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터 - 사라지게 해드립니다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김중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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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제목을 보고 떠오른 것은,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의<이터널 선샤인>이었다. 아마 무엇을 지운다는 것에서 이보다 강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없었던 이유가 클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지우고 싶은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지우지도 못할거면서, 은근 설레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리고, 가제본 책과 함께 온 딜리팅 의뢰서를 훑어봤다. 수많은 항목에 대답을 하려면, 나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했지만, 지우고 싶은 상대에 대해서도 내자신을 아는 것만큼 알아야 했다. 의뢰서 작성도 못하는데 딜리팅은 가능한 것인가. 여기서 일단, 나는 의뢰서를 접어두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딜리팅을 한다는 거 자체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할지라도, 쉽게 결정할 수 없겠지만, 사람마다 그 용도가 참으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구성이 조금 더 치밀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가독성은 굉장히 좋은 소설이다. 첫 도입부분에 박민규작가가 생각이 났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작가는 출간되면서 공개된다는데 누구일까.
(책을 읽고 나서, 중학생 딸아이에게도 읽혔는데, 내용의 흐름이 자신이 생각한 게 아니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아이가 생각한 전제는 딜리터 한명과 그를 찾아오는 고객들의 사연이 주를 이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마 달러구트 꿈백화점의 여파가 아니었을까 하는.)

p. 9
지우는 건 인간들이 최고다. 지구가 그 증거다. 나무와 풀과 온갖 생명체가 끊임없이 생겨나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지워진다. 지우는 걸 최고로 잘하는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잘 지우는 사람들이 바로 딜리터들이다. -딜리터 묵시록 중에서

p. 16~17
"나쁜 선택이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일 뿐이에요. 좋고 나쁨의 기준이란 건 누구도 알 수 없어요. 좋고 나쁜 것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고, 그냥 절박하니까 고르게 되는 거죠. 눈에 보이는 걸 급하게."

p. 73
딜리터는 현실 이외의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선지자이며, 예언가이다. 휘어져 있고, 말려 있던 숨은 레이어로 현실의 물건을 이동시키는 사람이다. 딜리터는 곧 현실의 숨은 진실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딜리터는 지우는 사람이 아니라 더하는 사람이다. 지움으로써 더하고, 더하면서 지우는 사람이다. 우주의 단위에서 보면 더하기와 지우기가 똑같음을 알려주는 존재다. 딜리터는 우주의 저울이다.

p. 85
"그럴 리가요. 저도 조이수 씨 닮아서 자꾸 거짓말을 하네요."
"저는 거짓말이고, 그쪽은 농담이잖아요. 달라요."
"비슷한 거죠. 둘 다 가짜 스토리텔링으로 현실을 속이는 거잖아요. 조이수 씨는 새로운 이야기가 자꾸 보이니까 그걸 무의식중에 내뱉는 거고, 저는 현실이 지겨워서 자꾸만 농담으로 그걸 덮어버리고 싶은 거죠. 다르지 않아요."

p. 163
"아뇨, 지금의 저를 만든 건 저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사람들일 겁니다."

p. 227
사물이든 사람이든 상처가 있는 부분에는 기억이 매달려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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