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얼굴
아베 코보 지음, 이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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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얼굴이 바뀐다는 건 자유를 부여한다
나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자유, 사회의 관습과 굴레를 무시할 수 있는 자유를 말이다

이 책은 그렇게 얼굴이 사라지고 바뀐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장 큰 장점은 아베 코보라는 거장의 문장을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사는 서사대로, 그 진행 과정 중 관념적 사유는 사유대로, 무엇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특히 가면으로 인한 타인화에 대해 한없이 천착해들어가는 사념적 묘사는 이 소설의 압권이다

예컨대 가면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수단적이지 않는 절대적 목적의 자유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서술은 단번에 독자를 사로잡는 명문이다
가장 순수한 자유의 소비를 갈망하는 극 중 주인공의 생각은 너무나도 사실적이면서 심오하다

또한 가면으로 인한 정체성의 위장은 세간의 관습에 대한 중대한 파괴행위가 된다고 설명하는 내용도 작가의 빼어난 묘사력을 보여준다
알리바이 관념의 붕괴라는 말로 설명하는 현상학적 서술이 기억에 남는데, 그는 가면으로 인해, 낯익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뒤섞여, 타인을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의심할 근거조차 잃어버린다고 말한다
즉 확실한 근거로 삼을 만한 기반들이 사라지며, 인간관계의 파산상태로 공중에 매달려 있게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정체성이 사라지고 투명해짐으로써, 보이지 않는 불안감에 벗어나려 잇따라 새로운 가면들을 교환해나가기 시작하는 군상을 예측하기도 한다
그는 이렇게 되면, 개인이라는 말은 공중화장실의 낙서에서밖에 볼 수 없는 음란한 글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통찰을 소설 속에서 제시한다

저자는 이런 반복되는 파산, 무중력의 상태 속에서도 과연 인간은 나름대로 새로운 약속,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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