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 미국 단편소설의 코드 - 예술 감상을 위한 미학 세미나
한동원 지음 / 미술문화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로테스크,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최소한의 음절로 정의하자면 "괴기함", "공포와 위트" 정도가 된다. 하지만 원래 그 스펙트럼이 넓어 이렇게 간단히 정리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이전보다 그 윤곽이 선명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수준 높은 분석과 해석

본문은 필자가 선별한 단편소설을 소개하고 해석하는 내용이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배경설명, 요약, 분석, 해석으로 이뤄진다. 
해당 소설을 읽지 않아도 될 만큼 작품 설명이 상세하고 친절하다. 

그리고 이 책의 압권인 부분으로 이어진다. 주요 사항에 대한 탁월한 분석이 작품 감상의 깊이를 심연으로 끌고 가고, 해석은 때론 현미경처럼 보이지 않는 비밀을 알려주며, 때론 망원경처럼 그 소설이 속해 있는 은하계를 조명한다. 

한마디로 저자의 주를 읽고 읽지 않음은 큰 차이를 가져온다. 
문학을 온전히 읽으려면 이 정도의 분해와 재구성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독자는 이 백미 부분을 봄으로써 그 단계에 다가갈 수 있다. 


단편소설 개념의 정립

제일 사랑 받는 장르이지만 소설에 대해 설득력 있게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자는 이 과제를 해결해준다. 한자 및 영어 어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단편소설이 왜 그렇게 일컬어지는지를 한 번에 납득할 수 있게 제시한다. 

요약하자면 기존의 거대한 영웅시 또는 서사시, 그리고 주류의 역사 담론 등과는 다른 "힘을 뺀" 서사이자 "새로운" 형식으로서 단편소설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강조한다. 소설을 줄인 것이 단편소설이 아니라, 단편소설을 늘린 것이 소설이라고. 
즉 단편소설은 무언가를 짧게 자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미학적 완결성과 효과의 통일성을 지닌 형식이라는 것이다. 
이 정의는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 중 하나이다. 

또한 단편소설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하고 자기의 입지를 확고히 해왔는지,
작가들은 이 새로운 형식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도 알려준다. 


뛰어난 평론가들이 많다

이 책 저자는 간략하다 못해 아주 부실한 프로필만 남겼다. 
장난 같은 필자 소개는 대게 아마추어나 함량 미달의 증거이다. 
따라서 제목과 표지를 안 봤다면 읽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서 후에는 올해 읽은 빼어난 책들 중 하나가 되었다. 
웹 검색을 해봐도 저자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학계, 문학계 등에서 그리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아닌 듯하다. 
하지만 지금껏 서술했듯이 이 책은 대단하다. 단편소설을 통찰하는 식견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미학, 평론에서마저 숨은 실력자들이 많다. 
섬뜩하고 재밌다. 

#그로테스크 #미국단편소설의코드 #한동원 #미술문화
#책과콩나무 #책과콩나무서평단 #책과콩나무리뷰단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use6024 2024-12-20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훌륭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책을 선택하고 읽는 데 도움이 되네요
 
성공의 문을 여는 마스터키 -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풀어낸, 반복 가능한 24주 성공 프로젝트
찰스 F. 해낼 지음, 강주헌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자연적, 영감의 힘을 강조하는 주장은 점점 입지를 잃어간다. 
현 시대는 직관보다는 증거, 감정보다는 이성이 더 높은 수준의 사유적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불변의 물리 법칙이 있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법칙이 있다고 말하며, 
전자가 그렇듯, 그 마음 속 진리를 탐구하고 활용하다면, 이 세계를 더 잘 이해하고 그 가치를 향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필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종류의 주장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편견과 경시가 해소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저작의 핵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항상 갈등하고 고민하는 사람, 환경, 상황은 자연적, 필연적으로 조화로움을 성취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며, 
따라서 마음을 훈련하고 단련하면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수련의 대상에 대해 부연하여 설명하는데, 우선 마음이라는 것은 감성, 지각, 상상력 등으로 세분화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세 가지의 주요 심적 작용(감성, 지각, 상상력)이 앞서 언급한 '사람, 환경, 상황'과 느슨하지만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감성 작용이 가장 중요하고, 환경에 대해서는 지각 작용이 가장 필요하며, 상황에 대해서 가장 발휘되고 효용이 있는 건 상상력이라는 작용이다. 
 
