 말할 것도 없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를 불러와 현재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지진이다.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로도 연결될 수 밖에 없는.

✏️ 소설 속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멋진 인생!>이다.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p.331 영화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당신이 살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게 만드는 영화라고 나온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야 왜 이 소설의 제목을 이렇게 지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소설속의 인물들에게도, 현실속의 우리들에게도 이걸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스스로의 존재를 하찮게 여길지 몰라도 사실 우리가 없는 이 세상은 더 의미없고 별볼일 없으므로, 우리의 존재가치는 대단하다고, 우리가 사는 이 삶이 멋진 인생 아니냐고 말이다.

✏️ 오늘밤은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멋진 인생>이라는 영화를 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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