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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 ㅣ 열다
로베르트 발저 지음, 자비네 아이켄로트 외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7월
평점 :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땀을 닦을 손수건과 햇볕을 가져줄 작은 모자만 있으면 된다.
나무들이 있는 숲으로 가는 건 우리를 소박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살았던 이 책의 저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00년 가까운 시간의 간격이 무색해진다.
그러고 보면, 숲이란 원래 그랬다.
우리의 분주한 시간을 늦춰주고, 세속적인 시간의 간격을 메운다.
이 책은 전나무와 떡갈나무를 사랑한 한 작가의 숲에 대한 예찬 모음집이다.
가장 큰 강점은 우리 모두가 간과하거나 막연하게 여기고 있는 숲의 본질을 상기시켜준다는 것이다.
숲은 유사 이래 인간에게 영감의 원천이었고, 감각의 축제였다
그리고 저자는 그런 숲의 정수를 우리가 소홀히 지나치지 못하도록, 구체적으로 인식하도록 붙잡는다.
예컨대, 천상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곳, 흘과 나무들일 뿐이지만 깊고 기쁜 마법을 간진하고 있는 곳, 변덕스러운 사람들로 하여금 사유하게 만드는 오솔길,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빛의 집합체, 공기와 마음이 함께 어울리고 색과 감정이 함께 교류하는 공간으로서의 숲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그려낸다
아울러 그 미적 성과를 우리는 감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온전히 포착할 수 없는 신비가 감춰져 있다는 것도 떠올리게 해준다.
이 괴리에서 숲은 자연이라는 포괄적인 존재가 되고, 그 자연에 사는 침묵의 존재인 신으로까지 연결된다.
본문을 읽는 동안 독자는 이런 신기루를 보는 것만 같은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숲과 인간을 대비하는 문장력 또한 백미이다.
특히 14 페이지에 있는 숲에 대한 긴 글은 이 책의 내용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예컨대, 이 글에서 저자는 인간은 자라나고 죽지만, 숲은 그대로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생명이 없고 둔감해 보이는 숲이 전능한 지배력의 초록색을 띄고 인간 삶에 중요한 마법을 행사함으로써, 인간의 감점에 사랑과 아름다움이 깃들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에 화답하듯이,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각별하게 골똘히 생각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행복하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일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오늘도 숲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