즉 마음을 단련하는 것에서 성취를 이루면, 고뇌와 갈등을 주는 사람, 환경, 상황에 있어 우리의 역량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 단련에 있어, 도덕성 함양이 필수적인데, 그 도덕성은 '도덕적 목적'이 있어야 존재 가능하다는 점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렇게 앞서 언급한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서술이 진행될수록 방대해져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결집하여 체계를 이룬다. 
그리고 필자가 자연적, 필연적으로 이르게 된다는 조화로움의 성취는 마음의 단련으로 일깨워지는 창조적인 힘(무한한 잠재력)으로 인해 더욱 추진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아울러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삶의 광활한 의미와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p.s. 위에서 말했듯이, 사람, 환경, 상황이 우리에게 고뇌와 갈등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은 자의/타의적으로 대게 부정적인 감정(두려움, 걱정, 무력감, 열등감)에 휩싸이기 쉽고,
환경은 (사람의 감각의 한계로 인해) 지각과 인식의 함정(기만과 오해)이 항상 존재하며,   
상황은 대부분 역경과 위기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공의 문을 여는 마스터키 #현대지성 #찰스F해낼 #강주헌
#디지털감성e북카페 #디지털감성e북카페서평단 #디지털감성e북카페리뷰단


<이 글은 디지털 감성 e북 카페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돼지의 피
나연만 지음 / 북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인이라는 행위는 인간에게 신성(divine)을 부여한다. 
생명이라는 고귀한 본질을 앗아가는 주체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신성은 선이 아니라, 악이므로, 좀 더 정확히 지칭하자면 암흑의 신성(악마성)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항상 문학, 예술에서 살인은 빛을 잃지 않는 소재이다. 
그리고 이 책 역시, 그 살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 전면에서 독자들에게 제기하는 주제는 살인의 행위 및 그 종류에 대한 물음이다. 
첫째, 복수를 위한 살인, 둘째, 쾌락을 위한 살인, 셋째, 유전적 본능으로서의 살인.

극 중에 등장하는 이 셋은 어떻게 다른가, 또한 그 중 일부는 구원 받을 수 있는가.
첫째는 의지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이고, 둘째는 쾌락은 거부할 수 없는 측면에서 반(semi)의지적, 반능동적 행위이며, 셋째는 거부할 수 없는 의존적, 피동적 행위가 된다.  
그리고 태생적, 사회적으로 이 모두는 구원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행위로 자기 자신만은 내적인 구원에 다가갈 수 있다. 
첫째는 고통의 해소를 통해 외적으로 주어진 지옥을 타개할 수 있고, 
둘째는 쾌락적 감정승화를 통해 자기의 본능적 불만족을 충족하게 되며, 
셋째는 운명과 굴레에 순응함으로써 더 이상 고뇌와 내적 불화를 겪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렇게 금기 행위이지만, 사람을 미혹하는 살인은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 그것이 바로 '돼지의 피'이다. 

즉 돼지의 피는 인간의 추악함과 악마성이 내놓는 대가를 상징하며, 
(종종 인간은 생물학적, 문화적 측면에서의 밀접성으로 인해 돼지에 비유된다)
동시에 살인의 부산물이자, 살인의 자각을 촉발하고 악의 세계에 돌입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상이다.   

그리고 이렇듯, 저주 받은 인간성의 굴레는 본문의 한 구절처럼 '죽어야 끝난다'.


p.s. 살인과 본능에 대한 최고의 수작으로 영화 '미스터 브룩스'가 있다. 


#돼지의피 #나연만 #북다
#디지털감성e북카페 #디지털감성e북카페서평단 #디지털감성e북카페리뷰단


<이 글은 디지털 감성 e북 카페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황하는 박우만의 사회
박해석 지음 / 파라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정성과 투지의 중간계

그의 시들은 서정성과 자조가 주된 정서로 보이지만, 투지와 투쟁 역시 정면을 향해 존재감을 내보인다. 
이 양립하기 어려운 두 축이 균형을 이루며, 한없이 갸날퍼서 도피하는 듯한 순수시와 너무도 강직해서 틈이 보이지 않는 사회시의 양단을 모두 포용한다. 
그럼으로써 독자는 모두가 일어서는 사회의 중앙광장에 자리하다가도 어느새 고향과 가족,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이런 자연스럽지만 의도된 듯한 전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사회에서 하루와 일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그곳에서 얻는 손상과 상처는 그 반대편에서 얻게 되며, 그런 우연적이지만 동시에 필연적인 반복이 있어, 서정성과 의지라는 이원적인 생의 원천을 에너지 삼아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 방황하는 박우만이 고향에 들러 마음과 세상을 다시 관조하며, 그 표류의 세계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여정이 바로 인생이라는 본질을 알아차리게 한다. 

