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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강대국은 책임지지 않는가 -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하여
비비안느 포레스테 지음, 조민영 옮김 / 도도서가 / 2025년 3월
평점 :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통곡의 벽을 연상시키는 견고한 벽에 사제복을 입은 이가 손바닥을 대고 있다.
얼굴은 안 보이지만 비애와 좌절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모습이 담긴 것은 마치 드러난 틈새로 보이기도 하고, 칼에 찢겨진 상처로 보이기도 하는 팔레스타인의 형태이다.
이 책은 영원한 미제로 남을 것으로 보이는 중동 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장 먼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저자의 압도적인 통찰이다.
사회라는 대상을 본다고 한다면, 그의 수준 정도는 되어야 본질을 꿰뚫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는 첫 페이지부터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끝으로 갈수록 그 매력은 증폭한다.
특히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의 근원적 기원은 20세기 유럽의 강대국들에게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내용이 빼어나다.
아울러 유대인의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의 서막에는 그 당시 유럽의 암묵적 동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부분도 압권이다.
이 외에도 찬사를 보낼 만한 문단과 문장이 수두룩하다.
예컨대, 2차 세계대전의 승리로 무너뜨린 건 독일이라는 침략국일 뿐, 나치주의에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
지성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어떻게 차별주의를 낳고 그것이 어떻게 뿌리 깊게 고착화되는지,
팔레스타인을 대하는 유대인의 태도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자신을 괴롭힌 제국주의 및 나치주의와 유사하다는 것,
현재 세계가 겪고 있는 온갖 부조리와 왜곡의 제공자인 유럽은 평화를 누리고 있고, 그 후유증과 회개는 중동에 요구하고 있는 현실 등등.
단순히 교과서 혹은 역사책에서 표면적으로 서술하는 내용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숙하고 지성적인 시각이란 무엇인지 강렬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해결이 불가능해보이는 중동 분쟁에 대해,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솔루션까지 제시한다.
그건 바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자신들의 불행을 가져온 강대국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각자 독립된 정체성을 인정하고, 화해시키려는 강대국들보다 그들 서로가 더 가깝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아울러 그런 인식을 기반으로 서로 정치적, 언어적, 직접적인 대립과 대화를 진행해야 하며,
그것을 위한 새로운 언어와 프로토콜을 개발할 것을 제안한다.
그 대립과 대화가 때때로 신랄하고, 모욕적이며, 무례하고, 잔인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