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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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폴 윤은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를 물고 늘어진다. 
시공을 달리 하여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그 기저에는 언제나 고향과 사람에 대한 비애와 향수가 잠재해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그의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이다.  

가장 빼어난 점은 실향민에게 새로운 거주지가 어떤 의미인지 문학적으로 우아하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실향민이란 물리적인 정의뿐만 아니라, 정신적 상실까지 아우른다.  
그의 소설에서, 고향을 떠나서, 혹은 떠나게 되어 도착하는 곳은 상징적으로 무법지대인 곳이 된다. 
자기가 살던 곳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곳, 자신이 가지고 있던 관념이 작동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새롭게 알게 된 친구가 있더라도, 마음씨 좋은 이웃이 있더라도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이 되면 언제나 경계인이 되고,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와 상관 없이, 영원히 정착할 수 없는 대륙이다. 

아울러 그 무법적인 공간에서는 간직하고 싶던 추억마저도 망각된다. 
끈끈했던 사랑으로 결합된 가족 존재마저 희미해지며, 태고적 자신의 기원인 선조에 대한 개념은 애초에 그 존재마저 불투명해진다. 
그리고 그 사랑과 정체성의 자리에는 소외와 환상이 대신 들어선다. 
아무리 밀착하려 해도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거절 당하고, 
분명한 실체와 사실에 닿으려고 해도, 자신이 다가가는 대상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이 점이 무법지대라는 땅의 혹독함보다 더 잔인하게 주인공들을 괴롭힌다. 

분리할 수 없는 시간 및 역사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인가. 
그들은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사이이다. 
디아스포라를 천착하면서, 폴 윤은 그런 시간과 역사 속에 인물들을 배치한다. 
그리고 시간과 역사라는 가혹함을 극 중 인물들도 수용하고 닮아간다. 
그들은 반복 속에서 무의미를 깨닫고 고아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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