특히, 그가 쓴 'Heaven과 Hell이 타성받이가 아니거늘'에는 이런 의미가 총체적으로 담겨있다. 
박우만은 허락된다면 연옥이라는 데서 얼마간 서 있고 싶다고 말하며, 
천국과 지옥은 손바닥과 손등이 한살이이듯, 서로 눈 흘길 타성받이가 아니겠거니, 하고 중얼거린다. 


프로페셔널 시인

많은 이들이 시는 논리적 구조와 개연성이 떨어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 함축성과 시적인 비약으로 인해 시는 원래 뚜렷히 이해될 수 없는 장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도로 집약된 의미, 문학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감정의 승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더욱 논리적이고 개연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미디어의 발달과 글쓰기의 용이함으로 인해, 수많은 필자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위와 같은 기본 요건을 충족하는 저작들은 점점 드물어진다. 
 
따라서 이런 토양 위에서 이번 시집은 자신의 위상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수십년 간 문학적 언어를 갈고 닦고, 사회적 시야를 방치하지 않으며, 
전자를 통해 후자를 표현하고 구성하며, 인생이라는 모두의 과제를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내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세상의 마지막 날에, 비가 그치고 몇 개의 물방울이 떨어지는 날에,
그 물거품에서 자신의 인생의 허무함을 탄식하지 않고,
그 물방울 소리의 길을 타고 무한의 세계로 사라질 수 있기를 염원한다.       


#방황하는박우만의사회 #파라북스 #박해석
#책과콩나무 #책과콩나무서평단 #책과콩나무리뷰단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성당들이 희었을 때 - 새로운 시대의 탄생, 르코르뷔지에가 바라본 뉴욕의 도시
르 코르뷔지에 지음, 이관석 옮김 / 동녘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장의 스케치

여기서 스케치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문자 그대로 그림으로서의 스케치와 비유적인 표현으로서의 스케치.

전자는 본문에 실린 그의 간단한 스케치들인데, 
양이 많지는 않지만 건축계의 거장이 직접 남긴 흔적답게 선이 정갈하고 보여주고자 한 핵심을 잘 드러낸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지만, 
도시, 거리, 건물, 자신의 단상, 요약, 예측을 담고 있어 마치 소장가치가 있는 희귀본과 같은 감흥도 준다. 

후자는 그가 표현하는 사회, 도시, 문화 등에 대한 스케치이다. 
그는 건축에만 시선을 머물게 하지 않고, 도시의 여러 요소들, 문화적인 다양한 분야들, 그리고 그것들이 총체적으로 결합한 사회에 대해서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그 생각을 이 책에 남긴다. 
그리고 건축 외 부문에 대해서는 아마추어적인 기저를 노출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위인답게 숙성된 통찰, 빛나는 지성, 고준위의 소양을 마음껏 발휘한다. 
따라서 독자는 그의 서술을 따라가며, 건축 외에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다각적인 면을 돌아볼 수 있다. 

이 두 종류의 스케치를 통해, 미적인 즐거움과 지적인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하는 그의 역량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거장의 글쓰기

다음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그의 문장력이다. 
높은 수준의 비유와 상징을 뽐내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독자들을 매료시키지만, 
본문의 내용은 예상을 뛰어넘어 놀라운 성취를 내보인다. 
건축가는 흔히 글쓰는 사람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그는 달랐다. 
여러 측면을 함축하고 있는 입체적인 묘사와 서술, 자신의 아이디어를 뚜렷히 전달하는 문단,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위트 있는 비유, 자신의 고찰을 품위 있게 풀어내는 문학적 소양은 독자로서 놀라움을 느꼈다. 
건축가로서 글마저 논리적으로 구축해갈 수 있는 그의 능력이 엿보인다. 

또한 그 당시 시대의 변화, 새로움의 발현을 본질적으로 짚어내는 식견도 빼어나다. 
예컨대, 1930년대의 조류, 뉴욕의 부상 등을 보며, 기계문명이 수많은 개인과 집단의 작품 속에 등장하고,
그 모든 형태를 바꿔놓고 있다고 서술했는데, 이는 지금 시점에서 볼 때 정말 정확한 통찰이자, 예언이었다. 
아울러 이런 흐름은 현 시대의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신기술의 급진전의 상황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주기도 한다. 

제목에서의 '희었다'는 의미는 새 시대의 자신감, 새로움, 전도유망함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만큼이나 분명하고 에너지에 가득찬 것이 그의 저자로서의 재능이다. 



#대성당이 희었을 때 #르코르뷔지에 #이관석 #동녘
#책과콩나무 #책과콩나무서평단 #책과콩나무리뷰단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